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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2 장 카인 - 5

Joyfule 2008. 9. 24. 03:42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2 장 카인  - 5 
    그가 가버리자 희미하게나마 그의 말뜻이 짐작되었다. 
    나는 아직 완전히 어린애였지만 우리들이 좀더 나이가 들면 
    어떤 비밀스런 야릇하고 금지된 짓을 서로 할 수 있다는 것쯤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럼 이제 나는 갑자기 그것이 얼마나 망측스런 일인가를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따위 짓은 결코 하지 않으리라는 결심을 굳게 했다. 
    그러나 그러고 나면 내겐 또 무슨 일이 닥쳐올 것인가. 
    크로머가 나에게 어떤 식으로 보복 해올 것인가에 대해서는 감히 생각해 볼 수도 없었다. 
    내겐 새로운 고문이 시작되었고, 아직도 괴로움은 충분치가 않았던 모양이었다. 
    나는 지극히 암담한 심정이 되어 주머니에 손을 푹 찌른 채 텅 빈 광장을 가로질러 걸었다. 
    새로운 고민, 새로운 압박감이 나를 덮쳐왔다. 
    그때 누군가가 시원스럽고도 깊이있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는 깜짝 놀라서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누군가가 따라와서는 한쪽 손으로 나를 살며시 잡아당겼다. 
    그것은 막스 데미안이었다. 
    나는 붙잡는대로 가만히 있었다. 
    ”난 또 누구라고.” 나는 불안을 감추며 말했다. 
    “사람을 놀라게 해도 분수가 있지.” 
    그는 나를 쳐다보았다.
     이때만큼 그의 눈빛이 어른의 우월하고도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힘을 가진 그것처럼 느껴진 적은 없었다. 
    오래 전부터 우린 서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 
    ”미안해.” 그는 점잖고도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놀랄 필요는 없잖아.” 
    ”물론 그래, 그렇지만 놀랄 수도 있어.”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얘, 
    네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 앞에서 그렇게 깜짝 놀란다면 
    그 사람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게 될 거야. 호기심을 가지게 되겠지. 
    정말 수상하게 여겨질 만큼 네가 잘 놀란다고 생각할 거고, 
    사람이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을 때 잘 놀라게 되는데, 하고 생각할 거란 말야. 
    겁쟁이는 언제나 두려워하니까 말이야. 
    그렇지만 난 네가 원래부터 겁쟁이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그렇지 않니? 아, 물론 네가 영웅이라는 건 아니야. 
    네가 두려워하는 무엇인가가 있단 말이야. 
    네가 무서워하는 누군가가 있는 거야. 하지만 그런 것은 절대 있어선 안 돼.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사람이 사람을 두려워한다는 건. 
    내가 두려운 건 물론 아니겠지? 안 그래?” 
    ”아냐, 아냐, 넌 조금도 두렵지 않아.” 
    ”그것 봐, 틀림없어. 그렇지만 넌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지?” 
    ”난 잘 모르겠어‥‥‥. 제발 그만둬. 날 어쩌자는 거야?” 
    그는 나와 보조를 맞추었다
    나는 그에게서 도망치고 싶어서 빨리빨리 걷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 옆얼굴을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다. 
    ”가령 말이야.” 그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난 네게 호의를 가지고 있어. 하여간 넌 날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난 네게 한 가지 실험을 해보고 싶어. 
    그건 무척 재미있고, 너도 무언가를 거기서 배울 수가 있을 거야. 
    자, 잘 들어봐! 
    나는 가끔 독심술이라고 하는 걸 시험하곤 해. 
    거기 무슨 요술이 있는 건 아닌데 
    그 이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주 신기해 보이거든. 
    그것으로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할 수가 있으니까 말야. 
    자, 우리 한번 시험해보자. 내
    가 너를 좋아하거나 혹은 흥미를 갖고 있다고 치는 거야. 
    그래서 이젠 네 마음속이 어떤가를 알고 싶어진 거야. 
    난 이미 그것에 첫 발걸음을 내디딘 셈이야. 난 너를 깜짝 놀라게 했었지. 
    따라서 넌 잘 놀란단 말야. 
    그건 곧 네가 두려워하는 물건이나 사람이 있다는 증거야. 
    어째서 그럴까? 사람은 누구 앞에서건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거야. 
    그런데도 그 사람이 누군가를 두려워하고 있다면 
    그건 자기를 지배하는 힘을 그 누군가에게 맡겨버린 때문이야. 
    예를 들어 네가 어떤 나쁜 짓을 했다고 치자, 
    그런데 그 일을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 거야.
    그러면 그 사람은 너를 지배하는 힘을 가진 것이 되는 거야, 
    알겠니? 분명한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니?” 
    나는 어쩔 줄 몰라서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는데 
    그의 얼굴은 여느 때처럼 엄숙하고 영리해 보였고 
    또 호의를 가진 것처럼 보였지만 정답다기보다는 오히려 엄격해 보였다. 
    정의나, 혹은 그와 비슷한 무엇이 그의 표정에 깃들어 있었다. 
    나는 어찌된 영문인지도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마치 마법사처럼 내 앞에 서 있었다. 
    ”알아듣겠니?” 그는 다시 한번 물었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독심술이 이상하게 보인다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그건 극히 자연스럽게 되는 거야. 
    예를 들자면 언젠가 우리가 카인과 아벨에 대한 이야기를했을 때에 
    네가 날 어떻게 생각했던가를 난 제법 확시라게 말해줄 수가 있어. 
    그런데 그건 지금 상황과는 관계가 없어. 
    넌 한 번쯤은 내 꿈을 꾸었으리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 얘긴 이제 그만 두자. 
    넌 무척 영리해. 대부분의 아이들은 멍청한데. 
    나는 때때로 내가 믿고 있는 영리한 아이와 이야기하는 것이 좋아. 
    너도 물론 괜찮겠지?” 
    ”그래, 괜찮아. 하지만 난 네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듣는걸 뭐.” 
    ”그럼 다시 그 재미나는 실험으로 되돌아가볼까? 
    우린 어떤 소년이 잘 놀란다는 것과---
    그는 누군가를 아주 두려워하고 있으니까---
    아마 그는 이 누군가와 매우 불쾌한 비밀이 있는 모양이란 말야.---
    대략 들어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