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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3 장 도 둑 - 4

Joyfule 2008. 10. 1. 01:36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3 장 도 둑 - 4 
    ’독심술’이란 말을 꺼내어 오래 덮어두었던 
    크로머와의 사건을 상기시킬까도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그 일은 우리 두 사람 사이에서 아주 미묘한 문제가 되어 있었다. 
    수년 전에 그가 내 생활에 개입했었던 그 일에 대해서는 
    그나 나나 아주 은근히 암시하는 일조차 없이 지내왔다. 
    마치 그 일이 없었던 것처럼 여기거나 아니면 
    서로가 상대편이 그 일에 대해선 깡그리 잊고 있다고 여기는 것 같은 상태였다. 
    한 두 번쯤 함께 거리를 걷다가 크로머를 만난 적도 있었지만 
    우리는 서로 시선을 교환하지도 않았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다. 
    ”그럼 의지는 어떻게 되는 거니?” 나는 물었다. 
    “넌 사람은 자유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으면서도 
    또 사람이 그의 의지를 어느 곳에 집중시키면 
    자기의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어. 
    그건 서로 일치되지 않는 말인걸. 
    내가 내 의지를 지배할 수 없다면 내 의지를 임의로 집중시킬 수도 없지 않겠니?” 
    그는 내 어깨를 쳤다. 
    그건 내가 그를 즐겁게 해주었을 때 그가 하는 행동이었다. 
    ”좋아, 그걸 질문해줘서.”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사람은 항상 묻고 의심해야 하는 거야. 
    그렇지만 그 문제는 지극히 단순해.
     예를 들어 아까 이야기한 부나비가 자기의 의지를 별이라든가 
    또는 그밖의 어디엔가 집중시키려고 한다면 그건 불가능해. 단지---
    그 부나비들은 애당초 그런 노력을 하려고 하지 않는 거야. 
    그것들은 오직 그들을 위해 의의와 가치가 있는 것,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 절대로 가져야 하는 것만을 찾기 때문이야. 
    그렇게 할 때만이 믿을 수 없는 일조차 성공하게 되는 거야. ---
    그럴 때에 그들은 그들 외에 다른 어떤 짐승도 가질 수 없는 
    불가사의한 육감을 발전시킬 수 있는 거야. 
    우리들은 분명히 짐승들보다는 더 많은 활동의 영역과 흥미를 갖고 있어. 
    하지만 우리들 역시 퍽 좁은 범위 내에 머물러 있도록 제약을 받고 있어서
    그 이상을 성취하긴 힘들어. 나는 틀림없이 이것저것 상상할 수는 있고, 
    무조건 북극에 가고 싶다든가 하는 공상을 할 수도 있어. 
    그러나 그 소원이 정말 내 자신의 내부에 충분히 깃들어 있고, 
    나의 전 존재가 그것에 의해 가득 차 있을 때에만 그것을 실행할 수 있고 
    충분히 강하게 바랄 수도 있는 거야. 그럴 수만 있다면 
    네가 너의 내부에서 요구하는 바를 시험해보기가 우섭게 잘 될 것이고, 
    너의 의지를 훈련 잘 된 망아지처럼 다룰 수가 있을 거야. 
    가령 내가 지금 목사님이 앞으로는 
    안경을 쓰지 않도록 하려고 생각한다면 그건 안 되는 말이야. 
    그건 단순히 장난에 불과할 뿐이지. 지난 가을에 말이야, 
    나는 내가 앞쪽에 있는 내 자리를 옮겼으면 하는 
    확고한 요구를 가졌었는데 그건 아주 잘 되었어. 
    그때 마침 이름 순서로 보아 내 앞에 앉아야 하는 애가 나타난 거야. 
    그는 쭉 앓고 있다가 학교에 다시 나오게 되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자리를 비워주어야 했어. 
    내가 비켜주었지. 그건 내 의지가 기회를 잡을 준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래.” 나는 말했다. 
    “나에게는 그 당시 그게 매우 이상하게 생각되었어. 
    우리가 서로에게 흥미를 느끼게 된 때부터 넌 내게 점점 가까이 왔지. 
    그런데 그건 왜 그랬니? 
    처음부터 바로 내 곁에 앉은 것이 아니라 몇 번은 내 앞자리에 앉았었잖아. 
    그렇지 않니? 
    그건 어째서니?” 
    ”맨 처음 내 자리를 옮기려고 했을 때는 나 스스로도 어디에 앉고 
    싶은 것인지를 확실히 알지 못했었기 때문이야. 
    난 그저 뒤쪽으로 가고 싶다고 느꼈을 뿐이었어. 
    네 곁에 앉으려는 것이 내 의지였엇지만 처음엔 그것이 의식되지 않았던 거야. 
    동시에 너의 의지도 함께 나를 이끌어주고 있었던 거야. 
    내가 네 앞에 앉았을 때 나는 내 소원이 이제 반쯤은 충족되었다고 느꼈어. 
    내가 네 곁에 앉는 것 외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는 걸 알았던 거야.” 
    ”하지만 그땐 새로 들어온 학생이 없었을걸.” 
    ”그랬지. 하지만 말이야, 그때 나는 단순히 내가 원한 바를 행했을 뿐이야. 
    아주 쉬운 방법으로 네 곁에 앉은 거야. 
    나와 자리를 바꾸었던 아이는 그저 좀 이상하게 여겼을 뿐 상관하지 않았거든. 
    목사님은 필경 한 번쯤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셨을 거야. 
    요컨대 목사님은 나와 관련이 있을 때마다 은연중에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을 거야. 
    내 이름이 데미안이고, 이름에 D자가 있는 내가 
    뒤쪽의 S자 사이에 앉아 있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엇을 거란 말이야! 
    그러나 나의 의지가 자꾸 그 의혹에 반대하고 방해했기 때문에 
    그의 의식 속에까지 배어들진 않았어. 
    그는 여러 번 무엇인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의식하고는 
    나를 쳐다보고 연구하기 시작했거든. 
    그런데 그런 때에 대처하는 좋은 방법을 나는 알고 있어. 
    매번 그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거야. 
    거의 모든 사람은 그 시선을 견디지 못해.
    왠지 불안해지는 거야. 
    만약 네가 누군가에 대해 무엇을 이루려 할 때는 
    가자기 그의 눈을 흔들리지 말고 응시해봐. 
    그때 그가 하나도 불안해 하지 않으면 그 일을 단념하는 것이 좋아. 
    그 사람에 대해선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으니까 말야. 
    하지만 그런 일은 아주 드물어. 
    난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에 보지 못했어.” 
    ”그게 누구니?” 나는 재빨리 물어보았다. 
    그는 흔히 깊은 생각에 잠겼을때의 버릇인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다가는 시선을 돌리고는 대답을 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몹시 궁금하였지만 다시 물어볼 수는 없었다. 
    나는 그때 그가 자기 어머니에 대해 말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는 어머니와 대단히 친밀하게 지내고 있는 것 같았지만 
    어머니에 대해서는 한 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었으며 
    집으로 데리고 간 적도 없었다.
    나는 그의 어머니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거의 모르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어떤 일을 성취하기 위해 여러 번 그런 시도를 하고 
    나의 의지를 집중시키는 노력을 해보았다. 
    아주 간절한 소원이 있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소용이 없었고 성공할 수도 없었다. 
    그 일에 대해선 감히 데미안에게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내가 소원한 바를 그에게 고백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데미안 역시 묻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