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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7장 에바 부인 3.

Joyfule 2008. 11. 1. 00:42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7장 에바 부인 3.  
    ”물론 때때로 편지를 하려고 마음먹기도 했었지만 그렇게 되지가 않더군. 
    나는 얼마 전부터 곧 자네를 찾아낼 수 있으리라고 느꼈다네. 
    난 매일같이 이 일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그는 내 팔을 끼고 걸어나갔다. 
    침착성이 그에게서 나와서는 나의 내부로 옮겨왔다. 
    우리는 곧 옛날처럼 지껄였다. 
    우리는 학창 시절과 견신례 수업과 또 
    그 당시의 휴가중에 있었던 그 불행했던 만남을 회상했다.
     ---단지 우리들의 사이를 밀접하게 연결해준 사건에 관해서만은, 
    프란츠 크로머에 대해서만은 이번에도 말하지 않았다. 
    뜻밖에도 우리는 기이하고도 예감에 가득 찬 이야기의 중심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는 데미안과 일본인이 나누었던 대화를 상기했고, 
    아울러 대학생의 생활에 관한 이야기와 
    어쩌면 훨씬 동떨어진 내용처럼 여겨질 수도 있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그렇지만 데미안의 말에 의하면 그것들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 것이었다. 
    그는 유럽의 정신과 현시대의 특징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는 어디를 가도 단합과 집단 행동이 지배하고 있을 뿐 
    아무데도 자유와 사랑이 지배하고 있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학생 단체와 합창단에서 국가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공동체는 강제적으로 형성된 것이며,
     불안과 도피와 절망감에 나온 공동체이며
     내부는 썩고 낡아 곧 붕괴되고야 말 것이라는 것이었다. 
    ”단합이란” 데미안이 말했다. 
    “아름다운 것이지만 우리가 가는 곳마다 볼 수 있는 
    이러한 식으로 번창하는 것은 전혀 단합이 아니네. 
    그것은 개인과 개인이 서로를 알게 됨으로써 새로이 탄생되는 것인데 
    그것이 한참 동안 세계를 변형시킬 수 있는 거야. 
    지금 단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오합지졸에 불과한 거지. 
    인간들은 서로에 대해서 두려워하기 때문에 
    서로의 품으로 도망해오고 있는 거야.
    ---신사는 신사들끼리, 노동자는 노동자들끼리, 
    학자들은 학자들끼리 말이야! 
    그런데 왜 그들은 두려워하는 것일까? 
    사람은 흔히들 자기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을 때에 두려움을 느끼지. 
    그들은 결코 자기 자신에게 귀의하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는 거야. 
    내부의 알지 못하는 것에대한 두려움을 품은 자들만의 공동체라니! 
    그들은 모두 자신의 인생의 법칙이 
    더 이상 오늘날을 살아가는 데 접당하지 않다는 것과 
    자기들이 좇아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로마 시대의 동판법 같은 것이라는 것과, 
    그들의 종교 그들의 도덕도 어느 것 하나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에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는 거야. 
    유럽은 수백 년간, 아니 그 이상의 시간 동안 
    그저 연구만 하고 공장만 세우고 있었거든! 
    한 사람의 인간을 죽이기 위해서는 
    몇 그램의 화약이 필요한지는 정확히 알고 있지만 
    신에게 기도를 드릴 줄도, 
    한 시간 동안만이라도 만족하게 있을 수 있는 법도 전혀 모르고 있는 거야. 
    학생 주점 같은 곳을 한번 들여다보렴! 
    혹은 부자들이 드나드는 오락장이라도! 절망적이야! ---
    싱클레어. 어디서도 진정한 명랑함이란 없어. 
    그렇듯 불안에 가득 차서 모여든 사람들은 
    더욱이나 겁을 먹고 악의에 차서 아무도 남을 믿으려 들지 않는 거야. 
    그들은 이상이 아닌 이상에 매달려서는 
    새로운 이상을 세우는 모든 사람에게 돌맹이를 던져대는 거야. 
    싸움이 시작되리라는 것을 느껴. 
    그것이 올 거야. 머지않아 틀림없이 올 거야! 
    물론 그것이 세계를 ‘개선’하지는 못하겠지. 
    노동자가 공장주를 때려 죽이거나 
    러시아와 독일이 서로 총질을 한다 해도 단지 소유주만 바뀔 뿐이겠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일이 헛된 일이라는 건 아냐. 
    오늘날의 이상의 무가치함을 증명해주는 셈이 될 거고 
    석기 시대의 신들을 제거해줄 거니까. 
    현재대로의 이 세계는 바야흐로 죽어가고 있는 거야. 
    이 세계는 멸망하고 있으며 또 멸망하고 말 거야.” 
    ”그럼 그땐 우리는 어떻게 될까?” 내가 물었다. 
    ”우리가? 아, 우리도 아마 함께 멸망하겠지. 
    우리와 같은 자들도 맞아 죽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러나 우리는 단지 그것으로 처리되는 것만은 아니야. 
    우리들에게서 남겨진 것이나 
    우리들 가운데서 살아남은 자의 주위에 미래이 의지가 결집될거야. 
    유럽이 얼마 동안 기술과 과학이라는 시장으로 
    떠들썩하게 눌러 덮었던 인간성의 의지가 결국엔 나타나게 되겠지. 
    그렇게 되면 인간성의 의지란 결코 국가나 민족, 
    단체나 교회 같은 오늘날의 공동체와는 같지 않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나게 될 거야. 
    자연이 인간에 대해서 원하는 바는 오히려 각 개인의 마음속에, 
    자네나 나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는 거야. 
    그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속에도 적혀 있었고 
    니체의 마음속에도 적혀 있었지. 
    이 중요한 흐름을 위해서는---
    물론 그것은 매일 다른 모양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지만, 
    오늘날의 공동체의 붕괴되어버릴 때에만 나타날 여지가 생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