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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4 장 베아트리체 4

Joyfule 2008. 10. 9. 08:06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4 장 베아트리체 4. 
    얼마 동안 나는 야크겔트 부인의 문방구에는 가지도 못했는데, 
    그 여자를 보면 알폰스 베크가 그녀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생각날 것이었고 
    그러면 내 얼굴이 무참하게 새빨개지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 자신이 새로운 패거리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독학 이질적인 존재라고 느껴지면 느껴질수록 더욱더 
    그들에게서 떨어져 나올 수가 없었다. 
    이젠 폭음을 하고 터무니없는 장담을 해대는 일이 정말로 
    내게 한 번이라도 즐거웠던가의 여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 
    사실상 나는 술에 익숙해질 수가 없었기 때문에 번번이 고통스런 결과를 당했다. 
    만사가 다 강제적이었다. 
    그밖에 다른 어떤 일을 해야 할지를 몰랐으므로 그저 하던 그대로 계속했을 뿐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혼자인 것을 무서워했고, 
    노상 마음이 그리로 향해가는 온화하고 수줍은 내적인 자작이 두려웠으며 
    빈번히 엄습해오는 따뜻한 사랑에 대한 갈망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결핍되어 있었다. ---
    그것은 진실한 친구였다. 
    내가 좋아하는 동급생이 두 서너 명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들은 성실한 축에 속해 있었고 
    나의 악행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아무에게도 비밀스런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나를 피했다. 
    모두들 나를 근본이 흔들리고 있는 희망없는 불량학생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선생님들도 나의 행동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고 
    누차 혹독한 처벌을 내리기도 했으나 
    마침내는 퇴학 처분을 받게 되리라고들 기대하고 있었다. 
    나 자신도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벌써 오래 전부터 착한 학생은 아니었고, 
    이러한 방탕한 생활을 더 이상 지탱해갈 수는 없다고 느끼면서도
     애써 그러한 악행을 고집해감으로써 자신을 속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를 고독하게 만듦으로써 
    신이 우리들 자신에게로 인도해줄 수 있는 길은 너무도 많다. 
    신은 그때 나와 함께 이런 방탕의 길을 갔던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악몽과도 같았다. 
    더러운 것, 찐득거리는 것, 깨어진 맥주잔과 말도 안 되는 
    농담을 지껄이며 보낸 밤들 속에서 나는 몽유병자처럼 쉴새없이 괴로와하면서도 
    구역질나고 더러운 길을 기어다니고 있었던 내 모습을 본다. 
    주에게로 가는 도중에 악취와 쓰레기로 가득 찬 
    뒷골목의 진흙탕 속에 빠져버리는 그런 꿈 이야기가 있었다. 
    나도 그런 지경이었다. 
    보잘것없는 짓을 함으로써 나는 더욱 고독하게 되었고, 
    나와 나의 유년 시절 사이엔 냉혹한 시선으로 망을 보는 문지기가 버티어 선 
    굳게 닫힌 낙원의 문이 생겨났던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내 자신에의 향수의 처음이었으며 그 사실의 깨달음이었다. 
    사감 선생님으로부터 경고의 편지를 받고 아버지께서 성○○시에 오셔서 
    예기치 않게 내 앞에 나타나셨을 때 나는 기겁을 하고 몸에 경련까지 일으켰다. 
    그러나 그 겨울이 다갈 무렵 두 번째로 오셨을 때, 
    이미 나는 냉담하고 무심해져 있었고, 
    꾸중을 하셔도, 당부를 하셔도, 어머니를 상기시키셔도 나는 예사로 들어넘겼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께서는 몹시 노여워하시며 만일 내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불명예스럽고도 모욕적으로 퇴학을 시켜서 감화원에 집어넣겠다고 말씀하셨다. 
    하실 테면 하시라지! 아버지께서 떠나가신 후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으나 
    아버지께서는 내게서 아무런 약속도 듣지 못하셨고 
    내게로 통하는 길도 발견하지 못하셨다. 
    아주 잠시 동안이었지만 그러한 일이 아버지로서는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장차 무엇이 되든 나에겐 상관이 없었다. 
    주막집에 앉아서 지껄여대는 따위의 기이하고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방식으로 
    나는 세상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었고, 그것이 내 항의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내 자신을 엉망진창으로 부수어갔고 
    때때로 사태는 이런 식으로 파악되곤 했다---
    만약 세상이 나와 같은 사람들을 필요로 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보다 더 나은 자리, 보다 더 가치있는 일을 부과해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필경 자멸하고야 말 것인데, 
    그 책임은 마땅히이 세상이 져야 하는 것이다, 라고 말이다. 
    그 해의 성탄절 휴가는 정말 불쾌했다. 
    나를 보신 어머니는 깜짝 놀라셨다. 
    나는 키가 한층 커졌고 야윈 얼굴은 생기없이 축 늘어진데다 
    눈 언저리엔 염증이 나서 잿빛으로 찌들어 처량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갓 나기 시작한 코 밑의 엉성한 수염 자국과 
    최근에 쓰기 시작한 안경이 나를 한층 낯설어 보이게 했다. 
    누나들은 뒤에서 킥킥거리고 웃었다. 만사가 불쾌했다. 
    서재에서 아버지와 나눈 대화도 불쾌하고 입맛이 썼으며 
    두서너 명의 친척과 나눈 인사도 그러했으며 
    무엇보다도 불쾌했던 것은 성탄절 전야였다. 
    내가 세상에 존재하게 된 이후 이날은 우리 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져온 날이었고, 
    축제와 사랑과 감사가 넘치는,
    qahslarhk 나와의 유대를 거듭 새롭게 해주는 저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성탄절에는 매사가 닫답했고 곤혹스러울 뿐이었다. 
    여태껏 해오신 대로 아버지께서는
     ‘그들은 그곳에서 양떼를 지키고 있었노라’하는 
    들판의 목동에 관한 복음서의 귀절을 봉독하셨고,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누나들은 기쁨에 넘쳐 선물이 놓인 책상 앞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