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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2 장 카인 - 6

Joyfule 2008. 9. 25. 01:45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2 장 카인  - 6 
    나는 꿈속에서처럼 그의 목소리와 힘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나는 그저 머리만 끄덕이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는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닌가? 
    이렇게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다니, 
    내 자신보다도 더 잘, 더 분명하게 알고 있다니! 
    데미안은 내 어깨를 힘차게 두드렸다. 
    ”그럼 내 말이 맞는 거구나. 
    나는 그렇게 추리해낼 수가 있었어. 
    그럼 질문은 하나 남은 셈이군. 
    조금 전에 너와 헤어진 그 애가 누군지 알고 있지?”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는데 
    비밀을 들키고 말았다는 것이 무척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비밀은 밝은 곳에 드러나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어떤 애 말이니? 나 밖엔 아무도 없었는데.” 
    그는 웃었다. 
    ”말해봐!” 그는 웃으며 재촉했다.
     “그 애의 이름이 뭐니?” 
    나는 거의 들리지도 않을 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프란츠 크로머 말이니?” 
    만족스럽다는 듯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했어, 넌 정말 눈치가 빠른 애구나. 
    우린 친구가 될 만해. 이제 조금만 더 물어보자. 
    그 크로먼지 뭔지 하는 녀석은 아주 나쁜 애야. 
    녀석의 얼굴에 그렇게 써 있는걸 뭐. 넌 어떻게 생각하니?” 
    ”응 그래.”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아주 나쁜 애야. 악마 같은 녀석인걸. 
    하지만 그 녀석에게 들키면 안 돼. 
    제발 아무 말도 말아줘.
     넌 그 녀석을 알고 있니? 크로머도 너를 알고?” 
    ”진정해, 그 녀석은 벌써 가버리고 없으니까. 
    그리고 그 애는 나를 몰라. 아직은, 
    하지만 그 녀석에 대해 알고 싶어. 그 애는 국민학교에 다니니?” 
    ”응.” 
    ’몇 학년이니?” 
    ’오 학년---하지만 아무 말도 말아줘. 
    제발 부탁이야. 아무 말도 말아줘.” 
    ”가만 있어봐. 네겐 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 
    그런데 그 녀석의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해줄 수가 없니?” 
    ”해줄 수 없어. 그건 안 돼. 날 좀 내버려둬.” 
    그는 잠시 묵묵히 서 있기만 했다. 
    ”유감이로구나.” 그는 말을 이었다.
     “우린 실험을 좀더 계속할 수도 있을 건데. 
    하지만 난 널 괴롭히고 싶지 않아. 
    그런데그 녀석을 네가 두려워하고 있다면 
    그건 조금도 정당한 일이 아니라는 걸 너도 알고 있지? 
    그렇지 않니? 그 따위 두려움은 
    괜히 우리 자신을 망치게 만드는 것이니까 한시바삐 벗어나야 돼. 
    네가 진정한 사내 대장부가 되려면 
    그 따위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야 하는 거야. 알겠니?” 
    ”물론 네 말이 옳아‥‥‥. 하지만 그럴 수가 없는걸 머. 
    정말 모를거야. ‥‥‥”
    ”네가 생각하는 것보단 난 널 더 잘 안다는 걸 너도 봤지 않니.
    그 녀석에게 빚이라도 진 거야?” 
    ”그래, 그렇기도 해. 하지만 그게 제일 큰 문제는 아니야. 
    그걸 말할 순 없어. 절대로. 말할 수 없어.” 
    ”만일 그 녀석에게 빚진 돈을 내가 대신 갚아준다고 해도 소용이 없니? 
    난 갚아줄 만한 돈이 있어.” 
    ”아냐, 그런 게 아니라니까. 
    제발 부탁이야. 아무에게도 그런 말은 말아 줘. 
    한마디도!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난 무척 불행해지고 말 거야.” 
    ”날 믿어, 싱클레어. 넌 언젠가는 그 비밀을 내게 털어놓게 될 거야.” 
    ’절대, 절대로 그러지 않을 거야.” 
    나는 성급하게 외쳤다. 
    ”너 좋을 대로 해. 
    난 시간이 좀 지난 뒤엔 아마 내게 이야기해줄 거라고 생각해. 
    물론 네 스스로 말이야. 
    설마 나도 너에게 크로머 같은 짓을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물론 그렇지 않아. 
    하지만 넌 그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래, 아무것도 몰라. 
    난 그저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뿐이야. 
    나는 절대로 크로머가 한 것 같은 짓은 하지 않아. 
    그건 믿겠지? 너는 내게 빚진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동안 나는 마음이 진정되었다. 
    그러나 어떻게 데미안이 그런 것을 알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 
    점점 더 궁금하게 여겨졌다. 
    ’이젠 집으로 가야 해.” 
    그는 이렇게 말하며 빗발 속에서 거칠게 짠 모포로 만든 외투깃을 여몄다. 
    ”우린 벌써 많은 것을 이야기했으니까 한마디만 더 할게. 
    너는 그 녀석으로부터 벗어나야 해. 
    다른 도리가 없으면 그 녀석을 때려 죽여버려! 
    네가 그럴 수 있다면 난 무척 놀라고도 유쾌해 할 거야. 나도 널 도와줄게.” 
    갑자기 새로운 불안이 나를 덮쳐왔다. 
    카인의 이야기가 뇌리를 스쳤고 나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그래서 조용히 울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소름끼치는 일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다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럼 좋아.” 막스 데미안이 미소를 지었다.
     “집으로 가, 우린 틀림없이 그 녀석을 해치우게 될 거야. 
    때려 죽이는 것이 가장 간단하긴 해.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가장 최선인 법이거든. 
    네가 그 녀석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건 하나도 좋은 일이 못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