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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2 장 카인 - 1

Joyfule 2008. 9. 20. 05:38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2 장 카인  - 1  
    내 고민으로부터의 구원은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방향에서 왔고, 
    그것과 더불어 전혀 새로운 일이 내 생활 속에 들어왔는데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도 내게 계속되고 있다.
    얼마 전 우리 학교에 새로 전학온 학생이 한 명 있었다. 
    그는 우리 마을로 이사온 부유한 미망인의 아들이었는데 
    소매 둘레에 검은 상장을 두르고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 상급 학년이었지만 곧 모든 학생들의 주목을 끌었고 
    나 역시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묘한 아이는 겉보다는 훨씬 나이가 들어보여 누가 봐도 소년같지 않았다. 
    우리들 어린 소년 사이에서 그는 마치 어른처럼 
    색다르고 예의바르게 행동했으므로 호감을 받는 편은 아니었다. 
    그는 우리와 같이 놀이에 어울리지 않았고 
    더욱이 싸움 같은 건 한 적이 없었다. 
    아이들이 마음에 들어 한 것은 선생님을 대할 때의
    그의 어른스럽고 단호한 음성이었다. 
    그는 막스 데미안이라고 했다. 
    우리 학교에서는 때때로 합반을 하곤 했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지 
    어느 날 우리는 큰 교실에서 합반 수업을 하게 되었다. 
    데미안의 반과 함께였다. 
    우리들 하급생들은 성서 이야기를 들었고 상급생들은 작문을 지었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어거지로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자주 데미안 쪽을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이상스럽게 나를 매혹시켰으며 
    나는 이 총명하고 밝고 비범해 보이는 얼굴이 주의 깊게 
    그리고 지혜롭게 자기의 공부에 몰두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전혀 과제를 하고 있는 학생처럼 보이지 않았고 
    독창적인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처럼 보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는 내게 썩 호감을 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에 대해 나는 일종의 저항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는 너무 초연해 보였고 냉담했다. 
    그의 태도는 도전적으로 느껴질 만큼 자신만만했으며 
    눈은 마치 어른 같은 표정을 띠고 있었으며 
    - 그런 것을 아이들은 결코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
    다소 슬픔이 어린 듯하면서도 냉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쉴새없이 그를 쳐다보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그는 내게 어떤 사랑스러움이랄까, 연민의 정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어쩌다 그와 시선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버리곤 했다. 
    그 당시 그가 학생으로서 어떤 모습이었던가를 회상해보면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모든 점에서 평범한 아이들과는 달리 
    철저히 이색적이고 개성이 강했으며 
    그 점이 남의 관심을 집중시키게 했던 것이라고. 
    - 하지만 그 때문에 그는 남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온갖 짓을 다했다. 
    그것은 마치 농부의 아들처럼 보이기 위해 애쓰는 변장한 왕자와도 같이, 
    어색한 농부의 옷차림을 하고 또 행동도 그렇게 했던 것이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는 내 뒤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제각기 흩어져 가버리자 그는 내 곁으로 다가와 인사를 했다. 
    물론 그는 우리들이 하는 것처럼 평범한 인사말을 건네왔지만 
    너무 어른스럽고 점잖게 들렸다. 
    ”우리 좀더 함께 갈 수 있는 거니?” 그는 친절한 태도로 물었다. 
    나는 기뻐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리고 나서 우리 집이 어디쯤인지를 그에게 가르쳐주었다. 
    ”아, 거기?” 그는 웃음띤 얼굴로 말했다. 
    “그 집이라면 벌써부터 알고 있었어. 
    너희 집 현관 위의 독특한 장식물이 내 흥미를 끌었거든.”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곧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가 우리 집에 대해 나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느꼈다. 
    우리 집 대문의 아치위에 초석으로서 일종의 문장이 새겨져 있긴 했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납작해져서 
    가끔 새로 칠을 하긴 했어도 거의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내가 아는 한 그 문장은 우리 가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었다. 
    ”난 거기에 대해서는 잘 몰라.” 나는 미안한 듯이 말했다.
     “그건 아마새이거나 그와 비슷한 무늬일 거야. 
    그런데 퍽 낡아서 잘 알아보기 힘들 건데. 
    우리 집은 옛날에 어느 수도원의 소유였었대.” 
    ”그랬을지도 모르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잘 살펴봐. 그런 옛 문장은 퍽 흥미로운 것이야. 
    내가 보기엔 매처럼 보였어.” 
    우린 계속 함께 걸었는데 나는 속으로 무척 당황하고 있었다. 
    갑자기 무슨 재미있는 생각이라도 떠오른 것처럼 그가 웃었다. 
    ”그래, 아까 수업 시간에 우린 한 반에 있었지.” 그는 명랑한 어조로 말했다. 
    이마에 표지를 달고 다닌 카인의 이야기를 배우는 것 같던데, 
    그렇지 않니? 어때 그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니?” 
    물론 그렇지 않았다. 
    우리들이 배워야만 하는 과목 중 어느 하나도 내 마음에 드는 건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정직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꼭 어른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데미안은 친근하게 내 어깨를 두드렸다. 
    ”얘, 나까지 속일 필요는 없어. 
    그러나 그 이야기는 수업 시간에 배우는 다른 어떤 것보다 
    좀 생각을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봐. 
    선생님은 실제 거기에 대해선 별로 가르치지 않으셨지. 
    그저 신이나 죄 같은 상식적인 이야기밖에은 안하셨으니까. 
    그러나 난 이렇게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