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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31. 부 래들리와 팔짱을 끼고 2

Joyfule 2009. 4. 13. 02:57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31. 부 래들리와 팔짱을 끼고 2    
    아직도 여름이었다. 
    아이들이 점점 다가온다. 
    한 소년이 낚싯대를 끌며 보도를 터벅터벅 내려간다. 
    한 남자가 손을 허리춤에 올려놓은 채 기다리고 서 있다. 
    여름, 앞마당에서 아이들이 저희들끼리 꾸며낸 서툰 연극놀이를 하고 있다.
    가을이었다. 
    아이들이 두보스 할머니집 앞 보도에서 싸우고 있다. 
    그 소년은 여동생을 일으켜세워 집으로 데려간다. 
    가을, 그 아이들은 그날의 슬픔과 기쁨을 얼굴에 가득 담고 
    길모퉁이를 총총거리며 뛰어 돌아다닌다. 
    그들은 무엇을 깨달은 듯 그리고 기쁨과 호기심, 
    궁금함으로 떡갈나무 아래에 멈춘다.
    겨울, 그 아이들은 집이 불타고 있는 영상속에서 떨고 있다. 
    여전히 겨울이었다.
    한 남자가 안경을 떨어뜨리고 길가로 걸어온 개를 쏘았다.
    여름, 그는 아이들의 슬픔을 본다. 
    또다시 가을, 아이들이 부를 필요로 한다.
    아버지 말씀이 옳았다. 
    언젠가 아버지는 남의 입장에 서보지 않는 이상 
    결코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었다. 
    래들리 집 현관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건 충분했다.
    길가 가로등 불빛은 가랑비에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갑자기 어른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코 끝에 내려앉은 미세한 안개방울을 두 눈동자를 한데 모아서 바라보다 
    어찔어찔해서 그만두었다. 
    내일 오빠에게 말해야 할 것들을 정리했다. 
    그는 이 기회를 놓친 것이 분해 돌아버릴지도 모른다. 
    집으로 돌아오며 오빠와 내가 자라온 날들을 떠올려보았다. 
    앞으로 산수만 제외한다면 배울 것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었다.
    나는 계단을 뛰어올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알렉산드라 고모는 이미 잠자리에 들었고, 아버지의 방도 어두웠다. 
    난 오빠가 어떤지 살펴보아야 했다. 
    아버지는 오빠의 침대 옆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오빠는 아직 안 깨어났어요? 
    편안히 자고 있단다. 아침까진 깨어나지 않을 거야. 
    아빠, 여기서 밤 새실 거예요? 
    그저 한두 시간만. 스카웃, 이제 자야지. 너희에겐 너무 긴 하루였다. 
    저 여기에 좀더 있으면 안 되나요? 
    마음대로 하렴. 
    자정이 지난 시간이었다. 아버지의 부드러운 묵인이 의아했다. 
    아무리 애써도 난 아버지의 마음을 따라갈 수 없었다. 
    앉는 순간 잠이 쏟아지는 걸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무슨 책이에요? 
    아버지가 책을 뒤집어보고 말해주었다.
    젬 건데, (회색유령)이라는 거구나. 
    나는 갑자기 잠이 달아났다.
    왜 그걸 읽으세요? 
    그냥 뽑아본 거야. 읽지 않은 몇 편 중 하나거든. 
    아버지는 시원스럽게 대답해주었다.
    소리내서 읽어주세요, 아빠. 그거 정말 무시무시한 거예요? 
    넌 그 동안 충분히 놀랐다. 이건 너무 ,,, . 
    아이, 아빠. 전 놀라지 않았어요. 
    아버지의 눈썹이 치켜졌지만 난 계속 때를 썼다.
    적어도 보안관 아저씨께 그걸 말하기 전까진 아니에요. 
    오빠도 겁내지 않았어요.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아니라고 했어요. 책보다 더 무서운 건 없어요. 
    아버지가 무엇인가 말하려는 듯 입을 움직이다가 그만두었다. 
    읽은 부분까지 엄지손가락으로 끼고 있던 아버지는 다시 첫페이지를 펼쳤다. 
    나는 아버지의 무릎에 기대었다.
    으흠. 회색유령, 지은이 세키터리 허킨스, 제1장 ,,, . 
    나는 깨어 있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버티려 했지만 소용 없는 일이었다. 
    그날 내린 비는 아주 부드럽게 땅을 적시고 있었고, 방은 따뜻했다. 
    게다가 아버지의 목소리는 그윽했고 무릎은 또 얼마나 편안했는지 ,,, .
    몇 초 후 아버지의 손끝이 내 갈비뼈를 살그머니 누르더니 
    나를 일으켜 안아 내 방으로 데려가려는 듯 했다.
    한 마디 한 마디 다 들었어요. 
    나는 잠에 취해 중얼거렸다.
    ,,, 정말 잠들지 않았어요. 그건 배에 관한 것이었구 ,,, 
    세 손가락 달린 프, 플, 우레드와 음, 스토너의 소년이었지요 ,,, . 
    아버지는 나를 안은 채 겉옷 단추를 끄르곤 내 파자마를 집어들었다.
    네, 그리구 그들 모두 클럽하우스를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것이 
    스토너의 소년이라 생각하곤 잉크를 던져 온통 ,,, . 
    아버지는 나를 침대에 누이곤 다리를 이불 속으로 집어넣었다.
     ,,, 그리구 그를 쫓아갔지만 잡지 못했어요.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으니까요. 그리구 아빠 
    ,,, 결국 그를 잡았을 땐 왜 아무 짓도 하지 않았을까요 ,,,
     아빠, 그는 정말 멋있어요 ,,, . 
    아버지의 손길이 내 턱아래에서 움직였다. 
    이불을 당겨 덮어주었던 것이다.
    스카웃, 나중에 너도 그들을 이해하게 될 게다. 
    아버지는 전등불을 끄고 방을 건너갔다. 
    아버지는 밤새 그곳을 지키리라. 
    오빠가 아침이 되어 깨어날 때까지.
    ㅡ 끝.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