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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 -《오디세이아》28.★ 구석자리의 거지

Joyfule 2006. 4. 21. 04:19

호메로스 -《오디세이아》28.★ 구석자리의 거지 
"여기 계시는 이 안티노오스 나으리가 결혼식을 맞기 전에 죽음을 맞게 되기를..."
오뒤세우스가 중얼거렸다. 좌중이 심상치 않게 술렁거렸다. 
웃는 사람도 있었지만 자신있게 웃는 웃음은 아니었다. 
그들은 나그네를 잘못 대접하면 어떤 일을 당하는지 잘 알았다. 
신들이 종종 나그네로 변장해서 사람들을 시험하고는 했기 때문이었다.
잔치 자리에는 하녀들도 있었다. 
따라서 연회장에서 있었던 이 작은 일이 왕비 페넬로페의 귀에 들어간 것은 당연했다. 
페넬로페는 자기 궁전에서 나그네가 푸대접을 받은 것에 대해 화를 내었다. 
더구나 오뒤세우스가 트로이아에서 돌아오는 길에 실종된 뒤로는 
이타카를 지나가는 나그네나 여행자는 반드시 불러 지아비의 소식을 
들은 적이 없느냐고 물어오던 페넬로페였다. 
페넬로페는 하녀를 보내어 에우마이오스에게 
그 나그네를 데리고 자기 방으로 오게 했다. 
왕비의 부름을 받은 오뒤세우스가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이미 연회장에서 한 차례 얻어맞은 사람입니다. 
왕비에게 청혼하려는 저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기 전에는 
왕비마마의 방으로는 가지 않겠습니다. 
갔다가 저 사람들에게 무슨 변을 또 당하게요?"
에우마이오스의 말을 전해 들은 왕비는 좋을 대로 하라고 했다. 
왕비는 조용해지면 연회장으로 내려가 거지 노인을 만나겠노라고 했다.
오뒤세우스는 연회장 문턱에 앉아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평화를 즐기면서 그 때를 기다릴 수는 없었다. 
또 하나의 거지가 연회장으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새로 들어온 거지는 한동안 궁전 근처를 주름잡던 
이로스라는 이름의 덩치가 큰 거지였다. 
이로스는 덩치만 컸지 근육도 시원찮고 기백도 시원찮은 거지였다. 
이로스는 생전 처음 보는 거지가 문턱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소리쳤다.
  "꺼져. 내손으로 끌어내기 전에."
 오뒤세우스가 조용히 응수했다.
  "문턱이 넓잔아요? 둘이 앉아도 되겠어요."
 이 말에 화가 난 이로스가 얼굴이 벌개져 시근덕거리면서 외쳤다.
  "여기에 계속해서 앉아 있고 싶거든 일어나서 나와 한판 붙자."
식사를 끝내고 춤판을 벌이려던 귀족 건달들은, 
두 거지에게 싸움을 붙여 놓고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귀족 건달들은 손뼉을 치면서 싸움을 부추겼다. 
이기는 거지에게는 남는 음식을 한 보따리 싸주고, 
거지 왕이라고 불러 주겠다고 했다.
아무도 거지왕의 영역에서는 구걸을 못 하게 해주겠다고 말하는 건달도 있었다.

 싸움을 피할 수 없겠다고 생각한 오뒤세우스는 윗도리를 벗었다. 
오뒤세우스의 팔과 어깨의 근육을 본 이로스는 아무래도 
싸워 봐야 얻어맞기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꽁무니를 빼려고 했다. 
하지만 귀족 건달들이 둥그렇게 둘러서서 소리를 지르며 
등을 떠미는 바람에 그럴 수가 없었다.
 싸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로스가 오뒤세우스의 어깨를 향하여 되지도 않은 주먹을 날렸다. 
그러나 오뒤세우스의 주먹은 이로스의 주먹이 날아오기도 전에 
정확하게 이로스의 왼쪽 귀밑에 꽂혔다. 
이로스는 연회장 바닥에 나가떨어져 코와 입으로 피를 쏟았다. 
오뒤세우스는 이로스를 끌어 문 옆의 벽에 등을 기대게 했다. 
이로스는 등을 기대고 앉은 채 피를 흘렸다. 
귀족 건달들은 배를 잡고 웃으면서 오뒤세오스를 
새 <거지 왕>이라고 부르면서 환호했다.
환호하는 귀족 건달들에게 오뒤세우스가 한 마디 했다.
 "궁전의 연회장을 이렇게 난장판으로 만들다니 참 한심하십니다. 
모두 댁으로 돌아가세요. 이 궁전의 주인이 돌아와 자기 궁전 연회장이 
돼지 우리 꼴이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좋아할까요?"
오뒤세우스의 말에 화가 난 귀족 건달들 중 에루뤼마코스라는 건달이 
걸상을 하나 집어 오뒤세우스를 향해 던졌다. 
오뒤세우스가 살짝 몸을 틀자 걸상은 벽 앞에 놓여 있던 찬장에 가서 맞았다. 
찬장에 놓여 있던 무수한 포도주 그릇이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건달들은 그게 재미있었던지 다시 소리를 질러 환호했다.
실컷 먹고 마신 젊은 건달들이 하나둘씩 저희들 집으로 돌아갔다. 
오뒤세우스와 테레마코스는 벽에 걸려 있던 무기를 모조리 모아 
지하 창고로 옮기고는 문을 자물쇠로 채웠다. 
일이 끝나자 텔레마코스는 궁전 안채에 있는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오뒤세우스는 벽난로 불빛이 비칠뿐 여전히 
어두운 연회장 구석자리에서 페넬로페가 오기를 기다렸다.
하녀들이 먼저 내려왔다. 
하녀들은 저희들끼리 웃고 떠들어대면서 잔치 자리를 치웠다. 
하녀들은 거지가 그 때까지도
어두운 구석자리에 있는 것을 알고는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하녀 가운데 하나인 멜렌토는 거지를 쫓아내려고 
거지의 귀밑에다 횃불을 갖다 대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연회장으로 들어오던 페넬로페가 하녀를 꾸짖고는 
그 횃불로 연회장 중앙의 난로에 불을 지피고는 그 옆에 의자를 갖다 놓게 했다. 
오뒤세우스가 먼저 의자에 앉았다. 
하녀들이 물러가자 페넬로페도 희뿌연 양가죽을 깐 자기 의자에 앉았다. 
페넬로페가 먼저 그에게 이름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정체를 밝힐 준비가 되어 있지 않던 오뒤세우스는 또하나의 이야기를 지어냈다.
"저는 크레타의 왕자입니다만 트로이아 전쟁에는 참전하지 못했습니다. 
오뒤세우스 왕께서는 트로이아로 가시는 길에 저희나라에 들르셨지요. 
왕께서 저희 궁전에 머무시는 동안 이타카 군사들은 
폭풍에 부서진 배를 수리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