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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6 장 야곱의 싸움 - 3

Joyfule 2008. 10. 24. 01:24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6장 야곱의 싸움 - 3 
    며칠 후 두 차례의 기다림이 헛되이 지나간 후 
    나는 그가 혼자서 술에 만취된 채 차가운 저녁 바람을 맞으며
    비틀거리며 거리모퉁이를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를 부르고 싶지가 않았다.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내 곁을 지나쳤는데 
    마치 미지의 것으로부터 자기를 부르는 어두운 소리를 뒤따라가는 것처럼 
    불타는 고독한 시선으로 앞쪽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얼마쯤 뒤쳐져 그를 따라 갔다. 
    그는 마치 유령처럼, 광신적이지만 다소 흐트러진 걸음걸이로 
    철사줄에 끌려 가는 것처럼 가고 있었다. 
    처연한 심정이 되어 나는 집으로, 구원을 얻지 못한 꿈의 세계로 되돌아왔다. 
    ”저렇게 해서 지금 그는 자신의 내부에서 세계를 개선하고 있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 생각은 저속하고도 도덕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의 꿈에 대해서 대체 내가 알고 있는 게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그렇게 취한 속에서도 내가 불안스럽게 나의 길을 가는 것보다는 
    훨씬 확실히 그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리라. 
    수업 시간 사이의 쉬는 시간에 나는 한 번도 눈여겨본 적이 없는 한 동급생이 
    나에게 접근하려고 애쓰는 것을 가끔 느낄 수가 있었다. 
    그는 자그만하고 연약해 보이는 야윈 아이였는데 
    붉은 기가 도는 금발의 가는 머리카락을 갖고 있었다. 
    그의 시선과 태도에는 무언가 특이한 것이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가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자기 앞을 지나쳐버리게 내버려두고는 다시 나를 따라와서는 
    우리 집의 현관 앞에 멈춰서는 것이었다. 
    ”내게 무슨 볼일이 있니?” 내가 먼저 물었다. 
    ”난 그저 너와 한 번만이라도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 
    그는 수줍은 듯이 말했다
    . “조금만 함께 걸어줄 수 있겠니?” 
    나는 그를 따라걸었다. 
    그가 몹시 흥분한 상태로 기대에 차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너는 강신술가지?” 그가 아주 당돌하게 물어왔다.”
    ”아니, 크나우어.”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절대로 아니야, 어떻게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됐니?” 
    ’”아니면 접신술가니?” 
    ”그것도 아니야.” 
    ”제발 그렇게 말문을 닫아버리지 말아줘! 
    나는 네가 무엇인가 특별한 것을 지니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어. 
    너의 시선을 보면 알 수 있어. 네가 신령과 접촉하고 있다고 나는 확신해. 
    호기심에서 이런 질문을 하는 건 절대 아니야. 싱클레어, 
    그런 게 아니야! 내 자신도 일종의 탐구자인걸.
     그래서 이렇게 외로울 수밖에 없는 거야.” 
    ”자세히 말해봐.” 나는 그를 격려해주었다. 
    “난 정말 신령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 
    난 단지 내 꿈속에서 살고 있을 뿐이야. 그 점을 네가 느낀 모양이구나. 
    다른 사람들도 역시 꿈속에서 살고 있긴 하지만 
    그들 자신의 꿈속에서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 나와의 차이점이야.” 
    ”그래, 그럴지도 몰라.” 그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이 그 속에서 살고 있는 꿈이 무슨 종류의 꿈인가 하는 것만이 문제지.
    ---너는 선한 악마를 사용하는 마술에 관해 들은 적이 있니?”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런 건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방법을 배우면 돼. 
    죽지 않게 될 수도 있고 마술을 부릴 줄도 알게 되지.
     넌 한 번도 그런 연습을 해 본 적이 없니?” 
    이 연습에 대한 나의 호기심어린 질문에 그는 
    처음에는 대답을 안 할 듯하다가 내가 돌아서서 가버리려고 하자 비로소 이야기를 했다. 
    ”나는 잠들려고 할때나 정신을 집중시키려고 할 때 그런 연습을 해. 
    나는 무엇인가를, 예를 들면 낱말 하나나 
    어떤 사람의 이름이나, 또는 기하의 도형을 상상하는 거야. 
    그러고 나서는 될 수 있는 대로 집중적으로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이 내 머리속에서 존재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내 머리속에다 그려보려고 애쓰는 거야. 
    그것이 목구명에까지 차오르도록, 
    그것에 의해 내가 완전히 충만되기까지 그렇게 하는 거야. 
    그러면 나는 아주 확고해지고 아무것도 
    나의 이 안정된 상태를 방해하지 못하게 되는 거야.” 
    나는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얼마쯤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는 다른 이야기들을 더 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는 이상스러울이만치 흥분되어 있고 성급함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그가 질문을 보다 명확하게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러자 그는 곧 자신의 최대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너도 역시 절제하고 있지?” 그는 불안한 어조로 내게물었다.
    ”그건 무슨 뜻이니? 성적인 것을 말하는 거니?” 
    ”그래, 그걸 뜻해. 나는 지금이 년째 절제하고 있어. 
    그 가르침을 알게 된 이후로 말야. 
    너도 이미 알다시피 그 전에는 나도 방탕한 짓을 하고 다녔지.
     ---넌 한 번도 여자 곁에 가본 적이 없니?” 
    ”없어.” 나는 대답했다
    . “내게 알맞은 여자를 발견하지 못했던 거야.” 
    ”그러나 만약 네가 네마음에 드는 여자를 발견한다면 
    너는 그 여자와 함께 잘 수 있을 것 같니?” 
    ”물론이야. ---만약 여자측에서도 이의가 없다면.” 
    나는 약간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다. 
    ”아, 그렇다면 너는 잘못된 길을 가는 거야! 
    내적인 힘은 철저한 금욕 상태에서만 지속적으로 형성될 수 있는 거야. 
    나는 이 년쯤 금욕을 했어. 이 년하고도 일 개월이 좀 넘도록! 
    그건 매우 힘든 일이야. 번번이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곤 했지.” 
    ”들어봐, 크나우어. 나는 금욕하는 것이 
    그렇게 대단히 중요한 것이라곤 생각지 않아.” 
    ”나도 알고 있어.” 그는 내 말을 가로막았다. 
    ”모두들 그렇게 말하지. 
    그렇지만 너한테서까지 그런 말을 들으리라곤 기대하지 않았어. 
    보다 더 높은 정신적인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은 
    순결을 지켜야 하는 거야, 무조건 말이야!” 
    ”그래, 그럼 그렇게 하렴!
     하지만 나는 왜 자기의 성을 억제하는 사람이 
    그 어느 다른 사람보다 순결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겠어. 
    넌 성적인 것을 모든 생각과 꿈속에서 완전히 몰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