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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25. 소중한 인간의 생명1

Joyfule 2009. 3. 20. 01:21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25. 소중한 인간의 생명1   
    하지 마, 스카웃. 뒷계단 쪽에 놓아줘. 
    미쳤어. 
    뒷계단에 놓아주라고 말했다, 응.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 조그만 생물을 꺼내 
    맨 아랫계단에 올려놔주곤 간이침대로 돌아왔다.
    구월이 찾아왔지만 조금도 서늘해지는 기미가 없었으므로 
    우리는 뒷현관 칸막이에서 잘 수 있었다. 
    반딧불은 여전히 돌아다녔고, 날벌레들은 가을이 오면 어디로 갈지 
    그저 긴 여름을 즐기며 미닫이문에 부딪쳐 오곤 했다.
    쥐며느리는 집 안으로 방향을 잡고 있었다. 
    나는 아까 그 작은 벌레가 계단을 기어올라 문 아래턱쯤 왔으리라 추측했다가 
    그것을 발견하고 간이침대 근처 바닥에 책을 내려놓았다. 
    일 센티미터도 채 안 되는 그 생물은 내가 조금만 건드리면 
    몸을 단단한 잿빛 공모양으로 동그랗게 말았다.
    내가 엎드린 채 손을 뻗어서 가볍게 건드리자 
    그것은 다시 동그랗게 움추렸다가 안전해졌다고 느낀 듯, 천천히 몸을 다시 폈다. 
    그리고는 수백 개나 되는 다리로 몇 인치쯤 여행을 계속했다. 
    난 또 다시 건드렸고 그것은 동그랗게 말았고 ,,, 
    순간 난 졸음이 몰려와 끝장을 내려고 눌러 비비려는데 오빠가 말렸다.
    오빠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 표정은 무슨 말을 꺼내려고 할 때 나타내는 버릇 가운데 하나였다.
    난 오빠가 빨리 끝내기만을 기다렸다. 
    오빠는 원래 동물을 괴롭히지 않았다. 
    하지만 벌레에게까지 미치는 그의 동정심은 이해할 수 없었다.
    죽이면 어때? 
    널 귀찮게 하지도 않잖아. 
    오빠는 어둠 속에서 말하며 스탠드를 켰다.
    이젠 파리 모기도 못 죽일 단계에 와 계시군. 
    마음 변하면 얘기 해. 한 가지 말해두겠는데 
    나도 웅크리고 앉아 쥐며느리나 할퀴려는 건 아니니까. 
    아, 시끄러워. 
    오빠가 졸린 듯 대답했다. 
    오빠 말대로 나날이 계집애처럼 되어 가는 건 내가 아니라 바로 오빠인 것 같았다. 
    난 편안하게 등을 대고 누워 잠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딜을 생각했다.
    그는 이달 첫날 우리 곁을 떠났다. 
    학교가 방학하는 대로 돌아오겠다는 굳은 약속을 남기고. 
    그는 이 정도면 가족들이 
    여름방학을 메이컴에서 보내고 싶어한다는 걸 알아차렸을 거라고 떠벌였다. 
    라이첼 아줌마가 메이컴 역까지 택시로 우리를 데려다주었고, 
    딜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딜은 여전히 내 마음에 남아 있었다. 
    난 그가 너무나 보고 싶었다. 
    딜은 떠나기 전 이틀 동안 베이커스에디 강에서 오빠에게 수영을 배웠다. 
    딜을 생각하자 쏟아지던 잠이 어디론가 달아나버렸고 
    난 다시 그와의 추억들을 떠올렸다.
    베이커스에디 강은 마을에서 일 마일 정도 떨어진 
    메리디안 간선도로에서 갈라져나간 포장도로 끝에 있었다. 
    그 간선도로에서 목화마차나 지나가는 자동차를 잡아타고 쉽게 내려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 다음부터 샛강까지는 걸어다닐 만한 거리였지만, 
    땅거미가 지고 가로등에 불이 들어올 때 
    집까지 걸어온다는 것은 참으로 지치는 일이었다. 
    그래서 수영객들은 너무 오래 머물지 않도록 유의해야 했다.
    딜은 그날의 일을 이렇게 말해주었다. 
    오빠와 함께 간선도로를 따라 걷는데 아버지의 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아버지는 손을 흔들어댈 때까지 오빠와 딜을 보지 못한 듯했는데 
    마침내 알아보고는 속도를 줄이며 말했다.
    안됐지만 돌아가는 차를 잡아타고 가야겠다. 우린 갈 곳이 있단다. 
    뒷좌석에는 칼퍼니아 아줌마가 앉아 있었다. 
    오빠가 항의를 하다가 나중에 애걸하다시피 졸라대자 
    아버지는 차 안에만 있겠다면 함께 가도 좋다고 말했다.
    톰 로빈슨의 집으로 가는 동안 아버지는 톰에게 일어난 일을 자세히 말해주었다. 
    그들은 간선도로에서 옆길로 빠져 쓰레기더미 쪽으로 천천히 차를 몰았다. 
    이웰 집을 지나 흑인들의 오두막이 모여 있는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갔다.
    톰 집의 앞 마당에서 흑인아이들이 구슬치기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차에서 내리자 칼퍼니아 아줌마도 뒤따랐다.
    딜은 아버지가 앞 마당의 한 아이에게 물어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어디 계시니, 샘? 
    스티븐 자매님 댁에 가셨어요, 핀치 아저씨. 엄마 불러올까요? 
    아버지가 기운 없은 목소리로 그렇게 하라고 하자 샘이 뛰어나갔다.
    하던 놀이를 계속해라, 얘들아.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