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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5장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애쓴다 - 3

Joyfule 2008. 10. 17. 05:54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5장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애쓴다 - 3 
    나는 살기 위해서 나의 내부에서 
    스스로 우러나오는 것 외에는 다른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어쩌면 그렇게도 어려운 일이었던가? 
    나는 때때로 내 꿈속에 나타나는 힘찬 사랑의 자태를 그려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만일 그것에 성공했다면, 나는 그것을 데미안에게 보냈을 것이었다. 
    그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는 알 수 없었다. 
    단지 그와 나는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믿을 뿐이었다. 
    언제나 다시 그를 만날 수 있을까? 
    베아트리체 시절의 그 몇 주, 아니 몇 달간의 고요한 정적은 옛날에 사라져버렸다. 
    당시에 나는 하나의 섬에 도착하여 평화를 발견해 낸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같은 상태였다---
    어떵 상태가 내 마음에 들기가 무섭게, 
    어떤 꿈이 나를 즐겁게 해주기가 무섭게 그것는 벌써 퇴색해버리고 희미해지는 것이었다. 
    그것을 한탄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나는 나를 완전히 야성적이고 미치광이처럼 만들고 마는, 
    이루어지지 않는 갈망과 긴장된 기대의 불꽃 속에서 살고 있었다. 
    꿈속에서 보는 그 여인의 모습을 나는 때때로 너무도 생생하게, 
    내 자신의 손을 보는 것보다 더 선명하게 바라보며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그를 저주하기도 했다. 
    나는 그를 어머니라 부렀고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무릎을 꿇고 경배했다. 
    그를 애인이라고 부르며 모든 갈망을 충족시켜주는 깊은 입맞춤을 어렴풋이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또한 그를 악마, 매춘부, 흡혈귀, 살인귀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는 나를 다정스럽기 그지없는 사랑의 꿈으로 유인하기도 했고 
    이를 데 없이 철면피한 행위로 끌고 가기도 했다. 
    그에게는 지나치게 선량한 것도, 존귀한 것도 없었으며 
    동시에 지나치게 사악한 것도 비천한 것도 없었다. 
    그해의 온 겨울을 나는 표현하기 힘든 내적 폭풍우 속에서 지냈다. 
    고독하다는 것에는 이미 익숙해진 지 오래였으므로 
    새삼스럽게 고독이 나를 압박하지는 않았다. 
    나는 데미안과 덥루어, 새매와 더불어, 
    나의 숙명인 동시에 나의 애인인 커다란 꿈의 영상과 더불어 살았다. 
    그것들 속에서는 살아가기에 충부한 공간이 있었는데 
    그 모든 것들이 위대한 것, 넓은 세계를 향하고 있었고, 
    또 모든 것들이 아프락사스를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꿈들 중의 단 하나도, 내 생각의 한 조각도 내게 복종하지는 않았으며, 
    나는 그것들 중의 단 하나도 내 임의로 불러들일 수가 없었으며
     단 하나도 내 마음대로채색할 수가 없었다. 
    그것들이 내게로 와서 나를 사로잡았던 것이며, 
    나는 그것들에 의해서 지배를 받고 그것들로써 살아갔던 것이었다. 
    분명히 나는 외부에 대해서는 안전했을 것이었다. 
    나는 사람에 대해서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으므로 
    같은 반의 친구들도 그것을 느끼고는 은근히 나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때가 있어서 
    나를 실소하게 만들기도 했다. 
    나는 하려고만 한다면 그들의 대부분을 잘 꿰뚫어볼 수가 있어서 
    그들을 깜짝 놀라게 할 수도 있었던 것이었다. 
    다만 나는 거의, 아니 전혀 그렇게 하려 들지 않았을 뿐이었다. 
    나는 언제나 나의 일, 나 자신만의 일에 몰두해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생명의 작은 부분이나마 살아 보고 
    내 자신 속에서 무엇인가를 끌어내어 그것을 세상에 주고, 
    세상과 관계를 맺고, 싸움을 시작하게 되기를 열렬히 원했다. 
    여러 번 저녁의 거리를 산책하다가 끝내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한밤중까지 헤매고 다닐 때면,
    이번에는 틀림없이 나의 애인과 마주치리라,
    다음 골목 모퉁이에서는 그와 만날 수 있으리라, 
    저 다음 창문에서 그가 나를 부르리라 하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은 때론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나를 옥죄어 와 
    언젠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결심까지 하기도 했다. 
    예기치 않은 피난처를 나는 당시에---‘우연히’ 발견했다. 
    그러나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간절히 필요로 했더 사람이 그것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의 소망과 필연이 그곳으로 그를 인도했기 때문이다. 
    나는 두 번인가 세 번쯤 시내를 걸어다니다가 
    교외의 조그만 교회에서 울려나오는 풍금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지만 
    그때엔 걸음을 멈추지 않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앞을 지나다가 나는 또 
    다시 풍금 소리를 들었고 바하의 곡이 연주되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문으로 가 보았지만 문은 닫혀져 있엇다. 
    골목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이라고는 거의 없었으므로 
    나는 외투깃을 올리고 교회 옆에 있는 길가의 돌에 앉아 귀를 기울였다. 
    과히 크지는 않았지만 좋은 풍금인 것을 곧 알 수 있었고, 
    연주는 묘하게, 독특하고도 고도의 개성적인 의지와 인내를 표현해내는 
    훌륭한, 거의 대가의 솜씨로서 마치 기도처럼 울려왔다. 
    풍금을 연주하는 사람은 이 음악 속에 보물이 숨겨져 있음을 알고 있는 자여서 
    마치 생명을 얻으려는 자처럼 이 보물을 얻기 위해 애쓰고 
    두드리고 그리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교에 관한 것이라면 나는 음악에대해 그다지 전문적인 안목을 갖추지 못했지만 
    진실한 영혼의 표현은 아주 어릴 적부터 본능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음악의 본질을 아주 분명한 것처럼 내 마음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