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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5장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애쓴다 - 4

Joyfule 2008. 10. 18. 01:28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5장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애쓴다 - 4 
    그 음악가는 바하의 곡 다음에 곡목을 알 수 없는 현대 음악을 연주했다. 
    레거의 곡인지도 몰랐다. 
    교회는 완전히 어두워졌고 아주 희미한 빛이 옆 창문으로 흘러들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연주가 그칠 때까지 기다렸고 풍금을 치던 사람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볼 때까지 교회 앞을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아직 젊었으나 적어도 나보다는 좀더 나이가 많아 보였고 
    억세고 체구가 오동통한 사람이었다. 
    그는 힘차게, 마치 기분이 나쁜 사람처럼 성급한 발걸음으로 그곳을 떠났다. 
    그 이후 나는 때때로 저녁 무렵에 그 교회 앞에 앉아 있거나 서성거리곤 했다. 
    언젠가는 교회 문이 열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반시간 동안이나 풍금 연주자가 위층에서 가물거리는 가스등 밑에서 연주하는 것을 
    추위에 떨면서, 그러나 행복한 심정으로 듣고 있었다. 
    그가 연주하는 음악에서 나는 그 사람 자신만을 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가 연주하는 모든 곡들은 서로 인연이 닿아 있고 
    남모르는 관계를 맞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가 연주하는 모든 곡은 종교적이었고 헌신적이었으며 경건했지만 
    교회의 신자나 목사들처럼 경건한 것이 아니라 
    중세의 순례자나 탁발승들처럼 경건했고, 
    모든 종파를 넘어서 존재하는 세계 감정을 향한 물불을 가리지 않는 헌신으로 경건했다. 
    바하 이전의 거장들의 곡과 옛 이탈리아 작곡가들의 곡이 자주 연주되었다. 
    그 곡들은 모두가 똑같은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 연주자 자신의 마음속에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엇다. 
    그것은 동경과 세계의 가장 내면적인 파악, 
    그리고 세계로부터의 가장 난폭스러운 분리와 
    자기 자신의 어두운 영혼에 대한 타는 듯한 심취, 
    헌신에의 도취와 불가사의한 것에 대한 깊은 호기심 같은 것들이었다. 
    언젠가 나는 그 풍금 연주자가 교회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것을 몰래 따라갔었는데 
    그가 시내의 변두리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조그만 술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나 자신을 억제치 못하고 그를 따라 들어갔다. 
    여기에서 나는 비로소 그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는 검정 펠트 모자를 쓴 채 포도주 한 병을 앞에 놓고 
    조그만 홀의 구석에 있는 탁자에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은 내가 상상하고 있던 그대로였다. 
    그는 못생겼고 다소 야성적으로 보였으며, 탐구적이고 굳어버린 것 같은 표정에 
    집요하고 의지에 차 있어 보였지만 입 가장자리에는 부드러운, 
    아이와 같은 느낌이 남아 있었다. 
    남성적이고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모두 눈과 이마에 모여 있었고 
    섬세하고도 미숙해 보이는 안정감 없는 하관과 
    부분적인 연약함이 함께 깃든 얼굴이었는데 우유부단해 보이는 턱은 
    눈초리에 대한 이율배반인 양 소년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특히 내마음에 든 것은 긍지와 적의에 가득 찬 암갈색 눈이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술집 안에는 우리 두 사람 외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나를 쫓아버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노려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앞에 버티고 앉아서 
    그가 성이 나서 투덜거릴 때까지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당신은 뭘 그리 기분나쁘게 사람을 노려보고 있소? 
    내게 무슨 용건이 있는 거요?” 
    ”당신에게 무슨 용건이 있는 건 아닙니다.” 나는 말했다.
     “그렇지만 난 당신에 관해 많은 걸 알고 있어요.” 
    그는 이마를 찌푸렸다. 
    “그럼 당신도 음악광이오? 
    음악에 미친다는 건 내가 보기엔 구역질 나는 짓이오.” 
    나는 까딱도 하지 않았다. 
    ”나는 벌써 여러 번 교회 밖에서 당신의 연주를 들었습니다.” 
    나는 계속 말했다.
     “나는 당신을 귀찮게 하려는 게 아닙니다. 
    나는 당신에게서 뭔가를, 뭔가 색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말할 순 없지만 말입니다. 
    내가 하는 소리 같은 건 귀담아 듣지 마삽시오! 
    나는 교회에서 당신의 연주를 듣는 것으로 충분하니까요.” 
    ”하지만 난 언제나 교회 문을 잠가두는데요.” 
    ”최근에는 그것을 잊으신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교회 안에 들어가서 들을 수가 있었지요. 
    그렇지 않을 때는 밖에 서서 듣거나 길가의 돌에 앉아 듣기도 했답니다.” 
    ”그래요? 다음번엔 들어와도 좋소. 그게 훨씬 따뜻할 거요. 
    그저 문만 두드리이오. 그러나 힘차게 두드려야 할 거요.
     내가 연주하고 있지 않을 때 말이오. 
    그럼 이제 자---무슨 말을 하려고 했었소?
     아주 젊은 분이군, 아마 고등학생 아니면 대학생이겠지. 음악을 하시오?” 
    ”아닙니다. 전 그저 음악을 듣기를 좋아할 뿐입니다. 
    당신이 연주하시는 것 같은 그런 구속이 없는 음악,
    그것을 듣고 있자면 사람이 천국과 지옥을 잡아 흔드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음악 말입니다. 
    저는 음악을 대단히 좋아하는데 아마 음악은 그렇게 도덕적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겁니다. 
    다른 온갖 것들은 다 도덕적이지요. 
    그런데 저는 그렇지 않은 것을 찾고 있는 거예요. 
    저는 언제나 도덕적인 것에 억눌려 괴로움을 받아왔어요. 
    잘 표현할 순 없지만---
    당신도 신인 동시에 악마인 하나의 신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시지 않으십니까? 
    전 그러한 신이 존재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는 넓다란 모자를 조금 젖히고 이마로 내려온 검은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그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식탁 너머로 내게 얼굴을 바짝 들이대었다. 
    나직하고 긴장된 목소리로 그는 물었다. 
    “당신이 지금 말하고 있는 그 신의 이름이 무엇이오?” 
    ”유감스럽지만 저는 그 신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어요. 
    단지 이름을 알고 있을 뿐이에요.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랍니다.” 
    그는 누군가가 우리의 대화를 엿듣기라도 한다는 듯이 조심스레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나서는 내게 한층 더 바짝 다가앉으면서 속삭이듯이 말했다.
     “내 그럴 줄 알았소. 당신은 누구시오?” 
    ”저는 김나지움에 다니는 학생입니다.” 
    ”어디서 아프락사스를 알게 되었소?” 
    ”우연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