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세계문학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26. 다시는 그 법정 얘기 하지 마1.

Joyfule 2009. 3. 23. 06:40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26. 다시는 그 법정 얘기 하지 마1.   
    새학기가 시작되었고, 우리는 여전히 래들리 집 앞을 지나다녔다. 
    오빠는 칠학년이 되어 저쪽 초급중학교 건물로 옮겼고 나는 삼학년이 되었다. 
    그때부터 우리의 일상은 판이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오빠하고는 아침에 학교 갈 때와 식사시간에만 만날 수 있었다. 
    오빠는 축구단에 들어갔지만 너무 마르고 아직 어려서 
    물양동이를 나르는 일만 해야 했다. 
    그렇지만 그 일에 아주 열심이어서 오후 내내 구단에서 시간을 보냈다.
    래들리 집은 더이상 나를 두렵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거대한 떡갈나무 아래의 그 집은 
    여느 때 못지않게 음산했고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여전히 나단 래들리 씨는 맑은 날이면 읍내를 다녀오느라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우리는 부가 그 안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무도 그가 실려나오는 걸 못 보았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그곳을 지나칠 때면, 
    우리는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세상을 등진 사람을 몰래 들여다보고, 
    낚싯대로 편지를 전하며, 그의 케일밭을 배회했을까 생각하며 가끔 자책하곤 했다.
    난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인디언 얼굴이 새겨진 동전 두 닢, 껌, 비누인형, 녹슨 메달, 고장난 시계와 시계줄을. 
    오빠는 그것들을 어딘가에 잘 간직해 두었으리라.
    어느 날 멈춰서서 그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시멘트가 덧발라져 있는 부분이 부풀어 누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우리는 두 번 정도는 그를 볼 뻔 했다. 
    그건 누가 뭐래도 상당한 성과였다.
    난 여전히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그를 찾았다. 
    언젠가는 그를 볼 수 있으리라 상상해보는 것이었다. 
    별 생각없이 이 길을 따라 올라오는데 그가 저기 그네에라도 앉아 있다면 난 어떻게 할까.
    안녕, 아서 아저씨. 
    정말 화창한 날이구나, 그렇지? 
    네, 아저씨. 정말 좋은 날씨에요. 
    이렇듯 평소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말하곤 가던 길을 계속 가리라.
    그것은 단지 공상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결코 그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달이 진 후에나 스테파니 크러포드 아줌마가 보고 있을 때는 
    밖으로 나오지 않는지도 모른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내가 그를 볼 수 있다고 해도 내겐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결코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또다시 그런 짓을 하진 않겠지? 
    어느 날 밤, 죽기 전에 단 한 번만이라도 부 래들리를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되지도 않은 바람을 중얼거리자, 아버지가 타이르듯이 말했다.
    분명히 얘기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하고 싶어도 그래서는 안 돼. 
    나는 너무 늙어서 네가 래들리네 집으로 가는 것까지 말릴 수도 없단다. 
    하지만 그건 위험한 일이야. 
    나단 씨의 총에 맞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나단 씨는 그림자만 보여도 모두 쏴버리거든. 
    잎사귀만한 발자국만 봐도 쏘아버린단다. 
    아직까지 살아있는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야. 
    나는 입을 다물었는데, 순간 아버지에게 무척 놀라고 있었다. 
    래들리 집에 대해 우리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나타냈던 것이다. 
    아, 그 일이 일어난 게 언제였더라 ,,, 
    겨우 지난 여름이었나? 지지난 여름? 그때가 ,,, 
    시간이 나를 놀려대는 것만 같았다. 
    오빠에게 물어봐서 기억해낼 수밖에.
    그렇게 많은 일들이 일어났는데도 우리는 
    아직도 부 래들리에 대해 최소한의 두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일이란 언제 어떻게 일어날 지 모르는 것이고, 
    일단 일어난 일은 가라앉기 마련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고 나면 톰 로빈슨이란 존재가 
    그들의 관심을 끌었던 적이 있었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될 거라고 덧붙였다.
    분명 아버지의 말이 옳았다. 
    하지만 그 여름의 일들은 밀폐된 방에 연기가 가득찬 것처럼 
    오빠와 내 머릿속에 드리워져 있었다. 
    메이컴의 어른들은 오빠와 내가 있는 자리에선 그 사건에 대해 절대로 얘기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아이들에겐 다른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가 변호사인 아버지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에, 
    자기 아이들에게 우리하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스스로 우러나온 생각이 아니었기에 제멋대로 시비를 걸어왔다. 
    결국 오빠와 나는 아이들과 몇 차례의 짧은 주먹질을 벌인 끝에 그 문제를 끝내버렸다. 
    그 일로 우리는 머리를 높이 들고 각자 신사, 숙녀가 될 것을 강요당해야 했다. 
    그것은 버럭 고함을 질러대는 헨리 라파예트 두보스 할머니를 견뎌내야 했던 때와 비슷했다.
    하도 뜻밖이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개구쟁이 아이들을 두었다는 부모로서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 반대 없이 주 입법부에 재선되었던 것이다. 
    난 그저 어른들이란 참 별스럽다고 결론지음으로써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