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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6 장 야곱의 싸움 - 8

Joyfule 2008. 10. 29. 04:51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6 장 야곱의 싸움 - 8 
    그렇지만 또한 누구에게나 ‘사명’은 있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스스로 선택하고 해석하고 
    임의로 관리할 수 있는 사명은 없다라는 깨달음이 
    날카로운 불꽃처럼 나를 불태웠다. 
    새로운 신을 원한다는 것은 잘못이었고 
    이 세계에 무엇인가를 주려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이었다! 
    각성된 인간에서 부여된 의무란 단 한 가지, 
    자신을 찾고 자신의 내부에서 견고하게 되어 그 길이 어디에 닿아 있건간에 
    조심스럽게 자신의 길을 더듬어 나가는 일 이외의 다른 의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깊이 나를 사로잡았고, 
    이 생각이야말로 내가 이번의 체험에서 얻은 열매였다.
    때때로 나는 미래의 형상과 함께 놀았고, 
    혹은 시인으로서 혹은 예언자 혹은 화가로서 혹은 다른 어떤 것으로서 
    나에게 부여되었을 역할에 대해 꿈꾸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다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시를 짓기 위해서, 설교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뿐 아니라 다른 어떤 사람도 그것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은 모두 부차적으로 일어날 수 있을 뿐인 것이었다. 
    각자를 위한 진정한 천직이란 자기 자신에 도달하는 단 한가지뿐이다. 
    그가 설령 시인이나 미치광이나 예언자나 심지어 범죄자로 일생을 마친다 해도 좋다
    ---그것은 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결국 그리 중대한 일은 아닌 것이다. 
    그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임의의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운명을 발견하는 것이며, 
    그 운명을 자신의 내부에서 송두리째, 그리고 온전하게 끝까지 지켜내는 일이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일부일 뿐이며, 도피하려는 노력이고, 
    대중의 이상 속에 숨으려는 재도피이며, 
    순응이고 자기 자신의 마음에 대한 두려움인 것이다. 
    무섭고 경건하게 그 새로운 생각이 내 앞에 솟아올랐다. 
    그것은 이미 몇 백 번이나 예감되어왔고, 
    이미 여러 차례 이야기된 적이 있었을 것이었지만 
    나는 이제서야 겨우 그것을 확실하게 깨달을 수가 있었다. 나는 자연의 투척이다. 
    미지의 것에의, 어떤 새로운 것, 아마도 허무에의 투척일 것이었고,
    이 투척으로 하여금 본연의 깊이에서 작용하게 하고 그 의지를 나의 내부에서 느끼고 
    송두리째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만이 나의 천직인 것이었다. 오직 그것만이. 
    나는 이미 많은 고독감을 맛보았다. 
    이제 내 앞에는 보다 더 깊은 고독이 펼쳐져 있었고 
    그것을 피할 도리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피스토리우스를 달래려고 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친구였지만 우리의 관계는 달라졌다. 
    우리는 그 일에 관해서 단 한 번 다시 이야기를 했다. 
    어쩌면 그 말을 한 것은 피스토리우스뿐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는 말했다
    . “나는 당신도 알다시피 목사가 되려는 소원을 갖고 있소. 
    나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그렇게도 많은 예감을 품고 있는 
    새로운 종교의 목사가 되고 싶은 거요. 
    하지만 나는 결코 그렇게 될 수는 없을 것이다---하는 걸 잘 알고 있소. 
    감히 입 밖에 내어 이야기한 적은 없었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거요. 
    나는 결국 다른 목사적인 봉사를 하게 되겠지요. 
    풍금을 통해서나 혹은 다른 방법을 통해서 말이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가 아름답고 신성하다고 느끼는 무엇인가에 의해, 
    다시 말하면 풍금 연주의 비법, 
    상징과 신화 같은 것에 의해 둘러싸여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거요. 
    나는 그것을 간절히 필요로 하고 그것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은 거요
    ---그것이 내 약점이지요. 
    나는 때때로 싱클레어, 
    그러한 것을 원해서는 안 되고 그것은 사치이고 내 약점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으니까 말이요. 
    만약 내가 아주 단순하게 아무런 요구나 주장도 없이 
    운명에 자신을 맡긴다면 더 위대하고 더 정당하겠지요.
    하지만 난 그럴 수가 없다오. 그것이야말로 내가 할 수 없는 유일한 일인 거요. 
    그것은 정말 어렵소. 그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정말로 어려운 일인 거요. 
    나는 때때로 그것을 꿈꾸지만 한 번도 그렇게 할 수가 없었소. 
    나는 몸서리가 나오. 
    이렇듯 완전하게 벌거숭이가 되어 고독하게 서 있을 수만은 없는 거요. 
    나도 별 수 없이 다소의 따뜻함과 먹을 것이 필요하오, 
    이따금씩은 자기 동류의 체온을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어하는 
    한 마리의 불쌍하고 연약한 개에 불과한 거요. 
    자기의 운명 이외에는 전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미 동류란 없는 거요. 
    그는 아주 고독하고, 주변에는 싸늘한 세계의 공간밖에는 없는 거요.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그리스도가 그러했던 거요. 
    흔연히 십자가에 못박히는 순교자도 있긴 했지만 
    그들 역시 영웅이 아니었고 자유롭지도 못했었소. 
    그들 역시 자기들에게 친밀하고 다정스런 무언가를 웒ㅆ던 거요. 
    그들에겐 모범이 있었고, 그들에겐 이상이 있었던 거요. 
    그저 운명만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모범도 이상도 없는 거니까. 
    그들에겐 아무런 사랑도, 아무런 위안거리도 있을 수 없소. 
    그런데도 사람은 이런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오. 
    나나 당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진정으로 고독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서로 피차라는 것을 갖고 있소. 
    우리들은 뭔가 남다르고 반항하고 특이한 것을 추구하는 데서 
    남모르는 만족을 느끼긴 하지만 만약 온전하게 그 길을 가고자 한다면 
    그것까지도 단념해야 하는 것이오. 
    또 우리는 혁명가도 이상가도 순교자도 되려고 해서는 안 되는 거요. 
    그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인 거요.” 
    그렇다. 그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꿈꿀 수도 있었으며, 미리 느끼고 예감할 수는 있는 일이었다. 
    몇 번인가 아주 조용한 시간에 나는 그것을 조금쯤은 느껴본 적이 있었다. 
    그런 때에 나는 내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았고 
    내 운명의 모습의 그 강하게 부릅뜬 두 눈을 들여다보곤 하였다. 
    그 눈은 예지에 충만해 있는 때도 있었고 미친 듯한 열기에 충혈되어 있는 때도 있었고 
    애정에 빛나거나 깊은 악의에 차 있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것이건 다 마찬가지였다. 
    그 어떤 것 하나라도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었고,
     무엇 하나 사람이 원한다고 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단지 자기 자신만을 원하고 자신의 운명만을 원할 수 있을 뿐이었다. 
    피스토리우스는 지도자로서 내가 이 길을 제법 멀리까지 나갈 수 있게 도움을 주었던 것이었다. 
    그 시절, 나는 천지를 모르는 것처럼 돌아다녔다. 
    마음속에선 언제나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고, 발걸음마다 위험에 차 있었다. 
    나는 이제까지 내가 걸어온 길이 모두 그 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아득한 심연이 내 앞에 펼쳐져 있는 것 외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마음속에서 데미아과 닮은, 
    그 두 눈에는 나의 운명이 깃든 지도자의 모습을 보았다. 
    나는 한 장의 종이에다 이렇게 썼다. 
    “지도자가 날르 버렸다. 나는 아주 캄캄한 어둠 속에 혼자 서 있다. 
    나는 혼자의 힘으로는 한 발자국도 걸어나갈 수가 없다. 오, 나를 도와주오!” 
    나는 그 쪽지를 데미안에게 보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결국 그만두기로 했다. 
    그렇게 하려고 할 때마다 어리석고 무의미한 일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짤막한 기도문을 외고 있으면서 때때로 혼자 마음속으로 중얼거리곤 하였다. 
    그 기도는 언제 어디서나 나를 따라다녔다.
    기도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나의 학창 시절은 끝났다. 
    나는 휴가 여행을 떠나기로 했는데 그것은 아버지의 제안이셨다. 
    여행이 끝나면 나는 대학에 가야 했는데 무슨 학부에 가야 할지를 정할 수가 없었다. 
    한 학기 동안 철학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다른 어떤 학과일지라도 만족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