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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4 장 베아트리체 3.

Joyfule 2008. 10. 8. 01:41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4 장 베아트리체 3.
    극히 짧은 동안의 죽은 듯한 잠에서 깨어나자 
    마음은 괴로왔고 발광할 듯한 고통이 나를 덮쳐왔다. 
    나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낮에 입었던 샤쓰는 형편없이 구기어졌고 
    웃옷과 구두는 방바닥에 팽개쳐진 채로 있었으며 
    땀내와 토사물의 냄새가 풍기고 두통과 구토증과 
    미칠 듯한 갈증이 나를 휩싸고 있는 동안 
    홀연 내 마음의 거울에는 오랫동안 볼 수 없었던 한 영상이 비쳤다. 
    나는 고향과 부모님의 집,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들과 정원을 보았고, 
    조용한 고향 집의 내 방을 보았으며 
    학교와 시장을 보았고, 데미안과 견신례의 장면을 보았다. 
    이 모든 것은 밝게 빛나고 있었으며 모두 아름답고 경건하고 청순하게 보였다.
    이 모든 것은 그렇다는 것을 나는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어제까지도, 아니 몇 시간 전까지도 나의 것이었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데 
    지금 이 순간 비로소 사라져버리고 저주를 받고 더 이상 나에게 속해 있지 않으며 
    나를 거부하고 증오에 찬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 옛날 가장 아름다웠던 어린 시절의 정원에서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받았던 사랑과 친근함, 
    어머니의 다정한 입맞춤과 매번의 성탄절, 
    경건하고도 명랑했던 주 일요일 아침과 정원에 피어 있던 온갖 꽃---
    이 모든 것들은 황폐해지고 말았다. 
    이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내 스스로 짓밟아버린 것이다! 
    만약 지금이라도 사자가 와서 나를 묶어 쓸모없는 인간, 
    신성 모독자로 취급하여 교수대로 끌고 간다고 하더라도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기꺼이 따라가며 그 일을 받아들였을 것이었다. 
    나의 내면은 이러했다. 
    천지를 헤매어 다니며 세상을 얕잡아 본 자여! 
    외람된 정신으로 데미안의 사상에 공명하던 자여! 
    쓸모없는 인간이며 추잡하고 술에 취하고 더럽고 구역질이 나며 
    저열하고 거칠어진 짐승 같은 자이며, 
    추악한 충동의 노예가 된 내가 이럴 수밖에 더 있을까! 
    온갖 청순함과 빛과 사랑스런 마음으로 가득 차 있던 정원에서 자란 나, 
    바하의 음악과 시를 사랑했던 나, 이런 내가 그런 모습이 될 수 있다니! 
    내 자신의 웃음소리가, 술에 잔득 취해 자제력을 상실한 채 
    충동적이고도 바보처럼 낄낄거리던 웃음소리가 아직도 들려오고 있었으며 
    나는 심한 구역질과 분노를 느꼈다.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괴로운 가책 속에서도 고통을 견디는 것은 거의 향락에 가까웠다. 
    내 마음은 너무나 오랫동안 맹목적이고도 미련스럽게 움츠러들어 있었고 
    너무나 오랫동안 소리를 죽인 채 쇠잔하게 웅크리고 있었으므로 
    이런 가책과 고통의 전율과 영혼의 어떤 추악한 감정조차도 환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속에서는 분명 감정이 있었고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으며 
    심장이 고동치고 있었던 것이다. 
    비참의 구렁텅이 속에서도 
    나는 이렇듯이 해방이나 봄과 같은 그 무엇을 느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나는 거칠게 타락해가고 있었다. 
    최초의 주정은 얼마 되지 않아 최초의 자리를 넘겨주었다. 
    우리 학교에서도 폭주가 성행했고 난행이 속출했었고 
    나는 그들 가운데 최연소자 축에 끼었는데 얼마가지 않아 
    한몫 거드는 축이나 풋나기가 아니라 우두머리며 샛별 같은 존재였고 
    유명하고도 거침없는 주막집의 단골이 되었다. 
    나는 다시 한번 완전히 어두운 세계, 악마의 세계 속으로 투신했고 
    이 세계에서는 아주 근사한 녀석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내 마음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는 내 자신을 스스로 파멸시켜가는 미치광이의 소굴에서 살고 있었던 것인데 
    친구들에게는 대장이니, 근사한 녀석이니, 
    비상하게 날카롭고 재치가 번득이는 녀석이라고 인정받고 있었지만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는 불안에 갇힌 찬 영혼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어느 일요일 오전엔가 주일 예복차림으로 명랑하고 즐겁게 놀고 있는 
    어린 아이들을 보았을 때 돌연 눈물이 흘러내렸던 일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누추한 주막의 더러운 탁자에 기대어 맥주에 취해 낄낄거리면서 
    터무니없이 방탕한 풍자로 친구들을 웃기고 때로는 놀리고 있는 동안에도 
    내 마음속의 나는 남몰래 내가 조롱하는 모든 것에 대한 공경심을 품고 있었으며 
    나의 영혼 앞에, 나의 과거와 어머니 앞에, 
    그리고 신 앞에 울면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내가 한 번도 나의 패거리들과 일체가 될 수 없었다는 사실과 
    그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고독했고 그것으로 인해 
    그렇게도 괴로와했던 것에는 근거가 있었다. 
    나는 가장 난폭한 패의 마음에도 드는 주막집의 호걸이며 독설가였다. 
    나는 선생, 학교, 부모, 교회에 대한 생각이나 
    이야기에서는 재치와 용맹을 떨쳤다
    나는 음담패설조차도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 했으며, 한 가지쯤은 해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의 패거리들이 여자에게 갈 때만은 한 번도 끼지 않았던 것인데 
    그것으로 미루어 나는 철면피한 탕자임에 틀림없는 척했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외로웠고 사랑에 대한 격렬한 동경과 
    가망없는 그리움에 가득 차 있었던 것이었다. 
    어느 누구도 나 이상 상심하기 쉽고 부끄럼을 많이 타는 사람은 없었다. 
    때로 젊은 처녀들이 아름다고 말쑥한 차림으로 
    명랑하고 우아하게 걸어가는 것을 보면 그들은 근사하고 깨끗한 꿈처럼 느껴졌고 
    나보다 천 배나 선량하고 청순하게 생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