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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 -《오디세이아》29.★ 구석자리의 거지

Joyfule 2006. 4. 22. 01:23

호메로스 -《오디세이아》29.★ 구석자리의 거지 
페넬로페는 오래전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꿈에도 그리던 지아비 이야기여서 눈물을 떨구었다. 
하지만 당시 페넬로페를 찾아와 
오뒤세우스를 이야기하는 나그네들 중에는 가짜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페넬로페는 거지 노인을 시험하기 위해서 물었다.
 "오뒤세우스 왕이 어떤 옷을 입으셨던가요? 
나는 남편에 관한 이야기에 목말라 있는 사람이 랍니다."
오뒤세우스는 속으로 웃었다. 
그러나 그는 진지한 말투로 왕비의 물음에 대답했다.
 "보라색 겹 겉옷을 입고 계셨지요. 
어깨에서 겉옷을 여미는 것은 집게가 두 개 달린 브로치 였고요.    
브로치는 암사슴을 덮치는 사냥개 모양이었습니다. 
겉옷 밑에는 양파 껍질처럼 부드러운 속옷을 입고 계셨고요."
페넬로페가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떠날 당시 오뒤세우스에게 그 속옷과 겉옷을 입혀 준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뒤세우스가 왕비를 달랬다.
 "마마, 울지 마십시오. 
그 뒤로 불운이 닥쳐 저 역시 이렇게 방랑하고 있습니다만 
오뒤세우스 왕 소식은 그 뒤에도 들었습니다. 
제가 들은 소문으로는 뱃사람들은 모두 잃었지만 왕께서는 아직도 
살아 계실 뿐만 아니라 지금 고향으로 돌아오고 계시는 중이라고 합니다."
페넬로페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헛된 믿음으로 보낸 세월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거지 노인이 불어넣은 희망은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거지 노인이 고맙게 느껴졌던 페넬로페는 왕실의 유모인 
에우뤼클레이아를 불러 뜨거운 물로 노인의 발을 씻겨 주라고 명령했다. 
거지 노인의 발에는 먼지가 잔뜩 묻어 있을 뿐만 아니라 
군데군데 물집이 잡혀 있기까지 했다. 
에우뤼클레이아가 뜨거운 물이 든 대야를 들고 들어왔다. 
그 늙은 유모는 너무나 잘 알고 있던 오뒤세우스는 
불에 덴 듯이 물러앉으면서 불빛에 비치지 않도록 고개를 돌렸다. 
에우뤼클레이아가 합쭉한 입으로 중얼거리면서 오뒤세우스의 발을 끌었다.
"내 비록 어리석은 늙은이지만 손님의 발을 씻기는 일에는 보람을 느낀답니다. 
타향 땅을 떠도는 우리 주인님에게도 이렇게 해 주는 하녀가 있어야 할 텐데요. 
나그네께서도 풍채가 좋아서 몸을 깨끗이 씻고 좋은 옷을 입으면 
우리 주인님처럼 보이겠네요. 그래서 모습도 비슷하고 ……손하며 발하며 ……"
"제가 왕과 함께 있는 것을 본 사람도 그런 소리를 합디다."
오뒤세우스가 둘러대었다. 

중얼거리면서 발을 씻겨 주던 하녀가 무엇에 놀랐는지 흠칫거리면서 물러섰다. 
거지 노인의 누더기 자락이 열리는 순간, 무릎에서 시작되어 
엉덩이까지 이어지는 길고 하얀 흉터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오뒤세우스가 소년 시절 사냥에 따라 나섰다가 
멧돼지 엄니가 박혀서 난 상처 자국이었다. 
오뒤세우스의 유모였던 늙은 하녀가 속삭였다. 
"오, 우리 도련님. 오, 주인님 ……"
늙은 하녀 에우뤼클레이아는 오뒤세우스가 
변장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알아보았다. 
하녀는 늙은 사냥개 아르고스 다음으로 
오뒤세우스의 정체를 알아본 사람이기도 했다. 
에우뤼클레이아는 손에 잡고 있던 오뒤세우스의 발을 
첨벙 소리가 나게 대야에 떨어뜨리고는 옆에 앉아 있던 
페넬로페에게 주인이 돌아왔다고 소리를 지르려 했다. 
그 때 아테나 여신이 페넬로페의 주의를 다른 데로 돌려 버렸다. 
아테나 여신이 오뒤세우스의 정체가 밝혀지기는 이른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오뒤세우스는 한 손으로는 늙은 유모의 입을 막고 
다른 한 손으로는 유모의 귀를 가까이 끌어와서 속삭였다.
 "유모, 조용히 하세요. 내가 죽는 것을 바라시오?"
 오뒤세우스의 뜻을 이해한 유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 도련님. 조용히 하고 말고요. 돌처럼 가만히 있고말고요."
유모는 이렇게 말하고는 떨리는 손으로 오뒤세우스의 발 씻기를 끝마쳤다.
유모가 발을 씻기고 그 발에다 올리브 기름을 발라 문지른 다음 
대야를 들고 나갔을 때에야 페널로페는 거지 노인 쪽에서 
시선을 돌리면서 걱정스러워하는 말추로 중얼거렸다.
"오뒤세우스가 빨리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저 건달 중 하나를 
새 주인으로 섬겨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바라지도 않은 사람을 골라 시집 갈 수 있겠어요?"
오뒤세우스가 엄숙한 말투로 왕비에게 말했다.
"무슨 대회를 여시지요. 거기에서 우승하는 사람에게 시집가시면 되지요."
"페널로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물레가락에 실을 감는 일에만 열중했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물레가락을 떨어뜨리고는 
연회장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래요. 오뒤세우스의 활이 아직도 궁전 어딘가에 있어요. 
오뒤세우스가 아니면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쏠 수 없는 활이지요. 
한 개도 아니고, 도끼 열두 자루를 나란히 늘어 놓고는 화살을 쏘아 
열두 개의 고리를 다 지나가게 하고는 했는데 정말 굉장한 재주였지요. 
그래요. 활쏘기 대회를 열어야 겠어요. 
누구든지 내 남편의 활을 구부리고 화살을 쏘아 열두 개의 도끼고리를 
모두 지나가게 하면 새 주인으로 모시겠어요.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시집와서 이 날 이때까지 살아온 이 궁전에 이별을 고하겠어요."
"그렇다면 내일 대회를 여세요. 이것은 내 생각입니다만, 
우승하는 사람이 나오기 전에 오뒤세우스 왕이 여기에 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페널로페는 한참 거지 노인을 바라보다가 
일어나 하녀들이 기다리고 있는 침실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