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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3 장 도

Joyfule 2008. 10. 4. 06:19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3 장 도 둑 - 7 
    나는 이런 생각을 억누르려고 애썼다. 
    어떻든간에 나는 견신례의 의식만은 
    진심으로 경건하게 경험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나의 새로운 생각과는 거의 조화될 수 없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원하던 바를 하고 싶었고 그 소원은 간절했다. 
    그 생각은 가까워오는 교회의 의식에 대한 생각과 결부되어 
    결국 나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의식을 치르겠다고 결심을 했다. 
    내게 있어서 그 의식은 데미안에 의해 열려졌던 
    사색의 세계로의 입문을 의미해야 했던 것이다. 
    그와 다시 한번 열띤 토론을 벌인 것도 그 무렵의 일이었다. 
    문답 수업 시간이 시작되기 바로 전이었다. 
    내 친구는 아무 말이 없었는데 분명 조숙하고 잘난 척하며 
    대드는 내 이야기를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고 있었다. 
    ”우린 너무 많이 지껄이고 있어.” 그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약삭빠른 이야기는 아무 가치가 없어. 조금도 없단 말이야. 
    다만 자기 자신에게서 떨어져나갈 뿐이야. 
    자기 자신에게서 떨어져나간다는 건 죄악이야. 
    사람이란 마치 거북이처럼 
    자기 자신의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그리고 나서 곧 우리는 교실로 들어갔다. 
    수업이 시작되었고 나는 수업에 열중하려고 애썼는데 
    데미안도 나를 방해하진 않았다. 
    잠시 후 나는 그에게서 무슨 독특한 것, 공허하달까 냉정하달까, 
    어쩌면 그의 자리가 텅 비어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 느낌이 가슴을 압박하기 시작하자 나는 그를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가 보통 때와 마찬가지로 똑바르고 단정한 자세로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보였다. 
    무엇인가가 그에게서 떨어져 나간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그로부터 나와서 
    그를 감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가 눈을 감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눈은 떠져 있었다. 
    그렇지만 그 눈은 무엇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물을 보는 눈이 아니었다. 눈은 단지 물끄러미 열려 있을 뿐 
    내부의 세계가 아니면 아득히 먼 세계를 향해 있었다. 
    완전한 정지 상태로 그는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엇고 거의 숨도 쉬지 않는 것 같았다. 
    그의 입은 마치 나무나 돌로 새겨놓은 것 같았다. 
    얼굴은 창백하여 돌처럼 보였다. 갈색의 머리칼만이 가장 생기를 띠고 있었다. 
    두 손은 자기 앞의 걸상 위에 놓여 있었는데 마치 
    돌이나 과일 같은 물체처럼 생기가 없고 고요하며 
    창백하게 움직이지 않았지만 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숨어 있는 강력한 생명를 감싸고 있는 야무지고 질 좋은 깍지처럼 보였다. 
    그 광경에 나는 전율을 느꼈다. 
    그는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하마터면 큰 소리로 그렇게 외칠 뻔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매혹된 눈빛으로 그의 창백하고 굳어버린 가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야말로 데미안의 본질임을 느꼈다. 
    나와 함께 걷고 이야기하던 이제까지의 그는 단지 데미안의 절반, 
    즉 때론 배역을 맡아주고 내게 잘 맞추어 호의로 협조해주던 
    데미안의 절반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나 진짜 데미안은 이처럼 굳어 있고, 고색창연하고, 짐승 같기도 하고,
    아름다우며 차갑게 죽어 있으면서도 그 내면에는 
    견줄 데 없는 생명력이 넘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의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절대 고요의 이 공허, 
    이 에테르와 별이 가득한 하늘, 그리고 고독한 죽음! 
    지금 그는 완전히 자기의 내면으로 몰입했다는 것을 느끼고 나는 전율했다.
     이렇게 고독한 적은 없었다. 
    그와 나는 전혀 무관한 존재였고, 그는 내가 도달할 수 없는 존재였으며 
    세상의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섬보다 내게서 더 먼 곳에 있었다. 
    나 외의 누구도 그를 보는 사람이 없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모두가 그를 바라보고는 오싹하고 모서리칠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그를 주의해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내가 보기에는 석상처럼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파리가 한 마리 그의 이마 위에 내려앉더니 천천히 코와 입술로 내려왔다.
     ---그는 주름살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어디에, 그는 도대체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는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그는 하늘에 있는 것일까? 지옥에 있는 것일까? 
    그에게 그것에 관해 물어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시간이 끝나고 다시 되살아나 숨쉬고 있는 그를 보았을 때, 
    그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을 때, 그는 이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의 얼굴에는 다시 혈색이 돌고 그의 손은 다시 움직였지만 
    그의 갈색 머리칼은 윤기를 잃어 지친 것처럼 보였다. 
    그후 여러 날 동안 침실에서 나는 한 가지 새로운 연습을 하는 데 몰두했다. 
    꼿꼿한 자세로 걸상에 앉아 눈을 한곳에 고정시키고 
    부동자세를 한 채 얼마나 오래 견딜 수 있는지, 
    그리고 그때 무엇을 느낄 수 있는지를 알려고 하였다. 
    그저 나는 몹시 피곤해지기만 했고, 눈꺼풀이 가꾸 가려울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견신례를 받았지만 
    거기에 대한 중요한 기억이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이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유년 시절은 산산이 부서져 나의 주위에 떨어져내렸다. 
    부모님께서는 일종의 낭패를 느끼시는 표정으로 나를 대하셨다. 
    누나들은 아주 낯선 존재가 되었다. 
    냉담함이 예전의 감정과 기쁨 사이를 비집고 들어 그것을 왜곡시키고 퇴색시켜버렸다. 
    정원은 향기를 잃고 숲은 더 이상 마음을 끌지 않았으며 
    세계는 무슨 골동품의 재고정리장처럼 무미견조하고 매력없이 
    나를 둘러싸고 있을 뿐 책은 단지 종이조각이었고 음악은 소음에 불과했다. 
    가을이되면 나무의 주위에는 낙엽이 떨어지게 마련이었지만 
    나무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비가 나무를 적시고 혹은 햇빛이 혹은 서리가 내리고, 
    나무의 내부에서는 생명이 서서히 위축되고 깊숙이 움츠러든다. 
    그러나 나무는 죽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다림인 것이다. 
    휴가를 지낸 후 나는 다른 학교에 가기 위해 난생 처음 집을 떠나 생활하게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때때로 유난히 다정하게 내게 가까이 오셔서 미리 이별을 고하시고 
    내 마음속에 사랑과 향수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간직하게 하려고 애쓰셨다. 
    데미안은 여행을 떠났다. 나는 혼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