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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6 장 야곱의 싸움 6

Joyfule 2008. 10. 27. 06:36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6 장 야곱의 싸움 - 6 
    피스토리우스와 나는 어떤 식으로든지 호흡이 잘 맞았다. 
    단지 강력하게 그를 생각하기만 하면, 
    언제나 그가 오거나 아니면 그의 안부가 전해지곤 했다. 
    나는 데미안에게 했던 것처럼 
    그가 내 곁에 없어도 무엇이건 그에게 물어볼 수가 있었다. 
    내 마음속에서 똑똑학 강렬한 사상으로 질문을 그에게 보내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질문에 집중되었던 내 영혼의 힘이 
    대답을 가지고 내 마음속으로 되돌아오는 것이었다. 
    내가 마음속에 그렸던 것은 
    피스토리우스나 데미안이라는 어떤 특정 인물이 아니라, 
    내가 꿈에서 만나는, 내가 그렸던 그 초상이었으며 
    내가 강렬히 부르지 않을 수 없었던 내 영혼의 반은 
    남자이며 밤는 여자인 꿈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이미 단지 나의 꿈 속에서 존재하거나 
    종이 위에 그려진 초상으로서가 아니라 
    나의 내부에서 바라는 모습으로, 내 자신의 고양된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 
    자살 미수자 크나우어는 내게 기이하고도 어떻게 보면 우스운 관계를 맺어놓았다. 
    내가 그에게로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그날 이후로 
    그는 충실한 하인이나 심지어는 개처럼 나에게 매달려서 
    자기의 인생을 나와 결부시키려고 애쓰면서 맹목적으로 나를 추종했다. 
    괴상한 질문이나 소원을 갖고 나를 찾아와서는 
    유령을 보여달라고 한다든가 카발라 비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내가 그러한 것에대해서는 전혀 모른다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그는 곧이듣지 않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는 내가 온갖 힘을 다 갖고 있다고 믿는 지경이었다. 
    한 가지 이상스런 일은 내가 내 마음속에서 엉켜져 있는 어떤 일을 
    풀지 않으면 안 될 때 그가 자주 나에게 
    기묘하고도 어리석은 질문을 가지고 찾아옴으로써 
    그의 변덕스런 생각이나 관심거리가 
    나의 문제의 해결을 위한 실마리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때론 그가 몹시 귀찬아져서 위압적으로 쫓아버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에게 보내어진 사람이었고, 
    내가 그에게 준 것이 그의 마음속에서 갑절이 되어 내게 되돌아왔으며, 
    그 역시 내게 있어서 한 사람의 지도자이거나 길이라는 것이 깊이느껴졌다. 
    그가 내게 가져오는, 그가 그 속에서 자기 구제의 길을 찾는 
    얼빠진 책이나 저서도 당장데 깨달을 수 있는 것보다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나에게 깨우쳐주었다. 
    크나우어는 후일, 감회없이 나의 길에서 떨어져나갔다. 
    그와는 싸움이 필요치 않았다. 그러나 피스토리우스와는 싸움이 필요했다. 
    성○○시에서의 내 학창 시절이 끝나갈 무렵 
    피스토리우스와 이상야릇한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평생에 한 번이나 볓 번쯤은 
    독실과 감사와 미덕과 아울러 갈등에 빠져드는 것을 피할 수 없는 때가 있는 것이다. 
    누구나 한 번은 아버지와 스승으로부터 떨어져나가는 걸음을 
    떼어놓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설사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참아낼 수가 없어서 이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그 순간의 고독의 쓰라림을 조금쯤은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나의 경우, 아버지와 그들의 세계 즉 유년 시절의 ‘밝은 세계’로부터 
    나는 맹렬한 싸움을 하며 헤어져나온 것이 아니라 
    서서히 거의 눈치채이지 않게 떨어져나왔고 낯설게 되어갔었다. 
    나는 그것이 몹시 유감스러웠고 때로 고향에 돌아가면 
    아주 쓰라린 심정이 되곤 하였다. 
    그러나 그 심정은 아주 가슴속 깊이 뼈저린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참을 수 있는 정도의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적인 습관에서가 아니라 
    독자적인 충동에서 애정과 공경심을 바쳤을 때, 
    우리가 독자적인 마음으로 귀의자나 친구가 되었을 때---
    만약 어느 순간에 우리 마음의 큰 부분이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떠나려 한다는 것을 깨닫는 일은 쓰라리고 무서운 일이다. 
    그런 때는 친구와 스승에게 반발하는 모든 사상이 독이 묻은 가시를 드러내며 
    우리 자신의 마음을 향해서 돌아오는 법이고, 
    그것을 막으려는 노력에서 오는 온갖 타격은 
    자기의 얼굴에 정통으로 명중하는 법이다. 
    그때에 적절한 도덕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온 사람은
     ‘배신’과 ‘배은망덕’이란 단어가 
    창피스런 부름이나 낙인처럼 의식에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놀란 마음은 근심스러워하면서 
    유년 시절의 미덕의 사랑스런 골짜기로 숨어들지만 곧 이것과도 단절되어버리며 
    이 유대조차도 갈기갈기 찢기어져나간다는 것을 애써 믿으려 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나의 내부의 어떤 감정이 
    피스토리우스를 그렇듯 무조건 지도자로 인정하는 것에 대해 거역하기 시작했다. 
    나의 청춘 시절의 가장 중요했던 몇 달간의 체험은 
    그와의 우정, 그리고 충고, 그의 위로, 그와의 친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를 통해서 신은 나에게 이야기를 걸어 왔던 것이었다. 
    그의 입을 통해 나의 꿈은 다시 나에게 돌아왔고, 
    해석되었고, 그리고 그 본질을 드러내었다. 
    그는 내 자신의 용기를 내게 주었다. 
    ---아, 그런데 나는 지금 그에게 서서히 반항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그의 말에서 너무 많은 교훈적인 부분에 대해 반감을 가졌고 
    그가 단지 나의 일부분만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의 관계에서 싸움이나 사소할지라도 다툼이 있었던 것은 아니며, 
    불화나 어떤 절교의 형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사이의 환상이 
    무늬진 파편으로 산산조각이 난 순간이 있었다. 
    벌써 얼마 동안 희미한 예감으로 나를 압박하던 어떤 감정이 
    어느 일요일 그의 낡은 서재에서 뚜렷한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난로 앞의 방바닥에 누워서 그는 그가 연구하고 있으며 그
    겻에 대해 명상하고 그것의 가능한 미래에 관한 기대로 
    심취해 있는 비법과 종교 형식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살아감에 있어서의 중대한 일이라기보다는 
    단지 기묘하고 흥미로운 호사거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고, 
    박식의 음향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고, 
    지난 시대의 폐허 아래서의 고달픈 탐구의 음향밖에는 느껴지지 않았다. 
    불현듯 나는 이 모든 방법에 대해, 
    이 비법의 예배에 대해, 이 조상 전래의 종교 형식과 
    그것을 재조립해 내는 일에 대해 커다란 반감을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