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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 -《오디세이아》33. ★ 건달들의 최후2

Joyfule 2006. 4. 26. 01:22


호메로스 -《오디세이아》33. ★ 건달들의 최후
그러나 페넬로페 자신은 연회장으로 내려오지 못했다.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아테나 여신이 페넬로페를 재워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에우뤼클레이아는 
옛 주인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하고 싶어서 못 견딜 지경이었다. 
에우뤼클레이아는 엎어지고 자빠지고 하면서 페넬로페의 방으로 뛰어 올라갔다. 
뛰어 올라가면서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내려오셔서 그토록 보고 싶어하시던 광경을 좀 보세요. 
오뒤세우스 왕께서 당신의 연회장으로 돌아오셔서 
건달들을 모조리 죽이셨답니다."
 페넬로페가 일어나 앉아 늙은 유모를 나무랐다. 
 "유모,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이군요. 
유모는 지금 내 잠을 깨웠어요. 
오뒤세우스 왕이 트로이아로 떠난 이래 가장 달콤한 잠이었는데."
 유모도지지 않았다.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이랍니다, 마마. 
오뒤세우스 왕께서 연회장에 와 계시다니까요. 
건달들로부터 그토록 모욕을 당하던 거지가 바로 
오뒤세우스 왕이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텔레마코스 왕자님은 벌써부터 아버님을 알고 있었어요. 
말씀드리지 않던가요?"
 페넬로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늙은 유모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하지만 페넬로페에게는 너무나 환상적인 소식, 꿈 같은 소식이었다. 
페넬로페는 하도 엄청난 소식이어서 믿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무슨 증거로 오뒤세우스 왕이 오셨다고 하는 것이오? 
악행을 일삼은 건달들을 치시려고 
어느 신께서 그분의 모습을 하고 오신 것이 아니던가요? 
아니면 내 지아비가 먼 데서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을 아는 
어떤 사악한 인간이 오뒤세우스 행세를 하는 것이 아니랍디까?"
 "그렇다면 말씀드리지요. 
나는 그분의 다리에 나 있는 흉터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어느 신, 어느 인간이 사냥터에서 얻은 그 흉터까지 흉내낼 수 있답니까?"
 유모가 왕비를 향해 소리쳤다. 
 페넬로페는 믿을 수가 없었다. 
페넬로페는 심호흡을 하고는 부르르 덜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내려가서 내 아들을 만나 보겠어요. 
건달들이 죽었다는 것도 내 눈으로 확인하지요. 
그리고 건달들을 죽인 사람도 내 눈으로 확인할 수밖에요……."
페넬로페는 에우뤼클레이아를 거느리고 계단을 지나 연회장으로 내려왔다. 
오뒤세우스는 여전히 누더기 차림을 하고 피비린내를 풍기면서 
화로 옆 기둥에 들을 기댄 채 서 있었다.
 페넬로페는 다가가 화로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화로 불빛에 비친 그의 얼굴을 건너다보았다. 
눈이 마주쳤는데도 불구하고 페넬로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기가 두려웠던 것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말 한 마디 오가지 않았다.
 아내에게 시간을 주기 위해 오뒤세우스는 일처리를 계속했다. 
하녀를 보내어 음유시인을 불러오게 한 것이었다. 
음유시인이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안뜰에서 연회장으로 들어오자 
오뒤세우스는 그에게 춤곡을 연주하게 했다. 
그래야 혹시 건달들의 친척이나 고향 사람들이 
궁전 옆을 지나가는 일이 있어도 연회장에 결혼 잔치가 벌어진 줄 알 터였다. 
친척이나 고향 사람들은 건달들이 죽은 것을 알면 
달려와 복수라는 것이 당시의 관례였다. 
음유시인으로 하여금 춤곡을 연주하게 함으로써 
우뒤세우스는 하루라는 시간을 벌고 
그 동안 숨을 좀 돌리 생각이었다.
춤판이 시작되었다. 
그는 하녀들의 우두머리 에우뤼노메에게 자기 몸을 씻기고 
기름으로 몸을 문지르게 한 다음 새 옷을 가져오게 했다. 
왕답게 차려 입은 그는 화롯가에 놓인 왕좌에 앉아 
화로 건너편에 앉은 페넬로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도 페넬로페는 앞에 있는 사람이 남편으로 믿어지지 않았다. 
페넬로페는 깎아 놓은 나무 인형처럼 앉아
 건너편에 있는 남편을 나그네 바라보듯이 했다.
이윽고 오뒤세우스가 입을 열었다. 
 "그대는 정말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이자 가장 잔혹한 왕비로군요. 
기나긴 세월을 떠나 있다가 이렇게 고향으로 돌아온 나에게 
아직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니 말이오…."
그리고는 에우뤼클레이아를 향해 이렇게 덧붙였다.
"유모, 나 피곤해요. 어디 구석 자리에 내 잠자리 좀 보아 줘요. 
자야겠으니까. 오늘 밤에는 나 혼자 자야 할까봐요."
그때 페넬로페는 남편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만일에 앞에 앉아 있는 나그네가 오뒤세우스와 페넬로페 자신만 아는 것. 
유모와 하녀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하녀들만 알고 있는 것을 안다면 
더 이상 의심할 필요는 없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페넬로페는 이렇게 말했다.
"유모, 시키는 대로 하세요. 잠자리를 보되, 내방에다 보아서는 안 돼요. 
침대를 내 방에서 끌어내려 잠자리를 보아 주세요."
오뒤세우스는 페넬로페가 무슨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알았다. 
짐짓 그는 화가 난 척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어느 장사가 우리 침대를 방에서 끌어내요? 
산 채로 자라는 올리브 나무로 네 개의 기둥을 삼아 
내가 손수 만든 침대가 아니던가요? 
그 올리브 나무를 자르지 않고 누가 그 침대를 움직일 수 있답니까?"

그 말 한마디에 페넬로페의 의심은 눈 녹듯이 녹아 버렸다. 
페넬로페는 걸상에서 벌떡 일어나 화로 건너편으로 뛰어갔다. 
오뒤세우스 앞에 이르렀을 때 펜레로페는 오뒤세우스의 목을 
휜팔로 감으면서 다시는 놓아주지 않을 듯이 끌어안고는 애원했다.
"저에게 화를 내지 마세요. 기나긴 세월, 얼마나 두려웠는지 모른답니다. 
사람은 믿고 싶은 것을 쉽게 믿는 법입니다. 그래서 두려웠던 겁니다."
오뒤세우스는 페넬로페를 끌어안은 채 화로 옆에 놓인 왕좌에 앉아 
그 동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어느 곳에서 방랑하든지 아내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한 순간도 없었다는 것도 고백했다. 
그러나 그는 또 떠나야 할 사람이었다. 
그는 다시 떠나야 할 때를 대비해서 페넬로페에세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이 애기를 하지 않으면 그 때 페넬로페가 
또 슬픔을 겪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저승에 가서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혼령을 만나고 왔어요. 
그 때 테이레시아스는 내게 그러더군요. 
고향 땅에 이르러도 여기에 정착하기 전에 또 여행을 떠나야한다고요. 
노를 어깨에 메고 또 한 차례 여행을 떠나야 한다고 말이오. 
이번에는 뱃길이 아니에요. 이번에는 땅 위를 방랑해야 합니다. 
이 나라 저 나라를 방랑하면서 마침내 배라는 것은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의 땅에 닿아야 합니다.
노를 곡식까부는 켜로 오해할 만큼 바다에 무지한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그 나라에서 땅을 파고 노를 나무 심듯이 
심은 다음에 포세이돈 신께 숫양 한 마리, 황소 한 마리, 
멧돼지 한 마리를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그래야 마침내 내가 포세이돈 신의 분노에서 자유로워집니다."
페넬로페가 대답했다.
"신들이 당신을 보호하고 마침내 고향으로 
안전하게 되돌아오게만 한다면 내가 슬퍼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요?"

네 개의 귀퉁이 기둥이 살아 있는 올리브 나무로 되어 있는 침대는 
새 침대보에 덮인 채 두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 진짜 결혼식 잔치라도 되는 듯이 
흥겹게 춤추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방으로 올라갔다. 
에우뤼노메가 손에 횃불을 들고 두 사람의 앞길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