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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3 장 도 둑 - 2

Joyfule 2008. 9. 29. 10:36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3 장 도 둑 - 2 
    눈을 감고 생각해보면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것은 어디였을까? 이젠 그곳도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곳은 우리 집 앞 골목이었다. 
    어느 날 나는 그곳에서 손에 노트를 들고 서 있는 그를 보았다. 
    그는 우리 집 대문 위에 붙어 있는 새 모양의 낡은 문장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창의 커튼 뒤에 숨어서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예민하고도 차갑고 밝은 얼굴이 
    문장을 향해 있는 것에 대해 깊은 경탄을 느꼈다. 
    그것은 어른의 얼굴이었고, 연구자나 예술가의 그것처럼 보였다. 
    탁월하고 의지에 가득 차 있으며 
    이상할이만치 밝고 차가고 총명한 눈을 가진 얼굴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를 본다. 
    그것은 며칠 후 거리에서의 일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우리는 쓰러진 말 주위에 붙어서 있었다. 
    말은 아직도 수레채에 묶인 채 농부용 마차 앞에 쓰러져 있었는데 
    무엇인가 애원하는 듯이 비참하게 콧구멍을 벌름거리면서 허공을 향해 헐떡거렸고 
    보이지 않는 상처에서는 피가 흘러내려 
    말의 옆구리와 거리의 먼지에 서서히 검붉게 배어들고 있었다. 
    매스꺼움을 참으며 그 광경에서 고개를 돌리다 나는 데미안을 발견하였다. 
    그는 앞으로 비집고 들어오려 하지도 않고 언제나 그랬듯이 
    맨 뒤쪽에서 지극히 안정되고도 여유있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은 말의 머리에 고정되어 있는 것 같았는데 
    여전히 깊고 고요하면서도 거의 열광적으로,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놀랄 만치 냉담하게 느껴지는 집중력을 갖고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를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바로 그때 나는 선명하게 의식한 것은 아니었지만 매우 독특한 무엇인가를 느꼈다. 
    나는 데미안의 얼굴을 보고 있었는데 내가 본 것은 단지 그가 소년의 모습이 아니라 
    어른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다른 더 많은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의 얼굴이 단순한 어른의 얼굴만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라는 사실을 보았거나 아니면 느꼈다고 확신했다. 
    마치 여자의 얼굴과도 같은 무언가를 그의 얼굴에서 엿볼 수 있었는데 
    그 모습은 어른이니 아이니, 늙었거나 절었거나를 넘어선, 
    어쩌면 천 년쯤 되었거나 아니면 시간을 초월한 모습 같기도 하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것과는 다른 시간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모습처럼 생각되기도 하였다. 
    짐승들이 그렇게 보이는 수가 있는지도 모르고 혹은 나무나 별들이---
    지금에 와서 어른으로서 내가 말하고 있는 것들을 
    그때엔 정확히 알지도 느끼지도 못했었지만, 
    무언가 그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느낄 수는 있었다. 
    아마도 그는 아름다웠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내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 나는 그를 싫어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조차도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그저 그가 우리들과는 아주 다르고, 
    어쩌면 짐승이나 아니면 영혼이나 환상과도 같은 존재라고 느꼈는데 
    확실히 알 순 없었지만 그는 진정으로 우리들의 생각으로는 
    가 닿을 수 없을 만큼 다른 사람이었다. 
    이것 이상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것조차도 어느 부분은 그 후의 인상에서 보태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몇 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그와 나는 다시 가까운 관계가 되었다. 
    데미안은 그의 동급생과 같은 시기에 교회의 견신례를 받지 않았었는데 
    그러한 일은 당시의 관습에 어긋난 것으로 또 곧 소문의 대상이 되었다. 
    학교에선느 그가 본래 유대인이라는 등, 이교도라는 둥, 소문이 파다했으며 
    어떤 아이들은 그와 그의 어머니는 무신론자라고 하기도 했고 
    터무니없는 사교를 믿고 있다고 하기도 했다. 
    소문은 한층 과장되어 그는 자기 어머니와 마치 
    애인 같은 관계로 살고 있다는 이야기까지도 나돌았다. 
    아마 이제껏 그는 신앙 생활을 하지 않고 자라났으나 
    그것이 그의 미래에 어떤 지장을 초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2년이나 늦게서야 견신례를 받도록 하였다. 
    그래서 이 몇 달 간의 견신례 수업 동안 그는 나와 동급생이 되었다. 
    얼마 동안 나는 그에게서 아주 멀어져 있었는데 
    그와는 되도록 어울리고 싶지 않은 심정이었다. 
    그는 무성한 소문과 비밀에 싸여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자면 크로머의 사건 이래로 나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채무감이 
    나로 하여금 그에게 다가서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또한 나로서도 나 자신만의 비밀로 인해 그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견신례 수업의 기간은 나의 성적인 문제의 결정적인 성숙의 시기와 일치했기 때문에 
    그러지 않으려 무척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경건이나 교의 따위는 머릿속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목사님의 이야기는 아주 멀고도 고요하며 
    성스러운 비현실적인 세계에서나 존재하고 있었고 
    그것이 아무리 아름답고 가치있는 일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현실적이고 자극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다른 일은 지극히 생생한 바로 그런 종류의 것들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갈등 상태가 나로 하여금 
    수업에 무관심하면 할수록 데미안에게 접근해가도록 만들었다. 
    그 무엇인가가 우리들을 연결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 회상의 실마리를 되도록 정확히 따라가보려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것은 아직도 교실에 불이 켜져 있던 이른 아침 시간의 일이었다. 
    목사님은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나는 거의 그 이야기를 듣지 않은 채 졸음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때 목사님은 좀 어조를높이시면서 카인의 표지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일종의 영감이랄까, 경고 같은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