━━ 감성을 위한 ━━/세계문학

좁은 문 - 앙드레 지드.4

Joyfule 2010. 2. 15. 08:57
  좁은 문 - 앙드레 지드.4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년 후에 
어머니와 나는 부활제 방학을 보내려고 르아브르에 갔다. 
시내에서 퍽 비좁게 사는 삼촌댁을 피해 
한결 집이 넓은 이모 댁에서 지냈다. 
내가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었던 쁠랑띠에 이모는 
여러 해 전부터 과부였다. 
나보다 훨씬 나이도 많고 성격도 나와는 판이한 
이모의 아이들을 나는 겨우 얼굴이나 알 정도였다.
르아브르에서 사람들이 쁠랑띠에 댁이라고 부르는,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 중턱에 있었다. 
뷔꼴랭 댁은 상가 근처에 있었는데 가파른 언덕길로 
이 두 집을 순식간에 오고 갈 수가 있었다. 
나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이 길을 오르내렸다.
그날 나는 삼촌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후 얼마 안 있어 삼촌은 곧 외출을 했다. 
나는 삼촌을 따라 사무실까지 갔다가 어머니를 찾아 쁠랑띠에 이모댁으로 갔다. 
어머니는 이모와 함께 외출을 했는데 저녁 식사 때나 돌아오실 모양이었다. 
곧 나는 다시 시내로 내려왔다. 
이 시내에서 마음껏 산책할 기회를 그때까진 별로 갖지 못했었다. 
나는 부두로 내려갔다. 
바다의 안개로 뒤덮인 이 부두는 음울해 보였다. 
나는 한두 시간 이 부둣가를 헤매다녔다. 
문득 방금 만나고 온 알리싸를 찾아가 놀래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달음질쳐서 시내를 지나 뷔꼴랭 댁의 초인종을 눌렀다. 
이미 나는 층계 위를 뛰어오르고 있었다.
대문을 연 하녀가 나를 가로막았다.
"올라가지 마세요, 제로움 도련님. 
올라가지 마세요, 마님께서 발작이 나셨어요."
그러나 나는 그대로 지나쳐 올라갔다. 
외숙모를 보러 온 것은 아니니까...
알리싸의 방은 4층에 있었고 2층에는 응접실과 식당이 있고 
3층에는 외숙모 방이 있는데 그곳에서 말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방문이 열려 있는데 그 앞을 지나가야만 했다. 
한 줄기 불빛이 흘러나와 층계참을 꺾어 비치고 있었다. 
들키지 않을까 조마조마하여 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몸을 숨긴 채 다음과 같은 광경을 보아 아연했다.
커튼이 내려지긴 했지만 두 개의 가지 달린 촛대에 꽂힌 촛불이 
화려한 불빛을 뿌리고 있는데 방 한가운데 
외숙모가 긴 의자에 누워 있고 그 발 밑에는 로베르와 줄리에뜨가 있었다. 
외숙모 뒤에는 중위 복장을 한 낯선 청년이 서 있었다. 
이 두 어린애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망측한 일이지만 
당시 나의 순진한 생각으론 오히려 그것이 안심이 되었었다.
맑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뷔꼴랭, 내게 양 한 마리가 있다면 정말 뷔꼴랭이라 이름 붙여줄걸."하고 
되풀이하는 이 낯선 사나이를 두 아이는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외숙모는 깔깔대고 웃었다. 
외숙모는 그 젊은 사나이에게 담배를 한 대 내밀자 
그는 불을 붙였고 외숙모는 몇 모금 빠는 것이었다. 
담배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자 사나이는 그 담배를 주우려고 달려나와 
쇼올에 발이 걸린 철하면서 외숙모 앞에서 무릎을 끓는 것이었다...
이 우스꽝스러운 연극 덕분에 나는 들키지 않고 빠져나갔다.
나는 알리싸의 방문 앞에 섰다. 
잠시 나는 그대로 기다리고 있었다. 
웃음소리와 떠드는 소리가 아래층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아마도 그 소리가 내 노크하는 소리를 덮어 버렸는지 대답이 없었다. 
문을 밀어 보니 조용히 열렸다. 
방안은 어둠이 깃들어 나는 곧 알리싸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저무는 저녁 햇살이 스며드는 창문을 등진 채 침대머리에 무릎을 끓고 있었다. 
내가 가까이 접근해 가자 여전히 앉은 채 고개를 돌리고는 이렇게 속삭였다.
"아, 제로옴 또 왔어?"
나는 키스를 하려고 몸을 굽혔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에 젖어 있었다....
이 순간이 나의 생애를 결정지었다. 
지금도 그 순간을 회상해 보면 마음이 괴롭다. 
물론 나로서는 알리싸의 슬픔의 동기를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슬픔이 팔딱거리는 이 조그마한 영혼, 
흐느낌으로 온통 흔들리는 이 연약한 육신에 대해서는 
너무도 심한 것이라는 사살을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여전히 무릎을 끓고 있는 그녀 곁에 서 있었다. 
나는 내 마음속에 솟아오르는 이 새로운 격정을 무엇이라 표현할지 몰랐다. 
단지 그녀의 머리를 내 가슴에 꼭 껴안고 
내 영혼이 흘러넘치는 입술을 그녀의 이마에 대고 있을 따름이었다. 
사랑과 연민, 그리고 감격, 희생감, 정성이 뒤얽힌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도취되어 나는 애 힘껏 하느님을 불렀고 
이제는 내 삶의 목표가 공포의 악과 삶으로부터 
이 소녀를 보호하는 것 뿐이라 다짐하면서 스스로 내 몸을 바치기로 했다. 
기도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감싸 주었다, 
어렴풋이 그녀의 말이 들려 왔다.
"제로옴! 들키지 않았어? 자 빨리 가, 들키면 안 돼."
그리고는 좀 더 음성을 낮추어,
"제로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불쌍한 아버진 아무것도 모르셔...."
그래서 나는 어머니에게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러나 쁠랑띠에 이모와 어머니와의 끊임없는 속삭임, 
두 분의 뭔가 숨기는 듯한 안절부절 못하는 근심스러운 모습, 
또 그들이 밀담하는 곳에 내가 접근할 때마다,
"애야, 저리 가서 놀아라."하면서 나를 멀리하던 일, 
이런 모든 것이 나로 하여금 두 부인이 
뷔꼴랭 댁의 비밀을 전혀 모르지는 않는다는 것을 짐작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