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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 -《오디세이아》30.★ 활쏘기 대회

Joyfule 2006. 4. 23. 02:56


호메로스 -《오디세이아》30. 
★ 활쏘기 대회
오뒤세우스는 궁전 복도에 쌓인 양가죽 더미 위에서 그 날 밤을 보냈다. 
그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그 많은 적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인지 
밤새 그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았기 때문이다.
날이 밝으면 무수한 적을 상대로 싸워야 할 사람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아테나 여신은 걱정스러워 그를 잠재웠다. 
아친 일찍 잠을 깬 오뒤세우스는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 신에게 
도와주시기를 빌고, 도와 주시겠다면 그 조짐을 미리 보여 달라고 애원했다. 
그가 기도를 끝마치자마자 마른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들렸다. 
가까이에서는 하녀들이 곡식을 갈고 있었다. 
궁전으로 몰려들 귀족 건달들에게 먹일 빵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다른 하녀들은 모두 곡식 갈기를 끝내고 들어갔는데 노파하나만이 남아 있었다. 
노파는 일하는 속도가 느려 자기에게 맡겨진 일감을 다 해치우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노파의 입에서 무시무시한 말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오 제우스 신이시여. 저 천둥 소리는 
어느 복 많은 사람을 도우시겠다는 약속의 증거일테지요? 
저도 그 복을 좀 나누어 가지게 하소서. 
내 주인의 연회장에서 빈둥거리는 젊은 귀족들을 위해 
곡식을 가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게 하소서. 
그 젊은 건달들 때문에 이 늙은이의 뼈가 빠집니다. 
이것으로 만드는 음식이 그 놈들이 이승에서 먹는 마지막 음식이게 하소서."
천둥 소리와 노파의 말에 오뒤세우스는 힘을 얻었다. 
오뒤세우스의 가슴에 용기가 샘 솟으면서 팔뚝에도 힘이 올랐다. 
오래잖아 하녀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흙으로 된 연회장 바닥을 비질한 뒤 물을 뿌리는 하녀들이 있는가 하면 
걸상에다 보라색 깔개를 까는 하녀. 식탁을 닦는 하녀. 
하녀의 우두머리인 에우뤼노메의 꼼꼼한 감독 아래 포도주 잔을 닦는 하녀도 있었다. 
물을 길러 다니는 하녀들의 발걸음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빨라져 갔다.
돼지 우리에서 그 날 잔치에 쓰일 돼지를 몰고 온 돼지치기가 
오랜 친구 사이나 되는 것처럼 오뒤세우스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우고 있을 때 염소치기 멜란티오스 역시 그 날 
잔치에 쓰일 염소 떼를 몰고 들어오다가 오뒤세우스에게 건방지게 한 마디 했다. 
"거지 양반. 아직도 여기 있었소? 내가 도와주기 전에 얼른 꺼지는 게 좋을 텐데?"
이어서 소치기 필렉티오스 역시 그 날 잔치에 쓰일 소를 몰고 들어왔다. 
그는 거지 노인이 귀족 건달들로부터 모욕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몹시 분개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오뒤세우스에게 달려가 그의 팔을 잡으면서 인사말을 했다.
"노인장, 내 환영 인사 받으세요. 
어제는 고약한 대접을 받았다고 하나 곧 사정이 바뀔 것이오. 
그대 같은 분에게도 볕들 날이 올 것이고, 
내가 키운 소를 잡아먹는 저 귀족 건달들에게도 내리막 길이 있을 것이오."
이어서 귀족 건달들이 시끄러운 거위 떼처럼 무리를 지어 
아침 식사가 차려질 궁전의 연회장으로 향했다. 
좋아하는 사냥개 몇 마리를 이끌고 사냥창을 든 텔레마코스도 지나갔다.
텔레마코스는 오뒤세우스에게, 그 날만은 연회장 문턱에서 앉지 말고 
당당하게 연회장 안에 자리를 잡으라고 했다. 
그는 하녀들에게도 당부하여 오뒤세우스도 당당한 손님인 만큼 
여느 손님과 같은 분량의 음식을 차려 주게 했다. 
귀족 건달 중의 하나인 크테시포스가 이런 말을 했다. 
"암, 여느 손님과 똑같이 주어야 하고말고, 
하지만 나는 거기에다 이걸 보태주고 싶은데 ……"

그는 이렇게 말하고는 있는 힘을 다해 소 발 하나를 오뒤세우스에게 던졌다. 
그러나 오뒤세우스는 몸을 옆으로 기울여 날아오는 소 발을 피했다. 
소 발은 그가 등지고 있던 벽에 맞았다.
텔레마코스가 크테시포스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그는 거지 노인이 비록 귀족들과는 의견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한 사람이 왕비의 새로운 신랑으로 뽑히기까지 
평화로운 분위기를 유지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텔레마코스가 항의한 것과 때를 같이 해서, 
난데없는  바람이 불어든 듯한 이상한 분위기가 연회장에 감돌았다.  
귀족 건달 중에는 까닭도 모르는 채 깔깔 웃는 건달도 있었고, 
질질 짜는 건달도 있었다.  
울다가 웃다가 하는 건달도 있었다.  
분위기가 그 모양이 된 까닭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아테나 여신이 생각한 바가 있어서 분위기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이다.  
귀족 건달 중에 이따금씩 예언자처럼 이상한 발언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다른 귀족 건달들을 향해 이런 말을 했다. 
 "가엾은 사람들아, 내 눈에는 그대들에게 내리는 어둠의 장막이 보인다.  
그대들 뺨이 눈물로 젖은 게 보인다. 통곡 소리가 귀가 아프게 들린다.  
벽과 바닥은 피범벅이 되었다. 
궁전 앞마당에서 그대들의 영혼이 저승길로 내려가려고 서둘고 있구나. 
하늘에서는 태양이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건달들은 그 말에 큰 소리로 웃고는, 
궁전이 그렇게 어둡거든 마을로 내려가 보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예언자 같은 사람이 말을 이었다. 
"..암 내려가고 말고.  
죽음의 그림자가 시시각각으로 그대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나는 더 이상 그대들 동아리 노릇을 하고 싶지 않다."  
그는 이 말을 남기고는 연회장을 나가 버렸다.  
건달들은 여전히 웃으면서도 팔꿈치로 
서로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서 표정을 살폈다.  
그러다 다시 텔레마코스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텔레마코스에게 시비를 거는 것임에 분명했다.  
그러나 텔레마코스는 입을 꾹 다문채 
아버지 오뒤세우스에게서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윽고 페넬로페가 오뒤세우스의 거대한 뿔활과 화살이 가득 든 
화살통을 들고 연회장에 나타났다.  
페넬로페 뒤로는 도끼 상자를 든 하녀들이 따라 들어왔다.  
페넬로페는 지붕을 떠받치는 거대한 기둥앞에 자리잡고, 
도전적인 눈으로 건달들을 내려다보며 선언했다. 
 "귀족여러분, 여러분이 이렇듯 우기시니, 
나도 여러분 중 한분과 결혼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나는 여러분 중의 한분을 뽑되, 시합을 통해서 뽑으려고 합니다.  
여러분중 어느분이든 이 활에다 시위를 메우고 화살을 쏴, 
한줄로 서있는 도끼 열두개의 고리를 무사히 지나가게 하는 분이 있으면 
그분을 나의 새 지아비로 삼겠습니다."  
테레마코스가 제일 먼저 앞으로 나서면서 
첫 화살을 쏘는 권리는 자기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만일에 내가 성공하면, 
아무도 내 어머니이신 왕비님을 이 궁전에서 차지할 수 없게 됩니다."  
왕자 텔레마코스는 겉옷 자락을 여미어 허리에 쿡 찌르고, 
삽을 가져오게 해서 흙바닥에다 길고 좁다랗게 고랑을 팠다.  
과녁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그는 고랑의 한 끝이 아버지 오뒤세우스 자리앞에 이르게 했다.  
고랑이 만들어지자 이번에는 그 고랑을 따라 도끼를 세웠다.  
그는 정확하게 한줄로 늘어섰는지 이따금씩 점검하면서 도끼를 세우고는 
흙을 메우고 단단히 다졌다.  
과녁이 한줄로 서자 텔레마코스는 활과 화살을 들고, 
바닥보다는 비교적 높은 문턱으로 올라갔다.  
화살을 쏘려면 먼저 활시위를 활에다 걸어야 했다.  
그는 세 차례나 활시위를 활에다 걸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였다.  
네 번째는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힘을 썼다.  
어쩌면 활을 굽혀 시위를 메울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거지 노인이 한손을 움직임으로써 그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텔레마코스는 활을 내려놓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