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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7장 에바 부인 2.

Joyfule 2008. 10. 31. 06:16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7장 에바 부인 2.  
    어느 날 저녁 늦게 나는 가을 바람에 나부끼듯 시내를 건들거리며 다녔다. 
    어느 음식점에선가 대학생들이 단체로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열린 창문을 통해서는 담배연기가 자욱이 넘쳐나오고 있었다. 
    노랫소리는 세찬 파도처럼 흘러넘쳤지만 
    조금도 흥겹지 않았고 생기가 없이 단조로왔다. 
    나는 거리 모퉁이에 서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는데 
    두 곳의 학생 주점에서는 면밀하게 훈련된 청춘의 쾌활성이 
    밤의 대기로 퍼져나오고 있었다. 
    어디를 가도 집단이 있고, 어디를 가도 모임이 있고, 
    어디를 가도 운명의 발산과 군중 속으로의 도피가 있었다! 
    나의 뒤에서 두 남자가 천천히 지나갔다. 
    나는 그들의 대화의 한 토막을 들을 수 있었다. 
    ”흑인 마을의 청년들의 집과 똑같지 않소?” 한 사람이 물었다.
     “모든 것이 합치되는군요. 문신까지도 아직 유행이랍니다. 
    보십시오, 이것이 젊은 유럽의 모습입니다.” 
    그 음성이 내게는 이상스럽게도 경고하는 것처럼---
    귀에 익숙하게 울려왔다. 
    나는 어두운 골목길에서 그 두 사람을 따라갔다. 
    한 명은 자그마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일본인이었는데 
    나는 가로등 아래에서 그의 다소 검은 얼굴이 미소를 띠고 빛나는 것을 보았다. 
    그때 다른 남자가 다시 말을 했다. 
    ”그런데 당신네 일본에서도 역시 더 나을 것이라곤 없겠지요. 
    군중에 추종하지 않는 사람은 어디를 가도 드문 법이니까요. 
    여기에도 간혹 그런 사람이 있긴 합니다만.”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즐거운 놀라움으로 내게 와 닿았다. 
    나는 그 이야기하는 사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데미안이었다. 
    바람이 부는 밤에 나는 어두운 골목길에서 그와 일본인을 뒤따라 가며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데미안의 목소리가 울리는 것을 즐겁게 들었다. 
    옛날의 음색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그 음성은 옛날의 아름다운 안정감과 침착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나를 압도하는 옛날의 힘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이제 모든 것은 잘 해결되었다. 
    나는 그를 발견한 것이었다. 
    교외의 거리 모퉁이에서 그 일본인은 
    데미안에게 작별을 고하고 어느 집의 현관문을 열었다. 
    데미안은 그 길을 되돌아 나왔는데 
    나는 거리의 한복판에 멈춰서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나는 그가 
    단정하고도 탄력있는 걸음걸이로 나를 향해서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갈색 비옷을 입고 가느다란 단장을 팔에 걸치고 있었다. 
    그는 발걸음을 전혀 흐트리지 않고 내 앞까지 와서 모자를 벗고 
    결단성 있는 입과 이마 위에 독특한 밝음을 지닌 
    옛날의 환한 얼굴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데미안!” 나는 불렀다.그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가 여기 있었군, 
    싱클레어! 난 자네를 기다리고 있었다네.” 
    ”내가 이곳에 있는 줄 알고 있었나?” 
    ”그것을 확실히 알진 못했지만, 
    그렇게 되기를 줄곧 바라고 있었다네, 
    자네를 오늘 저녁에 처음으로 만났지만, 
    자네는 그래, 언제나 우리를 뒤좇아왔었지 않나.” 
    ”그럼 나를 바로 알아보았군?” 
    ”물론이야. 자네는 확실히 변했어. 
    그러나 자네는 분명히 표지를 달고 있지 않은가!” 
    ’표지라니, 무슨 표지?” 
    ”자네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네만, 
    우리는 옛날에 그것을 카인의 표지라고 불렀었지. 
    그것이 우리들의 표지야. 
    자네는 언제나 그것을 지니고 있었다네. 
    그래서 나는 자네의 친구가 된 거야. 지금은 그것이 더 뚜렷하게 되었군.” 
    ”나는 그것을 몰랐어. 아니 애당초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언젠가 나는 자네의 초상을 그린 적이 있다네. 
    데미안, 그런데 나는 그 초상이 나와도 닮았다는 데 놀랐었네. 
    그것이 바로 표지였을까?” 
    ”그것이 표지였지. 기쁘네. 
    자네가 여기에 와서! 어머니도 기뻐하실 거야.” 
    나는 깜짝 놀랐다. 
    ”자네의 어머니? 어머니도 여기 계신가? 
    그렇지만 나를 전혀 모르실 텐데?” 
    ”아, 어머니는 자네에 대해 잘 알고 계신다네. 
    자네가 누군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어머니는 아마 자네를 알아보실 거야.
     ---자넨 오랫 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