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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21. 유죄, 유죄, 유죄 2

Joyfule 2009. 3. 5. 01:01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21. 유죄, 유죄, 유죄 2   
    칼퍼니아 아줌마가 우리가 있던 곳을 말하자 
    고모는 거의 기절할 지경에 이르렀다. 
    법정으로 다시 와도 된다고 한 아버지의 말씀은 고모를 더욱 심난하게 했다. 
    고모는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접시에 음식을 조금 더 담고는 단단히 벼르면서 
    우리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는 칼퍼니아 아줌마를 서글픈 얼굴로 쳐다볼 뿐이었다.
    칼퍼니아 아줌마는 우유를 따라주고 
    감자샐러드와 햄을 접시에 덜어주며 투덜거렸다.
    부끄러운 행동인 줄을 알아야 해요. 
    힘을 주어 말하곤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이젠 모두 천천히 먹도록. 
    리버렌드 사이크스 목사가 여전히 우리 자리를 지켜주고 있었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나 비워둔 자리가 그대로 있다는 것에 놀랐고, 
    우리가 떠날 때와 거의 같은 법정 안의 분위기에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배심원석은 비어 있었고, 피고와 테일러 재판장은 
    우리가 자리를 잡을 때쯤에야 다시 나타났다.
    거의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어. 
    오빠가 말했다.
    배심원들이 퇴장하자 몇몇 사람만이 움직였지. 
    리버렌드 목사가 계속 설명해주었다.
    남자들은 저녁을 사 나르고, 애엄마들은 아가들에게 젖을 먹였단다. 
    그분들은 퇴장한 지 얼마나 됐나요? 
    오빠가 물었다.
    약 삼십 분쯤 됐지. 
    핀치 변호사님과 길머 검사님이 좀더 이야길 나누셨고, 
    테일러 판사님이 배심원들에게 훈시를 하셨단다. 
    오빠가 물었다.
    뭐라고 하셨냐구? 아, 그러니까 아주 잘하셨어. 
    난 털끝만큼의 불만도 없단다. 
    그분은 대단히 공정하셨으니까. 
    그분은 배심원들에게 당신들이 믿는 것에 한해 판결을 내리라고 하셨어. 
    내 생각엔 그분이 우리 쪽으로 약간 기우신 것 같구나. 
    리버렌드 사이크스 목사는 머리를 긁적였다.
    오빠가 미소지었다.
    그분은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을 거예요, 
    목사님.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이긴 거니까요. 
    오빠는 재치있게 말했다.
    이 세상 어떤 배심원들이 그걸 유죄로 판명할 수 있겠어요? 
    젬, 지금은 그렇게 확신할 수 없단다. 
    나는 백인을 누르고 흑인을 편들어준 배심원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 ,,, . 
    그러나 오빠는 리버렌드 목사가 
    예외적인 상황에 희망을 걸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에게 있어 강간과 관련된 법률적 지식은 오빠의 견해대로 받아들여졌다. 
    그녀가 그렇게 하도록 놔두었다면 그것은 강간이 아니며, 
    강간으로 친다 해도 앨라배마에서는 열아홉 살 이하에만 적용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옐라는 스물한 살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얘기하면 폭력에 의해 꼼짝도 할 수 없이 눌려 
    거의 무의식상태에 놓였을 때만이 강간의 범위에 들 수 있고, 
    때문에 발로 걷어차고, 소리지르고 모든 걸 동원해 반항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열아홉 살 이하일 경우엔 이 모든 과정이 아니더라도 그 범주로 간주되었다.
    젬 군. 
    리버렌드 사이크스 목사가 오빠의 말을 가로막았다.
    꼬마숙녀 앞에서 이런 일을 얘기한다는 건 품위있는 일이 아닌 듯하군 ,,, .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쟨 무슨 얘길 하는지도 몰라요. 
    야, 스카웃, 너 무슨 말 하는지 모르지? 
    아니, 절대로 그렇지 않아. 
    난 오빠가 하는 말 한 마디도 빼놓지 않고 다 알아들을 수 있어. 
    이것은 대단히 설득력 있는 대답이었다. 
    그후 오빠는 입을 다물고는 그 주제에 대해선 다시 논의하지 않았다.
    목사님, 몇 시에요? 
    오빠가 물었다.
    여덟시가 다 돼가는데. 
    나는 아래층으로 눈을 돌렸다. 
    아버지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한가로이 거닐고 있었다. 
    창문 쪽으로 해서 배심원석 난간을 따라 걸으며 
    난간 안쪽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테일러 판사가 
    권좌를 지키고 있는 모습도 점검하곤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왔다. 
    나는 아버지와 눈이 마주치자 손을 흔들었고, 
    아버지도 내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아버지는 다시 그의 여정을 시작했다.
    길머 씨는 창문가에 서서 언더우드 씨와 얘기하고 있었고, 
    법정서기인 버트 씨는 테이블에 발을 올려놓고 
    의자에 기대앉아 줄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러나 법원의 대표격인 아버지와 길머 씨, 졸고 있는 듯한 테일러 판사, 
    그리고 버트 씨는 그나마 행동이 무난해보이는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난 법정 안이 그토록 정적이 감도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가끔 아가들이 짜증스럽게 울어대거나 종종걸음으로 뛰는 것 말고는 
    마치 예배시간에 앉아 있는 듯 어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발코니에는 흑인들이 성경에나 나옴직한 
    인내심으로 우리 주위에 앉아 있거나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