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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 -《오디세이아》31.★ 활쏘기 대회

Joyfule 2006. 4. 24. 01:28


호메로스 -《오디세이아》31.★ 활쏘기 대회 
"애석하게도 아버지의 힘에는 아직도 미치지 못하는구나."  
이어서 하나씩 차례로 나섰다.  
그러나 나서는 족족 실패였다.  
열 사람인가 열두 사람인가가 실패하고 물러섰을 때였다. 
 안티노오스가 나서서 화로에 나무를 더 많이 가져다 넣게 하고는 
기름항아리를 그 위에 올리게 했다.  
뜨거운 기름으로 활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사실 활을 쓰지 않고 둔 지가 하도 오래되어 탄력이 없기는 했다.  
안티노오스는 활을 불에 쬐고 거기에다 뜨거운 기름을 바르고는 
다시 휘어 보았지만 그 활을 굽히지는 못했다.  
연회장에서 이 광경을 지켜 보고 있던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와 
소치기는 똑같은 광경이 되풀이 되는 것이 지겨워 
거지 노인 곁을 지나 궁전 안마당으로 나갔다.  
오뒤세우스가 가만히 일어나 두 사람을 따라 나갔다.  
안마당에 이르자 오뒤세우스는 나직한 목소리로 두 사람에게 물었다. 
 "만일에 그대들의 주인 오뒤세우스가 돌아온다면 오뒤세우스를 편들겠소, 
아니면 저 건달들의 편을 들겠소?"
"오뒤세우스 왕의 편을 들지요."  
두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에우마이오스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신들이 도우셔서 왕께서 오셨으면..너무 늦지 않게, 때맞추어 오셨으면..."
오뒤세우스가 누더기를 걷고 다리의 흉터를 보여 주면서 물었다.
"이 흉터를 알아보겠는가?"  
그 흉터를 바라보는 순간 돼지치기와 소치기의 숨이 멎었다.  
한동안 흉터를 내려다보고 있던 두 사람은 기쁨의 울음을 터뜨리면서 
오뒤세우스에게 달려들어 친형제 껴안 듯이 껴안았다.
그러나 오뒤세우스는 두 사람의 손을 떨어내고는 물러서라고 했다.  
누군가가 지나가다가 그렇게 얼싸 안고 있는 것을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 터이기 때문이었다.
"잘 들어라. 이제 나는 연회장으로 들어간다.에우마이오스, 
그대는 나를 따라와서 내 곁에서 기다려라.  
내 차례가 되면 그대가 활과 화살을 가져와 내 손에 들려다오.  
말들이 많을 것이다만 못들은 척하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  
그리고 필렉티오스, 그대는 지금 궁전 안뜰에서 바깥으로 통하는 문을 잠가라.  
그런 다음에 내 곁에 와서 기다리도록 하라."  
오뒤세우스는 다시 왁자지껄한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차례를 맞은 건달이 여전히 그 큰 활을 구부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두 번째로 차례를 맞아 문턱 가까이에 온 안티노오스는 
시합을 다음날로 연기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활 구부리기 시합을 하기 전에 활의 신 아폴론에게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로 그 때였다.  
문턱 가까이 있던 거지 노인이 자기도 힘과 기술을 시험할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젊은 건달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건달 중에는 이렇게 말하는 건달도 있었다. 
 "꿈도 크다.  저 영감은 여기에서 너무 잘 먹고 너무 많이 마셔서 
머리가 어떻게 된 것임에 분명하다.  
배에 태워 에케토스 왕에게 보내버리는게 좋겠어.  
에케토스 왕은 사람 고기를 즐겨 먹는다니까... 
저 영감을 쫓을 방법이 그 방법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나 여전히 기둥앞에 서 있던 페넬로페가 목청을 높였다.  
침착하면서도 냉정한 목소리였다. 
페넬로페는 거지 노인도 다른 귀족과 마찬가지로 연회에 초대된 사람인 만큼, 
그가 원한다면 똑같은 기회를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감이 성공하면, 왕비께서는 영감과 결혼할 건가요?" 
 건달중 한 사람이 물었다.  
좌중은 다시 웃음판이 되었다. 페넬로페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저 노인이 그것을 기대하고 기회를 달라고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만일에 성공하면 나는 저 노인에게 
'새 옷과 좋은 칼, 좋은 창을 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저 노인이 어디로 가시든 편히 가실수 있도록 도와드릴 것입니다."  
그 말을 받아 텔레마코스가 말했다.  
"저 노인이 성공하신다면, 그리고 원하신다면, 
여기에 있는 아버지의 활을 드릴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이 활의 상속자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페넬로페가 그럴 수는 없다고 하자 
텔레마코스는 어머니에게 매정하게 말했다.
 "어머니는 어머니 방으로 돌아가셔서 하녀들과 함께 실이나 감고 베나 짜십시오. 
그것이 여성의 일입니다. 
무기와 관련된 일은 남자들의 일인 만큼 남자들에게 맡겨 두시고요."
페넬로페는 놀라움을 가누지 못했다. 
아들이 한번도 그런 식으로 말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페넬로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년 티를 벗지 않은 것 같던 아들이 
집주인이나 된 것처럼 말하는 데 충격을 받고 말았다. 
페넬로페는 하녀들을 데리고 조용히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연회장에서 에우마이오스는 활을 집어 오뒤세우스 앞으로 가져갔다. 
그러나 건달들이 활을 놓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그는 활을 그 자리에 놓을 듯한 몸짓을 했다 
텔레마코스가 에우마이오스에게 소리를 질렀다. 
건달들의 소리보다 훨씬 우렁찼다.
 "에우마이오스, 활을 갖다 드려라! 
그대는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대의 주인이니 마땅히 내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것은 아니냐!"
 에우마이오스는 그 말에 용기를 되찾고 연회장을 가로질러 
활과 화살통을 오뒤세우스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러자 오뒤세우스가 그의 귀에 대고 무슨 말인가를 속삭였다. 
그는 왕실의 늙은 유모 에우뤼클레이아에게 달려가 여자들 방의 문은 
모두 잠그라는 말을 전하고는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왔다. 
그 동안 필렉티오스는 안뜰 문을 잠그고, 
배에서 쓰는 밧줄로 단단히 동여매기까지 했다. 
그리고는 연회장으로 돌아와, 에우마이오스 곁에 자리를 잡았다.
 건달들은 거지 노인 오뒤세우스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그러나 오뒤세우스는 들은 척도않고 활을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상태를 확인했다. 
산양의 뿔로 만든 그 활에는 벌레가 슨 흔적이 하나도 없었다. 
활의 상태에 만족한 오뒤세우스는 활의 한쪽 끝을 발치에다 대고 구부리고는 
흡사 음유시인이 수금의 줄을 매는 듯한 부드러운 동작으로 시위를 메웠다. 
당혹한 나머지 수근거리는 소리가 연회장 이곳 저곳에서 들려 왔다. 
그가 활시위를 퉁겨 보았다. 

제비가 짝을 찾을 때 내는 것과 비슷한 경쾌한 소리가 났다. 
그는 미리 옆에다 끌어다 놓은 화살통에서 화살 한 개를 꺼내어 
시위에 걸고는 의자에 앉은 채로 천천히 활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부드럽게 깍지손을 놓았다. 
화살은 날아가 도끼 열두 자루의 고리를 빠져 나갔다.
그제서야 그가 텔레마코스에게 소리쳤다.
 "텔레마코스 왕자, 이만하면 이 늙은 거지가 
그대 부친 활의 명예를 더럽힌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왕의 연회장에서 잔치를 계속하자면 
몇 사람 사냥하고 나서 계속해야 하지 않겠소?"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걸상에서 일어났다. 
전투를 앞둔 병사의 어깨가 그렇듯이 그의 어깨도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텔레마코스가 연회장을 가로질러 가서 오뒤세우스 곁에 섰다.
텔레마코스는 사냥창을 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