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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 -《오디세이아》27. ★구석자리의 거지

Joyfule 2006. 4. 20. 04:41

호메로스 -《오디세이아》27. ★구석자리의 거지 
텔레마코스는 궁전으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갔을 때 귀족 건달들이 창던지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 날 오전에 벌어질 잔치를 위해 돼지를 잡는 건달들도 있었다.

건달들은 겉으로는 텔레마코스에게 깍듯이 예의를 갖추어 인사했다. 
하지만 그들은 텔레마코스의 변한 모습에 적잖아 놀라는 것 같았다. 
아닌게 아니라 소년이 줄로만 알고 있던 텔레마코스가 
그들에게 위협을 가할 만큼 어엿한 대장부가 되었으니 놀랄 만도 했다. 
건달들은 적당한 때가 오면 텔레마코스를 제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텔레마코스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는 자기를 죽이려던 안티노오스 일당이 사모스 섬의 절벽 밑에서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텔레마코스는 알고 있었을뿐, 내색은 하지 않았다.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로부터 아들이 왔다는 사실을 미리 
통보받고 있던 어머니 페넬로페는 자기 방에서 아들을 맞았다. 
페넬로페는 건달들에 대한 분노와 아들을 맞는 기쁨이 어우러진 
복잡한 감정을 눈물로 표현했다. 
텔레마코스는 어머니를 위로했다. 
그는 어머니에게 자기가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아버지는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음에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에게 진실을 말하고 싶었다. 
아침까지 아버지 오뒤세우스와 함께 있다가 아버지는 
돼지치기의 오두막에 남겨 두고 왔다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는 아버지의 당부를 생각하고 침묵을 지켰다.
한편, 에우마이오스는 텔레마코스의 심부름을 마치고 
다시 돼지치기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그가 오기 직전에 아테나 여신이 나타나 오뒤세우스의 모습을 
늙은 거지로 되돌려 놓았기 때문에 그는 옛 주인을 알아볼 수 없었다. 
늙은 거지는 한시바뻐 궁전에 들어가고 싶다면서 우겼다.
 "아무것도 없는 산, 풀을 뜯고 있는 동물 구경은 이제 신물이 납니다. 
나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곳이 좋습니다. 부디 데리고 가 주십시오."
에우마이오스는 돼지 떼는 젊은 돼지치기들에게 맡기고 
거지 노인에게 지팡이를 하나 주어 함께 산을 내려갔다. 
마을 가까이 왔을 때 두 사람은 궁전의 양치기 멜란티오스를 만났다. 
멜란티오스는 건달 중의 누군가가 왕이 되면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을까 해서 건달 무리에 붙은 양치기였다. 
그런 멜란티오스는 오뒤세우스와 텔레마코스에게 변함없이 충성을 바치는 
에우마이오스를 식충이, 부랑자라고 놀리면서 오뒤세우스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오뒤세우스는 맨손으로도 멜란티오스를 이길 수 있었지만 
정체가 드러날까 봐 꾹 참았다. 
두 사람은 앞을 가로막는 멜란티오스를 피해 걸음을 재촉했다. 
멜란티오스는 뒤에서 두 사람을 향해 욕지거리를 해댔다.
멜란티오스로부터 모욕을 당한 것말고는 
별 다른 일 없이 두 사람은 궁전 앞에 이르렀다.
궁전의 문 옆에는 논밭으로 실려 갈 똥무더기가 있었다. 
따뜻한 똥무더기 위에 늙은 개 한 마리가 다리를 뻗고 누워 졸고 있었다. 
한때는 알아 주는 사냥개였지만 두 사람이 보았을 당시에는 
개벼룩투성이인 비루먹은 개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늙은 개가 고개를 들고는 지나가는 두 사람을 물끄러미 쳐다보었다. 
오뒤세우스와 늙은 개의 눈이 마주쳤다. 
늙은 개는, 거지 차림을 하고 있었는데도 오뒤세우스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늙은 개는 일어날 힘이 없어서 귀와 꼬리를 흔들었을 뿐이었다. 
오뒤세우스는 그 개를 잘 알았다. 
그가 검은 배를 몰고 트로이아로 떠날 당시에는 강아지였던 아르고스였다.
 오뒤세우스는 손등으로 개의 눈을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렸다.
 "이렇게 멋진 개가 똥무더기 위에 이렇게 누워 있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한때는 알아 주던 사냥개였을텐데..........."
 에우마이오스가 말대답을 했다.
 "그렇습니다. 한때는 굉장했지요."
 한창때는 젊은 사냥꾼들이 이 개를 데리고 나가 
사슴 사냥, 들염소 사냥, 토끼 사냥도 했답니다. 
하지만 이 개의 주인이던 오뒤세우스 왕께서 외국에서 세상을 떠나신 뒤로는 
하인들이 이 개를 전혀 보살피지 않았지요. 
더구나 궁전이 저렇게 난장판이 된 뒤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지요."
오뒤세우스는 자기가 기르던 그 사냥개 아르고스 옆에 한동안 서 있었다. 
그는 개 앞에 쪼그리고 앉아 늙은 개의 지친 머리를 
자기 무릎으로 바쳐 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눈이 많아서 그럴 수가 없었다. 
수척한 개는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근 19년 동안이나 기다려 오던 주인을 만나는 순간 
아르고스는 숨을 거둔 것이었다.

오뒤세우스는 에우마이오스의 뒤를 따라 궁전으로 들어갔다. 
그는 자기 것인데도 불구하고 연회장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연회장에서는 건달들이 수금 가락에 맞추어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그는 나그네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문턱에 앉아, 향나무 문설주에 등을 기댔다.
텔레마코스는 화로 옆에 있는 높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오뒤세우스가 문턱에 낮은 것을 보고는 에우마이오스에게 명하여, 
그가 보리빵과 돼지고기 덩어리 가까이에 다가갈 수 있게 했다. 
오뒤세우스는 다가가 차려진 음식을 먹었다. 
먹으면서 그는 건달들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남을 동정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지저분한 주머니를 꺼내 들고 지나가면서 
건달들 앞에다 그 주머니를 내밀며 동냥해 줄 것을 부탁했다. 
빵 껍질이나 뼈 조각을 넣는 귀족 건달도 있었다. 
사모스 섬에서 텔레마코스를 기다리던 젊은 귀족 아티노오스는 
의자를 하나 들어 오뒤세우스의 어깨를 내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