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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5장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애쓴다 - 1

Joyfule 2008. 10. 15. 08:01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5장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애쓴다 - 1 
    내가 그린 꿈의 새는 여행을 떠나 나의 친구를 찾았다. 
    그 회담은 아주 신기하게 내게 왔다.
    어느 날 수업중의 쉬는 시간이 끝나갈 무렵 
    나는 책갈피 사이에 종이쪽지가 한 장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종이는 우리들이 종종 수업 시간중에 편지질을 할 때 접는 모양으로 접혀 있었다. 
    누가 그런 편지를 내게 보냈는지 짐작이 가지 않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어느 친구와도 그런 짓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것이 학교에서 성행하는 어떤 장난을 권유하는 것이려니 생각했을 뿐, 
    그런 짓에 참가할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무심히 종이쪽지를 읽지도 않은 채 책의 앞쪽에다 꽂아두었다. 
    그러다 수업중에서야 다시 그것을 손에 잡게 되었다.
    종이쪽지를 만지작거리다가 생각없이 펼쳐본 나는 
    거기에 몇 귀절이 적혀 있음을 알았다. 
    그것을 읽자마자 그 귀절에 온 몸과 마음이 사로잡히게 되었다. 
    놀란 심정으로 재차 읽어보는 동안 내 마음은 몹시 추울 때처럼 
    떨며 운명 앞에서 움츠러들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애쓴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하여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나는 여러 번 이 귀절을 읽은 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것은 데미안으로부터의 회답이었다. 
    그와 나를 빼놓고는 아무도 그 새에 대해서 알 리가 없는 일이었다. 
    그는 나의 그림을 받았던 것이다. 
    그는 그 그림을 이해했고 나의 해석을 도와준 것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 것일까? 
    그리고---무엇보다도 나를 괴롭힌 것은---아프락사스라는 이름의 정체였다. 
    그것은 무엇일까? 
    나는 한 번도 그런 이름을 들은 적도 읽은 적도 없었다.
     “그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수업에는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그시간이 끝났다. 
    그날 오전 수업의 마지막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 수업은 젊은 보조 교사 담당이었는데 그는 대학을 갓 나온 사람으로 
    매우 젊고 공연히 잘난 티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들은 상당히 마음에 들어했었다.
    우리는 폴렌스 박사의 지도로 헤로도투스를 읽었다. 
    이 강독 수업은 내가 흥미있어 하는 극소수의 과목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이날만은 수업에 정신을 쏟을 수가 없었다.
    나는 기계적으로 책을 펼쳐든 채 그의 수업은 
    귓전으로 들어넘기며 내 생각의 뒤를 좇고 있었다. 
    나는 pealdks이 이전의 견신례수업 시간에 내게 이야기했던 것이 
    얼마나 타당한지를 여러 번 느껴왔었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강력히 원하면 그것은 이루어진다는 이야기 말이다. 
    만약 내가 수업중에 아주 강하게 내 자신의 생각에 몰두할 수 있으면 
    선생님들은 나를 내버려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신이 산란하거나 졸릴 때면 
    갑자기 선생님이 옆에 와서 서 있곤 하는 것이었다. 
    그런 경험은 여러 번 있었다. 
    내가 정말로 깊이 생각에 몰두해 있다면 안전했다. 
    나는 강한 시선으로 상대를 노려보는 실험도 해보았는데, 
    그것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그 당시, 데미안과 함께였던 시절에는 성공할 수가 없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강한 시선과 깊은 생각으로 
    매우 많은 일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 시간에도 나는 역시 그렇게 하고 앉아서 
    헤로도투스와 학교와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선생님의 목소리가 내 의식을
     번갯불처럼 내리치는 바람에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는 내 곁에 바짝 붙어 서 있었다. 
    나는 그가 내 이름을 부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때 나는 다시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분명하게 아프락사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첫머리는 듣지 못했지만 폴렌스 박사는 설명을 계속하고 있었다. 
    “우리는 고대의 그 교파와 신비적인 교단의 견해를 
    합리주의적인 관점에서 파악되는 것만큼 소박한 것이라고 치부해버리면 안 됩니다. 
    우리가 의미하는 바의 과학적 기준으로는 
    도대체 고대를 바로 파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시대에는 매우 높은 수준의 철학적 신비적 진리의 활동이 있었습니다. 
    그것으로부터 일부는 때로 사기와 범죄에 닿는 마술과 유희로 진행되어갔습니다. 
    그러나 마술이라는 것도 원래에는 필연적인 이유와 깊은 사상을 지녔던 것입니다. 
    내가 앞서 예로 든 아프락사스의 교의도 역시 그렇습니다. 
    이 이름은 그리스의 주문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지는데 
    오늘날에 있어서는 대게 야만족들이 믿고 있는 
    어떤 악마의 이름이라고 간주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프락사스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뜻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우리는 개괄적으로 이 이름을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하는 
    상징적인 역할을 가진 일종의 신의 이름으로 파악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몸집이 작은 이 젊은 학자는 섬세하면서도 힘있게 설명을 계속했다. 
    크게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이름이 다시 거론되지 않게 되자 나도 다시 내면적인 생각으로 주의를 돌렸다.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한다.’ 
    이 설명의 여운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주위를 맴돌았다. 
    나는 이것을 예전의 어떤 일과 결부시킬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들이 우정을 나누던 최후의 시절, 데미안과의 대화로 내겐 친근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