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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3 장 도 둑 - 6

Joyfule 2008. 10. 3. 01:23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3 장 도 둑 - 6 
    나 자신의 독자적이고 개인적인 생활과 견해가 위대한 이념의 강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며 나는 불안하면서도 경건한 심정이 되었다. 
    그러한 깨달음은 무엇인가를 증명해주고 
    가벼운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었지만 썩 기꺼운 것은 아니었다. 
    거기엔 가혹하고도 떫은 맛이 있었다. 
    그 속에는 인생에 대한 책임이, 나는 이미 어린애가 아니며 
    인생을 혼자의 힘으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내재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이런 느낌들을 이야기하면서 데미안에게 
    유년 시절부터 갖고 있던 ‘두 개의 세계’에 대한 생각을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는 나의 가장 내면적인 감정이 
    그의 견해에 공명하고 있으며 또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나의 이런 감정을 악용한다든지 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는 내 이야기에 과거 어느때보다도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면서 
    내 눈을 들여다보았기 때문에 나는 다시 눈을 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시선에는 내가 직시할 수 없는 어떤 묘하게 짐승 같은, 
    시간을 초월하여 나이를 상상할 수 없는 그런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언제 한번 더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그는 달래듯이 말했다. 
    ”난 네가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는 이상의 것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너 또한 네가 생각한 바를 전부 살아보지는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 그
    건 좋지 않아. 우리가 살고 있다는 생각만이 가치가 있는 거야. 
    넌 이미 너에게 ‘허용된 세계’가 세계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 말야. 
    그러면서도 목사님이나 선생님들의 말씀처럼 
    다는 절반의 세계를 은폐하려고 애썼던 거야. 
    그런 시도는 성공할 수가 없어. 이미 생각을 시작한 사람은 누구나 마찬가지야.” 
    그의 이야기는 내 마음에 깊이 와 닿았다. 
    ”하지만” 나는 외치다시피 말했다.
     “사실상 금지된 추악한 것들도 이 세상엔 존재하고 있어. 
    너도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거야. 
    하지만 그것들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단념할 수밖엔 없을 거야. 
    난 살인이라든지 다른 온갖 가능한 죄악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알아. 
    하지만 그것이 존재한다고 해서 내 스스로 범죄자가 되어야 한다는 건 아니잖아?” 
    ”그런 것들을 오늘 모두 해결할 수는 없어.” 막스는 나를 진정시키려 했다. 
    “넌 살인을 하거나 소녀를 능욕해서는 안 돼. 
    그건 분명히 안 되는 일이야. 
    너는 아직도 ‘허용된 것’과 ‘금지된 것’이라고 불려지는 것을 
    너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데까지는 못갔어. 
    단지 진리의 아주 작은 한 조각을 감지한 것뿐이야. 
    다른 부분들을 더 많이 깨달을 수 있게 될 거야. 
    그렇게 알고 있으면 되는 거야. 넌 한 일 년 전부터 
    너의 내부에 어떤 충동을 지니고 있었던 건데, 
    그런 건 흔히 다른 어떤 충동보다 강하기 때문에 ‘금지된 것’으로 간주되는 거야. 
    그리스 사람이나 다른 민족들은 우리와는 반대로 그러한 충동을 
    일종의 신성한 것으로 취급해서 굉장한 축제를 벌이고 그것을 신봉햇어. 
    ‘금지된 것’은 영원한 것도 아니고 변경될 수도 있는 거야. 
    오늘에라도 목사님 앞에서 결혼을 하면 누구나 당장 여자와 잘 수 있잖아. 
    다른 민족은 우리와는 달라. 오늘날에 있어서도 역시 다르단 말야. 
    그러므로 우리들은 허용된 것과 금지된 것을---
    자기에게 그러한 것을 제각기 자신의 힘으로 찾아야 하는 거야. 
    실제로는 금지된 일을 한 번도 하지 않아도 
    대악당이 될 수 있는 일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야.
    그것은 단지 편의상의 문제에 불과해! 
    안일해서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판정해낼 수 없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금지된 것에 복종하고 말지. 
    그것이 쉽거든.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내부에서 그 금지된 것을 스스로 느끼기도 한단 말이야. 
    다른 모든 사람들이 매일같이 하는 일이라도 그들에겐 금지되어 있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에겐 금지되어 있는 일이 그들에겐 허용되어 있을 수도 있는 거야. 
    요컨대 사람은 각자 독자적이 되어야 하는 거야.” 
    그는 갑자기 자기가 너무 많은 말을 한 것을 후회하기라도 하듯이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때 그가 어떤 심정이었는지를 어느 정도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는 매우 유쾌해 보이고 
    자기의 생각을 닥치는 대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언젠가 말했듯이 ‘그저 지껄이기 위해’ 이야기하는 것은 
    죽어도 참을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게서 내가 진정으로 흥미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아울러 약간의 오락적인 기분과 재치있는 농담을 즐기는 듯한 기분, 
    다시 말하자면 완전한 진지함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마지막에 쓴 ‘완전한 진지함’이란 귀절을 다시 읽어보니, 
    내가 데미안과 더불어 경험했던 사춘기의 체험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 다시 생각난다. 
    마침내 견신례를 받는 날이 가까워졌고, 
    종교 수업의 마지막 몇 시간에는 최후의 만찬에 대한 공부를 하였다. 
    그것은 목사님이 생각하시기엔 매우 중요한 대목이었기 때문에 
    그는 애를 많이 썼고, 신성한 느낌과 기분이 우리들에게도 잘 전해졌었다. 
    그런데 마지막 두서너 시간밖에 남지 않은 
    문답 수업 시간에 내 생각은 딴 곳을 헤매고 있었다. 
    내 친구에 관해서였다. 
    교회 사회로의 엄숙한 입문이라 할 견신례를 준비하는 동안 
    내게 있어서의 이 반 년 동안의 종교 수업의 가치는 
    목사님의 설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데미안 가까이에서 그의 영향 속에서 지낸 일에 있다는 생각이 
    피할 도리 없이 엄습해왔다. 
    이제 나는 교회가 아니라 아주 다른 것에, 
    즉 사상과 개성의 교단에 입회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것은 어떻든 이 세상에 분명히 존재할 것이었고 
    데미안이 대표자이거나 사도로 느껴졌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