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세계문학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3장 도둑 - 3

Joyfule 2008. 9. 30. 01:03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3 장 도 둑 - 3 
    시선을 들자 앞쪽 줄에서 데미안이 나를 향해 얼굴을 돌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눈은 밝게 빛나며 말을 걸고 있는 것같이, 
    또는 진지하면서도 냉소적인 여운을 담은 것같이 보였다. 
    아주 잠깐 동안 그는 나를 쳐다보았을 뿐이었지만 내 마음은 갑자기 긴장되어 
    목사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였고 그가 카인의 표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목사님의 말씀엔 영혼이 담겨져 있지 않다는 것, 
    그 가르침에 대해서는 다른 관점에서 볼 수도 있고 
    그것을 비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느꼈다. 
    이 순간 데미안과 나는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우리의 영혼이 다시 어떠한 연관을 갖게 되었다고 느끼자마자 
    그것이 마술처럼 공간 속으로 전파되어 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그의 힘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전혀 우연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당시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하였다---
    며칠 후 데미안은 견신례 수업 시간에 갑자기 자리를 바꾸어 내 앞 줄에 와 앉았다
    (빽빽이 들어찬 교실의 빈민 병원 같은 냄새 속에서 
    아침마다 그의 목에서 풍겨나오는 비누 냄새는 
    얼마나 부드럽고 신선하게 느껴졌던가를 나는 오늘날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며칠이 지난 후 그는 다시 자리를 옮겨 이번에는
    내 곁에 앉았고 겨울과 봄 내내 자리를 바꾸지 않았다. 
    지겨운 아침 수업은 전혀 달라졌다. 
    수업은 더 이상 졸리지도 지루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 시간을 고대하고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은 자주 무섭게 집중하여 목사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는데 
    옆에 앉은 그는눈짓 한 번만으로도 주의해서 들어야 할 이야기나 
    말을 내게 일러주었고 나는 기꺼이 그이 지시에 따랐다. 
    다른 아이와는 판이하게 다른 그의 집중된 시선은 내게 어떤 경고를 주었고 
    내 마음속에서 의혹과 비판적인 견해를 갖게 하였다. 
    때로 우리는 학과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 충실치 못한 학생노릇을 하였다. 
    데미안은 언제나 선생님과 학급 친구들에 대해서 정중하게 행동했다. 
    아이들이 흔히 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적도 전혀 없었고 
    크게 웃거나 떠들어대지도 않았고 선생님께 꾸중을 듣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아주 나직이, 속삭인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손짓이나 눈짓만으로도 나를 그 자신의 일로 끌어들일 수가 있었다. 
    이러한 일은 때로는 기묘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그는 나에게 어떤 아이가 그의 흥미를 끄는지, 
    그러면 그가 어떤 방법으로 그 아이를 관찰하는지를 말해준 적이 있었다. 
    많은 아이들에 관해 그는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나에게 말했다. 
    “내가 엄지손가락으로 너에게 신호를 하며 
    누구누구가 우리를 돌아다보거나 목덜미를 긁적거릴 거야.” 
    수업이 시작되어 내가 그 일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을 무렵 
    막스는 갑자기 눈에 띄는 몸짓으로 엄지손가락을 나에게 보였다. 
    내가 급히 지적했던 그 아이를 보면 그 아이는 으레 
    무슨 철사줄에라도 끌려오듯이 우리를 쳐다보거나 머리를 긁적이는 것이엇다. 
    나는 선생님에게도 한 번 시험해보자고 막스를 졸랐지만 
    그 부탁은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언젠가 한 번 과제를 복습해 오지 않은 날 
    목사님이 나에게 질문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막스는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목사님은 문답 교과서 한 절을 암송시킬 아이를 찾다가 
    마침내 그의 시선이 나의 죄지은 듯 불안해 하는 얼굴에 멎었다. 
    목사님은 천천히 막스의 옆으로 다가와서는 나를 향해 손짓을 하면서 
    내 이름을 막 부르려고 하셨는데---
    그때 그는 마음이 산란해진 듯 옷깃을 만지작거리더니 
    자기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데미안에게로 시선을 옮겨 
    무엇인가를 물어보려고 하다가는 갑자기 몸을 돌리고 
    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다른 학생을 지적했다.
    이 장난은 대단히 재미있었는데 막스가 번번이 
    나에 대해서도 같은 장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교에 가는 길에 갑자기 데미안이 내 뒤를 따라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돌아다보면 정말로 그는 거기에 있곤 하였다. 
    ”정말로 너는 네가 원하는 대로 다른 사람이 생각하도록 할 수 있는 거니?”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는 흔쾌히 친절하고 조리있게 어른처럼 설명을 해주었다. 
    ”아냐." 그는 말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왜냐하면, 목사님은 그렇다고 말씀하시지만 
    사람은 자유 의지 같은 건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야.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원하는 바를 생각하게 할 순 없듯이 
    나도 내가 원하는 것을 남에게 생각하게 할 순 없어. 
    그러나 우린 사람들을 잘 관찰할 수는 있단 말이야. 
    그러면 때때로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또는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제법 정확하게 알아차릴 수가 있게 돼. 
    그렇게 되면 대개는 그 사람이 다음 순간엔
     무엇을 할 것인지도 예측할 수 있게 되는 거야. 
    아주 간단해. 단지 다른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있을 뿐이지. 물론 연습이 필요하긴 해. 
    예를 들면, 나비 중에는 수컷보다는 암컷의 수가 훨씬 적은 종류의 부나비가 있어. 
    이 부나비도 역시 다른 곤충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번식을 하지. 
    수컷이 암컷을 수정시키면 암컷이 알을 낳는 거야. 
    만약 네가 지금 이 부나비 암컷을 한 마리 가지고 있다면---
    이런 실험은 자연과학자들이 자주 하는데---
    밤에 이 암컷을 찾아 수컷들이 날아오는 것을 볼 수 있을 거야. 
    몇 시간이나 걸리는 먼 곳에서 날아 온 거야. 몇 시간이나 되는! 
    생각해봐. 수 킬로나 떨어진 곳에서도 
    수컷들은 그 부근에 있는 유일한 암컷을 아아차리는 거야. 
    사람들은 그 사실을 해명해보려고 애쓰지만 어려운 문제야. 
    일종의 냄새나, 그 비슷한 무엇이 있긴 할 거야. 
    사냥개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흔적을 추적해내는 것처럼 말이야. 
    알아듣겠니? 그것도 바로 이런 중류의 일이지. 자연계에서는 그런 일은 얼마든지 있지만 
    아무도 그것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어. 그렇지만 이 정도는 설명할 수 있겠지. 
    만일 그 부나비의 암컷이 수컷만큼 많이 있었다면 
    그것들도 그렇게 예민한 후각을갖게 되진 않았을 거야. 
    그것들은 짝을 찾는 일에 여러 대를 걸쳐 훈련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 후각을 갖게 된 거야. 짐승이나 마찬가지로 인간도 
    자기의 모든 주의력과 온 의지를 어느 한곳에 모은다면 그것에 도달할 수 있게 될 거야. 
    그게 전부야.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래.
     어떤 사람을 아주 세밀하게 관찰해보렴. 
    그럼 그 사람 자신보다도 그에 대해서 더 많이 알 수 있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