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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6 장 야곱의 싸움 - 7

Joyfule 2008. 10. 28. 04:42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6 장 야곱의 싸움 - 7 
    ”피스토리우스!” 
    내가 듣기에도 의아스러울이만큼 놀랄 정도로 
    치밀어오르는 악의를 품은 어조로 나는 말했다.
     “내게 다시 한번 당신이 꾼 꿈의 이야기를, 실제의 꿈 이야기를 해주시오. 
    당신이 말하는 것들은 모두---너무나 곰팡이 냄새가 난단 말이오!” 
    내가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그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말을 내뱉은 그 순간 나는 내가 쏘아 그의 심장에 명중시킨 그 화살이 
    바로 그의 무기창에서 얻어온 것임을---
    그가 이따금 내게 하던 풍자적인 어조의 자기 비난을 
    지금 내가 더욱 날카롭게 갈아서 되던진 것임을 
    창피스러움과 놀라움이 뒤섞인 심정으로, 번갯불처럼 선명하게 느꼈다. 
    그 또한 그것을 순간적으로 느끼고는 곧 조용해졌다. 
    나는 불안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심정으로 
    그가 무섭도록 창백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오랜 무거운 침묵의 시간이 지난 후 
    그는 새 장작을 불에 던지며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은 아주 정당하오, 싱클레어. 
    당신은 정말 영리한 친구요. 
    난 다시금 그놈의 곰팡내나는 일을 갖고 당신을 괴롭히지 않겠소.”
    그는 매우 침착하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입은 상처의 고통을 너무나도 잘 알 수가 있었다.
    나는 무슨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눈물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나는 진심으로 그에게 용서를 빌고 나의 애정에 넘치는 감사를 다짐하려고 했다. 
    간절한 말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
    그러나 나는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저 엎드린 채 불을 들여다 보고 아무 말 없이 기다릴 뿐이었다. 
    그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그저 엎드린 채 불을 들여다 보고 아무 말 없이 기다릴 뿐이었다. 
    그 역시 아무 말이 없었고, 그렇게 우리들은 엎드려 있기만 했다. 
    불은 다 타서 사위어들기 시작했고 
    불꽃이 사그라들 때마다 나는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무엇인가 아름답고 친밀한 것들이 식어가고 사라져감을 느꼈다. 
    ”당신이 내 말을 오해하지나 않을지 걱정이 됩니다.” 
    나는 압박감으로 메마르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이 어리석고 무의미한 말이 마치 신문소설을 낭독하는 것처럼 
    기계적으로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당신을 아주 정확히 이해하고 있소.” 
    피스토리우스는 나직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당신이 옳은 거요.” 그
    는 말을 멈추고 잠시 기다리더니 다시 천천히 말을 계속했다.
     “사람이 남에대해서 정당할 수 있는 한에 있어서 말이오.”
    아니, 아니, 내가 틀렸어요! 하고 내 마음속에서는 맹렬히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단 한 마디의 말로 그의 본질적인 약점과 그의 난점과 상처를 건드렸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스스로도 믿고 싶어하지 않는 그런 부분을 건드린 것이었다. 
    그의 이념은 ‘곰팡내가 나고’ 그는 퇴보적인 탐구자였으며, 낭만주의자였다. 
    그러자 갑자기 피스토리우스가 나에 대해 존재하고, 
    그리고 나에게 가르쳐주었던 것들은 
    그 자신에게는 스스로 존재하지도 않고 
    스스로에게 줄 수도 없다는 사살이 뼈저리게 느껴져왔다. 
    그는 지도자인 그 자신마저를 넘어서고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길로 나를 인도했던 것이었다. 
    어떻게 내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조금도 나쁜 뜻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었고 
    파국에 대한 예감 같은 것을 느끼지도 않았었다.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그 순간조차도 전혀 
    스스로 잘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지껄였던것이었다. 
    나는 단지 약간 재치있고 약간은 질이 나쁜 조그만 충동에 따랐을 뿐이건만, 
    그것이 운명적인 일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나는 사소하고 부주의한 행동을 한 것인데 
    그로서는 그것이 심판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나는 그가 성을 내고, 자기 변명을 하고 
    나를 나무라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이 모든 일을 나는 내 마음속에서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할 수만 있었다면 그는 미소라도 지었을 것이다. 
    그가 미소를 지을 수 없다는 것으로 
    내가 그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준 것인지를 잘 알 수 있었다. 
    피스토리우스가 나에 의해서, 
    이 주제넘고 배은망덕한 자기 제자에 의해서 받은 타격을 
    그렇듯 말없이 감수하고 나의 정당성을 승인하고,
    나의 말을 운명으로 인정함으로써 
    그는 나로 하여금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에 빠지게 하고 
    나의 실책을 몇 천 배나 강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사람이 누군가에게 타격을 가할 때는 강하고 
    자기 방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맞추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말없이 참을성 있게 묵묵히 항복해버린 무방비 상태의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우리는 꺼져가는 불 앞에 엎드린 채로 있었는데 
    불타는 모든 형상과 스스로 사그라드는 모든 재의 줄기가 
    나에게 행복하고 아름답고 풍부했던 시간을 되새기게 해주었고 
    피스토리우스에 대한 의무를 배신한 죄악감을 점점 증대시켜주었다. 
    나는 더 이상 그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일어서서 걸어나왔다. 한참 동안 나는 그의 방문 앞에 서 있었다. 
    한참 동안이나 컴컴한 계단 위에서, 
    집 앞에서 행여라도 그가 나를 뒤따라오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로 그렇게 서 있었다. 
    마침내 그곳을 떠나서는 몇 시간이고 시내와 교외를, 
    공원과 숲을 저녁 때까지 헤매어 다녔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내 이마 위에서 카인의 표지를 느꼈다. 
    점차 나는 그때의 일을 되새겨볼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생각은 오로지 나의 잘못을 책하고 피스토리우스를 옹호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엇다. 
    그러나 매번 모든 것은 반대의 결과로 끝났다. 
    천 번 만 번 나는 나의 경솔한 말을 후회했고, 그것을 철회할 용의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은 진실이었다. 
    이제서야 비로소 나는 피스토리우스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의 모든 꿈을 내 앞에 내세우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그의 꿈은 목사가 되는 것이었고 새로운 종교를 선포하는 것이었으며 
    영혼의 앙양과 사랑과 예배의 새로운 형식을 부여하고 새로운 상징을 세우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역량과 사명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너무나도 열심히 이미 존재했던 일에 몰두했고 
    너무나도 정확히 과거의 사실들을 알고 있었고, 
    너무나 많이 이집트나 인도, 미트라스나 아프락사스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사랑은 이 세상이 이미 보아온 형상에 결부된 것이었는데도 
    그가 마음속 깊이에서 원했던 것은 전혀 새롭고 색다른 것이었으며 
    그것은 신선한 대지에서 솟아오르는 것이지 
    박물관의 수집품이나 도서관 같은 데서 
    창조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의 역할은 나에게 그러했듯이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내부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데 있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을, 
    새로운 신을 주는 일은 그의 사명이 아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