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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7장 에바 부인 5.

Joyfule 2008. 11. 3. 05:53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7장 에바 부인 5.   
    그날 밤 나는 막스 데미안과 작별을 고했던 
    교외의 정원을 다시 보게 되었다. 
    높다랗고 비에 젖어 잿빛으로 보이는 나무들 뒤에 가려진 채 
    밝고 살기에 편하게 생긴 조그마한 집이 서 있엇다. 
    커다란 유리벽 뒤에는 높다란 꽃이 핀 관목들이 있었고 
    빛나는 유리벽 뒤에는 높다란 꽃이 핀 관목들이 있었고
     빛나는 유리창 뒤에는 
    그림과 책이 줄지어 있는 컴컴한 방의 벽이 있었다. 
    현관은 곧장 난방이 잘된 작은 거실과 통해져 있었는데 
    흰 앞치마에 까만 옷차림의 말없는 늙은 가정부가 
    나를 안내해주었고 내 외투를 받아 걸었다. 
    그 여자는 나를 거실 안에 혼자 남겨두었다. 
    나는 사방을 둘러보며 내가 곧장 내 꿈의 한복판에 들어와 있음을 알았다. 
    문 위쪽의 까만 나무 벽 위에 걸려 있는 
    검정 테의 액자 속에 내가 잘 알고 있는 그림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지구의 껍질을 깨고 날아오르려고 하는 
    황금빛 새매의 머리를 가진 나의 새였다. 
    나는 몹시 감동이 되어 그 자리에 붙박힌 듯 서 있었다. ---
    마치 이 순간 내가 이제껏 행하고 경험했던 모든 일들이 
    해답과 실현으로써 내게 돌아오는 것처럼 
    기쁘면서도 동시에 슬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번갯불처럼 빠른 속도로 수많은 형상이 
    나의 영혼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나는 보았다. 
    현관 문의 아치 위에 돌로 된 문장이 달려 있었던 고향의 집, 
    그 문장을 그리던 소년 데미안, 
    두려움에 떨며 크로머의 속박에 얽혀 있던 어린 소년으로서의 나 자신, 
    조용한 기숙사의 한구석에서 동경의 새를 그리며 
    영혼이 제 스스로의 줄의 그물에 뒤얽혀 있던 청년으로서의 나 자신, ---
    이 모든 것이, 이 순간에까지 이르는 모든 것이 
    나의 내부에서 다시 반향되고 시인되고 보답되고 승인되었다. 
    젖어드는 눈으로 나는 나의 그림을 응시하며 내 자신의 마음을 읽고 있었다. 
    그때 나는 눈길을 내리뜨렸다. 
    새의 그림 아래 열려진 문 앞에 까만 옷을 입은 
    키가 큰 부인이 서 있었다. 바로 그 사람이었다.
    나는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여자의 아들처럼 시간과 나이를 초월한, 
    활기와 의지에 넘친 얼굴의 아름답고 품위있는 부인이 
    나를 향해 정답게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그 여자의 눈길은 충족이었고 그 여자의 인사는 귀향을 뜻하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에게 두 손을 뻗쳤다. 
    그녀는 굳건하고도 따스한 두 손으로 내 손을 잡아주었다. 
    ”당신은 싱클레어지요. 
    나는 당장에 당신을 알아보겠어요. 잘 오셨습니다!” 
    그녀의 음성은 낮고 따스했고 
    나는 감미로운 포도주를 마시는 것처럼 그 음성을 들이켰다. 
    그리고는 시선을 들어 그녀의 고요한 얼굴과 
    검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두 눈을 들여다보고, 
    신선하고 성숙한 입과 표지를 달고 있는 넓고 기품 있는 이마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그녀의 두 손에 입을 맞추었다.
     “저는 한평생 길 위에서 헤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야 집에 돌아온 것입니다.” 
    그녀는 어머니 같은 미소를 지었다. 
    ”아무도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어요.” 
    그녀는 아주 다정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친밀한 두 길이 함께 뻗어 있을 때는 
    온 세계가 잠시 동안은 고향처럼 느껴지는 것이지요.” 
    그녀는 이곳을 찾아오는 동안 내가 느겼던 것을 말하였다. 
    음성이나 이야기 하는 태도가 아들과 매우 비슷했다. 
    그러나 어찌 보면 전혀 딴판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한결 성숙하게 느껴졌고 
    더 따스했으며 한결 더 분명하게 느껴졌다. 
    옛날, 데미안이 그 누구에게도 소년의 인상을 주지 않았던 것처럼 
    그의 어머니도 전혀 다큰 아들이 있는 어머니처럼 보이지 않았다. 
    얼굴과 머리칼 위에 감도는 숨결은 젊고 감미로왔으며 
    황금빛의 살결은 생기있고 주름살이라고는 없었으며 
    그 입은 마치 꽃처럼 피어 있었다. 
    내가 꿈속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위풍있는 모습으로 
    그 여자는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것이었는데 
    그녀의 가까이에 있다는 것은 사랑의 행복이었고 
    그녀의 따스한 시선은 벅찬 충족감을 안겨주었다. 
    이것이 나의 숙명이 내게 모습을 나타낸 그 새로운 영상이었고,
     이젠 더 이상 엄격하지도 고독하지도 않았으며 
    너무나 성숙했고 기쁨에 넘쳐 있었다! 
    나는 새삼스레 결심을 할 필요도 없었고 아무런 기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