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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2 장 카인 - 3

Joyfule 2008. 9. 22. 07:04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2 장 카인  - 3 
    나는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나 어떤 다른 종류의 이야기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또 오래 전부터 몇 시간, 아니 저녁 나절 내내 
    그렇게 씻은 듯이 프란츠 크로머의 존재를 잊어본 적도 없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성서에 적혀있는 카인의 이야기를 꼼꼼히 읽어보았지만 
    그 내용은 간단 명료했고, 
    그 속에서 특별한 숨은 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제정신이 아닌 짓이었다. 
    그렇다면 모든 살인자들은 신의 애호를 받은 자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아니, 그건 미친 소리였다. 
    내 마음을 깊이 끌어당겼던 것은 데미안이 모든 것은 
    쉽고 분명하다는 듯이 그렇게 훌륭하고 조리있게, 
    그런 진지한 눈빛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던 그것 뿐이었다! 
    내 자신 속에도 무언지 정돈되지 않고 
    무질서하기까지 한 것이 존재해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밝고 맑은 세계에 속해 있었으며 
    내 자신이 일종의 아벨이기도 했던 것인데 
    지금의 나는 너무도 깊숙이 ‘다른 세계’ 속에 굴러떨어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가라앉아버린 것이었다. 
    물론 그것이 나 혼자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럼 어떻게 해서 일이 이 지경이 되어버린 것일까? 
    그렇다, 나의 마음속에서 갑자기 한 가지 회상이 치밀어올라 
    하마터면 숨이 막힐 뻔하였다.. 
    요즘의 이런 불행한 사태가 시작되었던 그 불쾌한 밤에 
    아버지에 대해 느꼈던 감정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 당시 나는 한 순간이나마 아버지와 아버지의 대표되는 
    밝은 세계와 지혜의 이면을 단숨에 꿰뚫어본 듯이 멸시했던 것이다. 
    그때의 나는 분명 카인이었고 이마엔 표지까지 달고 있었으면서도 
    수치심을 느끼기보단 훈장을 단 것처럼 으스대며
     나의 죄악과 불행을 통해서 나는 아버지보다도, 
    선하고 경건한 사람들보다도 우월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당시의 경험이 어떤 분명한 사상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 모든 것이 그 속에 포함되어 있었고 그것으로 인해 
    지극히 불행한 상태에서도 엉뚱한 긍지를 느낄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데미안은 강한 자와 약한 자에 대해 
    아주 이상스런 방향에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카인의 표지에 관한 해석도 그러했다. 
    어른스러운 그의 눈이 그때 어떻게 빛났던가! 
    그러자 이런 생각이 내 머리를 혼란스럽게 스쳐갔다. 
    데미안 자신이야말로 일종의 카인이 아닌가? 
    그가 자신을 카인의 일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왜 그는 카인을 옹호하는 것일까? 
    어떻게 그는 그러한 힘을 눈빛에 담을 수가 있을까? 
    경건하고 신의 마음에 드는 ‘다른 사람들’ 즉 
    그 비겁한 사람들에 관해서 그는 왜 그렇게 빈정대듯이 말하는 것일가? 
    나는 이 생각을 끝맺을 수가 없었다. 
    돌멩이 하나가 샘물에 떨어진 것이었고 이 샘은 나의 어린 영혼이었다. 
    한동안, 아니 매우 오랫동안 카인의 살인과 표지에 관한 문제는 
    인식과 의심과 비평에 대한 나의 시도의 출발점이 되었다. 
    나는 다른 학생들도 데미안에게 흥미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카인의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한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는 분명 다른 아이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전학생’에 대해 많은 소문이 나돌았다. 
    만약 내가 그 소문을 전부 들을 수 있었으면 
    그를 아는 데 퍽 도움을 받았을 것이고 모든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었던 사실은 데미안의 어머니가 퍽 부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절대 교회에 나가지 않으며 
    그의 아들도 그렇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들이 유대인이라는 사람도 있었고 
    알려지지 않았지만 회교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막스 데미안의 체력에 관해서도 말들이 많았다. 
    싸움을 걸었다가 응하지 않자 그를 겁쟁이라고 비웃었던 자기 반에서 
    제일 힘 센 아이를 거뜬히 이겼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 광경을 보았던 아이들의 말에 의하면
     데미안은 단지 한손으로 그 아이의 멱살을 잡고 눌렀을 뿐인데도 
    그 아이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항복하고는 도망을 쳤는데 
    며칠이나 팔을 못쓰더라는 것이었다. 
    하루 저녁 동안에 그가 죽었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 
    이 모든 소문들이 얼마간 무성하였고 그 동안은 굳게 믿어졌으며 
    언제나 흥분과 경탄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은 얼마 동안은 그 정도의 소문에 만족했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소문이 돌았는데 
    그 소문에 의하면 데미안이 어떤 여자와 친근한 사이이며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프란츠 크로머와 나는 변함없이 괴로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며칠즘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해도 
    사실상 나는 그에게 단단히 묶여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꿈 속에서까지도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고, 
    그가 실제로는 하지 않은 일까지도 나의 공상이 그로 하여금 
    꿈속에서 그런 일을 하도록 그를 부추기는 것이었다. 
    꿈속에서는 나는 그의 완전한 노에였다. 
    나는 현실에서보다 꿈속에서 -나는 몹시 꿈이 많은 아이였다 -
    더 많이 살았으며 그것으로 인해 힘과 생명력을 고갈시키고 있었다..
    특히 나는 크로머가 나를 학대하고 내게 침을 뱉고 내 무릎을 짓밟으며, 
    더 나쁜 일은 나를 무서운 범죄로 유인하는 꿈을 자주 꾸었다. 
    아니 유인했다기보다는 그의 강력한 힘에 의해 
    강요당했다고 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리라. 
    가장 무서웠던 것은, 그 꿈에서 나는 
    거의 미칠 지경이 되어 잠에서 깨었는데, 아버지를 살해하는 꿈이었다. 
    크로머가 칼을 갈아서 나에게 주었고 
    우리들은 가로수 뒤에 숨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는 누구를 기다리는지는 몰랐었다. 
    누군가가 그곳으로 오자 크로머는 내 팔을 건드려 
    내가 찔러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는데 
    그 사람은 바로 나의 아버지였다. 여기서 나는 잠을 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