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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22. 고통의 장을 넘기는 마지막 사람1.

Joyfule 2009. 3. 7. 00:59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22. 고통의 장을 넘기는 마지막 사람1.  
     이번엔 오빠가 울 차례였다. 
    유쾌해보이기만 하는 군중 속을 헤치고 나가는 오빠의 얼굴은 
    눈물자국으로 심하게 얼룩져 있었다.
    말도 안 돼.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는 광장 구석에 이를 때까지 내내 중얼거렸다.
    아버지는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가로등 아래 서 있었다. 
    조끼와 칼라단추도 채워져 있었고, 
    넥타이 역시 제자리에 단정히 매여 있었으며, 시계줄은 반짝였다. 
    아버지는 다시 평정을 되찾고 있는 듯 보였다.
    이건 옳지 않아요, 아빠. 
    오빠가 반박하고 나섰다.
    그래, 젬. 그건 옳지 않았다. 
    우리는 집을 향해 걸었다.
    알렉산드라 고모가 기다리고 있었다. 
    고모는 나이트가운 차림이었는데, 그속에 코르셋을 입은 것이 틀림없었다.
    정말 안됐어요, 오빠. 
    고모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고모가 아버지를 오빠라고 부르는 걸 지금까지 별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오빠를 훔쳐보았지만 오빠는 듣고 있지도 않은 듯 
    아버지를 올려다보곤 다시 마룻바닥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오빠의 그런 행동은 톰 로빈슨의 유죄선고에 
    아버지의 책임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만들었다.
    괜찮아요? 
    고모가 오빠를 가리키며 아버지에게 물었다.
    곧 나아질 거다. 
    이번 일이 젬에겐 좀 힘겨웠을 거야. 
    아버지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잠을 좀 자야겠다. 아침에 늦더라도 깨우지 말아다오. 
    아이들을 그렇게 놔둔 건 현명치 못한 일이었어요. 
    여긴 그애들 집이다. 
    우린 저 아이들을 위해 길을 만들어주었을 뿐이고, 
    그들은 이겨나가는 것을 배워야 해. 
    하지만 법정에까지 가서 그런 일에 빠져들 필요는 없었잖아요. 
    그건 선교회의 다과회와 다를 것이 없는 일이야. 
    오빠. 
    알렉산드라 고모는 조심스러운 눈빛을 띄며 말을 이었다.
    오빠가 고통으로 이 장을 넘기는 마지막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난 별로 비참하지 않다. 다만 피곤할 뿐이다. 자러 가야겠다. 
    아빠. 
    오빠가 을씨년스럽게 불렀다.
    아버지가 문 앞에서 돌아보았다.
    왜 그러니, 젬? 
    그 사람들 ,,,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글쎄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했다. 
    전에도 그래 왔고, 오늘밤에도 그랬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게다. 
    그저 아이들만이 눈물을 흘리게 되겠지. 잘 자거라. 
    모든 일이란 아침이 되면 훨씬 나아지게 마련이었다. 
    아버지는 평소대로 새벽같이 일어나 거실에서 (모바일레지스터)를 읽고 있었다. 
    우리는 잠이 덜 깬 상태로 부스럭거리며 거실로 내려갔다. 
    오빠는 졸린 얼굴을 하고도 무언가 묻기 위해 입술을 움찔거리고 있었다.
    아직 걱정할 때가 아니야. 
    아버지가 오빠를 안심시키고 식당으로 들어가며 덧붙여 말했다.
    아직은 끝나지 않았어. 
    너도 알다시피 상고가 남아 있다. 
    아니, 칼, 이게 다 뭡니까? 
    아버지는 아침 식사가 담긴 접시를 보고 놀라며 물었다.
    톰 로빈슨의 아버지가 오늘 아침 이 닭을 보내왔습니다, 변호사님. 
    그분께 정말 고맙다고 전해줘요. 
    백악관이라도 아침 식사로 닭고기를 먹을 만큼 호화롭진 않을 거야. 
    아니, 이것들은 또 어떻게 된 거요? 
    말아서 만든 고기인데, 저 아래 에스텔 호텔에서 보내왔습니다. 
    아버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칼 아줌마를 올려다보자 아줌마가 계속했다.
    핀치 변호사님, 부엌에 좀 가보세요. 
    우리도 따라나갔다. 
    싱크대 위엔 우리 가족이 일주일은 먹을 수 있는 정도의 음식이 가득 쌓여 있었다.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토마토, 콩, 머루 등등. 
    마침내 아버지는 돼지무릎 비계절임을 보고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네 고모가 이것들을 식탁에서 먹게나 할지 모르겠구나. 
    오늘 아침 여기에 와보니 뒷계단에 저것들이 널려 있지 뭐예요? 
    그들은 변호사님께서 하신 일을 고맙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들이 지나친 건 아니겠죠, 변호사님? 
    칼퍼니아 아줌마의 설명을 들은 아버지는 
    두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분들께 내가 아주 고마워하더라고 전해줘요. 
    그리고 다시는 이러지들 말라고도 꼭 전하세요. 
    요즈음같이 살기 어려운 때에 ,,, .
    아버지는 식당으로 가서 고모한테 양해를 구한 후, 
    모자를 쓰고 마을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