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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31. 부 래들리와 팔짱을 끼고 1

Joyfule 2009. 4. 12. 01:08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31. 부 래들리와 팔짱을 끼고 1    
    부 래들리가 발을 끌 듯이 내디딜 때 
    거실 창문에서 새어나온 불빛이 그의 이마 위에 부서졌다. 
    그가 움직이는 모습은 왠지 위태로워보였다. 
    그건 마치 모든 물체에 그의 손발이 
    닿아도 되는지 안 되는지를 확신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는 쏟아져나오는 지독한 기침 때문에 
    몸의 경련이 심해져 의자에 다시 앉아야만 했다. 
    뒷주머니를 더듬어 손수건을 꺼낸 그는 한 차례 기침을 하곤 이마를 닦았다.
    그동안 그의 칩거에 너무도 익숙해 있어서 
    그가 지금 내 옆에 앉아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잠시 동안 아무 말도,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천천히 일어서서 내 쪽으로 돌아선 그는 현관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한테 굿나잇을 하시려는 거죠, 
    그렇죠? 아서 아저씨, 이쪽으로 오세요. 
    나는 그를 복도로 안내했다.
    알렉산드라 고모는 오빠의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들어와요, 아서. 아직 잠들어 있어요. 
    레이놀드 선생님께서 강한 진정제를 놓으셨어요. 
    진 루이스, 아버지 거실에 계시니? 
    네, 거기 계실 거예요. 
    뭘 좀 물어봐야 할 것이 있어서 ,,, 
    레이놀드 선생님께서 뭘 남기고 ,,, . 
    고모는 말끝을 흐렸다.
    부는 방 한쪽 구석으로 가서는 턱을 치켜들고 
    멀리 오빠를 세심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 창백한 빛에 비해 손은 놀랍게도 따뜻했다.
    내가 그를 슬쩍 잡아당기자 그도 순순히 응했다.
    레이놀드 선생님은 오빠의 팔에 텐트 같은 장치를 해놓았다. 
    침대로 이끌려온 부는 몸을 숙이고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한 번도 소년을 본 적이 없는 듯한, 호기심어린 소심한 표정이 드러나 있었다. 
    입을 조금 벌린 채 오빠를 이마에서 발끝까지 천천히 살펴보더니 
    손을 올렸다가 다시 내리는 것이었다.
    만지셔도 돼요, 아서 아저씨. 오빤 잠들었어요. 
    깨어나면 만질 수 없을 거예요. 오빠가 만지지 ,,, . 
    부의 손이 오빠의 머리 위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계속하세요, 아저씨. 오빠는 잠들었어요. 
    그의 손이 오빠의 머리 위에 가볍게 내려졌다. 
    나는 그의 몸짓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그는 내 손을 힘껏 쥐는 것으로 떠나고 싶다는 것을 넌즈시 알리는 듯했다. 
    나는 그를 현관으로 이끌었고, 
    거기서 불안한 발걸음이 멈추어졌지만 여전히 내 손을 놓지 않았다. 
    나를 보내려는 뜻이 아니었다.
    집에까지 같이 가주겠니? 
    그는 나즈막하게 속삭이듯 말했다. 
    어둠을 무서워하는 어린아이의 음성이었다.
    나는 우리집 계단 앞에 섰다. 
    그의 집에 가는 것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아서 아저씨, 팔을 이렇게 구부리세요, 이렇게. 네, 됐어요. 
    나는 그가 팔을 구부리자 팔짱을 끼었다. 
    그는 나를 위해 몸을 약간 구부려야 했다. 
    스테파니 아줌마가 이층 창문에서 내려다보기라도 한다면, 
    아서 래들리가 마치 여느 신사처럼 나를 호위하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는 길모퉁이에 있는 전신주에 다달았다. 
    딜은 저 굵직한 전신주를 껴안고 래들리 집을 바라다보며 
    얼마나 오랫동안 호기심을 키웠었던가. 
    나는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오빠와 함께 이곳을 지나쳤던가. 
    나는 생애 두 번째로 래들리 집 대문으로 들어가서 현관계단까지 올라갔다. 
    그의 손이 문고리를 더듬고는 부드럽게 내 손을 놓아주었다. 
    그리곤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나는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었다.
    이웃사람들은 초상이 나면 음식을, 병중에 있을 때는 꽃을 날랐고, 
    자질구레한 일들에는 적은 일손이나마 돕고 있었다. 
    부는 우리의 이웃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비누인형 두 개, 고장난 시계와 줄, 행운의 동전 두 닢,
     그리고 우리의 생명을 주었다. 
    그러나 그 이웃은 우리의 보답을 거절했다. 
    우리는 그것들을 꺼내온 그 나무에도, 그에게도 아무 것도 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이 나를 슬프게 했다.
    나는 집을 향해 돌아섰다. 
    가로등은 언제나처럼 길을 비쳐주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우리의 이웃을 바라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가까이에는 머디 아줌마와 스테파니 아줌마의 집이 보였다. 
    그리고 우리집 현관 앞의 그네가 보였다. 
    우리집 너머로 라이첼 아줌마 집이 선명하게 보였고, 
    두보스 할머니 집까지도 보였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갈색문 왼쪽으로 덧문이 달린 긴 창문이 있었다. 
    나는 그앞에 섰다가 다시 돌아섰다. 
    낮이라면 우체국 너머까지도 볼 수 있으리라.
    한낮 ,,, 내 마음속에서 점차 밤이 사라져갔다.
    낮, 우리 이웃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낮, 
    스테파니 아줌마는 라이첼 아줌마에게 최근에 들은 이야기를 하러 길을 건넌다. 
    머디 아줌마는 철쭉나무 위에 엎드려 있다. 한여름이었다. 
    두 아이가 멀리서 다가오는 한 남자를 향해 길 아래로 뛰어내려 간다. 
    그 남자는 손을 흔들고 아이들은 경주하듯 그에게로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