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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 : 일리아드 (liad)★ 장례 경기를 벌이다

Joyfule 2006. 3. 13. 01:04

호메로스 : 일리아드 (liad)★ 장례 경기를 벌이다 헥토르의 어머니 헤쿠바를 비롯한 트로이아 여인들은 트로이아 성 정문 위의 망대에 서서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헥토르의 죽음을 통곡하기 시작했다. 안드로마케는 자기 집 다락방에서 금빛 꽃을 수놓으면서 헥토르의 겉옷을 짜고 있었고, 안방 하녀는 주인이 싸움터에서 돌아오면 몸을 닦을 수 있도록 물을 데우고 있었다. 안드로마케의 귀에 망루에서 여자들이 통곡하는 소리가 들렸다. 안드로마케의 손에서 날실 사이로 들어가던 베틀의 북이 툭, 떨어졌다. 시어머니의 통곡 소리에 외마디 비명까지 들은 안드로마케는 여자들이 통곡하는 까닭을 알아보기 위해 하녀 둘을 데리고 망루로 올라갔다. 안드로마케는 망루에 이르러서야, 아킬레우스의 전차에 매달린 채 선단 쪽으로 끌려가면서 헥토르의 시체가 일으키고 있는 먼지 구름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통곡하는 여자들 사이에서 안드로마케의 몸이 화살에 맞은 새처럼 무너져 내렸다. 정신을 차린 안드로마케는 울고 또 울었다. 아버지 없는 자식으로 남게 된 아들 때문에 울었고 견줄 데 없이 비참하게 죽은 헥토르 때문에 울었다. 한시 바삐 시신을 찾아 장례식을 치러 주지 않으면 영혼은 하데스의 나라인 저승에 들지 못하고, 산 자의 땅과 죽은 자의 당 사이에 있는 경계를 외로이 방황하게 될 터였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안드로마케는 또다시 울음이 나왔다. 그러나 시체가 되어 장례식도 치러지지 못하고 누워 있는 영웅은 헥토르뿐만이 아니었다. 사냥감을 배불리 잡아먹은 사자처럼 포만감을 느끼며 잠들어 있는 아킬레우스에게 파트로클로스의 망령이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왜 나를 화장해서 묻어주지 않습니까? 저승의 나라 망령들은 나를 저희 동아리에 끼워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 혼자 하데스의 검은 문 앞을 서성거린답니다. 자, 내 손을 한번 더 잡아 주십시오. 하데스의 문으로 들어서면 다시는 이렇게 와서 장군을 뵐 수 없게 될 테니까 말입니다." 아킬레우스는 오랜 전우의 손을 잡아 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망령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 순간 잠을 깬 아킬레우스는 부하들에게 화장할 장작을 마련하라고 명령했다. 아킬레우스의 부하들은 멀리 떨어진 내륙의 이다 산에서 나무를 베고 장작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노새 무리에 등짐을 지워 해변으로 실어 내었다. 아킬레우스의 명에 따라 그들은 장소를 정하고 장작을 쌓아 거대한 화장단을 세웠다.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이 화장단으로 올려지자 전우들은 저마다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애도하느라고 머리카락을 자라 시신 위에 뿌렸다. 아킬레우스도 머리카락 한 타래를 싹둑 잘라 파트로클로스의 손에다 쥐어 주었다. 전우의 명예에 어울리게 가축도 여러 마리 잡았다.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전차를 끌던 말 네 마리, 파트로클로스가 매우 좋아하던 사냥개 두 마리도 죽여서 화장단 위에다 올리게 했다. 슬픔과 분노로 제 정신이 아니었던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아 군의 포로 열두 명도 울대를 끓어 올리게 했다. 부하들은 여러 항아리의 기름과 꿀을 화장단 가에다 부었다. 해질녘이 되자 아킬레우스가 횃불로 화장단에다 불을 붙였다. 나무의 잔가지와 기름과 꿀에 불이 붙었다. 북풍과 서풍의 신이 와서 불길을 불어 주었다. 화장단은 밤새 타다가 해가 희붐해질 녘에야 사그러졌다. 부하들은 장군이 생전에 아킬레우스와 술을 마시곤 하던,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황금 술잔에 재가 되어 버린 파트로클로스를 담았다. 술잔을 땅바닥에 놓고 주위에다 돌을 쌓아 조그만 방을 만든 다음 그 위를 흙으로 덮으니 곧 무덤이 되었다. 아킬레우스는 흙을 덮긴 하되 돌로 쌓은 방은 밀봉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는 부하들에게 자기가 죽거든 화장해서 그 재를 파트로클로스의 재가 든 술잔에 넣어 잘 섞은 후에야 돌로 쌓은 무덤을 밀봉하라고 명령했다. 이윽고 장례 경기가 열렸다. 죽은 사람의 명예에 어울리게 장례 경기를 열어 주는 것이 당시의 관례였다. 아킬레우스의 보물 창고에서 나온 상품들이 진열되었다. 경기는 하루 종일 계속되었다. 첫 경기는 전차 경주였다. 그리스 연합군에서 가장 빼어난 전차와 말, 그리고 다섯 명의 전차 몰이가 출전했다. 선수들은 평원을 질풍처럼 내달았다. 그들 뒤로 먼지 구름이 일었다. 아득한 옛날 그 평원에 세워졌던 이정표가 반환점이었다. 전차는 반환점을 돌아 선단 방어벽 앞의 관중들 앞으로 오게 되어 있었다. 디오메데스가 앞섰다. 고함을 지르고 노래를 부르면서 그는 말의 엉덩이에다 연방 채찍질을 해댔다. 그의 전차 바퀴는 땅에 닿지 않는 것 같았는데도 뒤로는 먼지가 피어올랐다. 1등상은 그에게 돌아갔다. 음악과 살림살이에 재주가 있는 여자 노예 하나, 발이 세 개 달린 황금 솥 하나가 상품이었다. 그 다음으로 들어온 사람은 네스토르의 아들 안틸로코스였다. 안틸로코스는 말의 속도 덕분이었다기보다는 말 모는 기술로 메넬라오스를 간발의 차로 따돌리고 들어왔다. 안틸로코스에 이어 메넬라오스의 말발굽 네개가 천둥소리를 내면서 결승점을 지났다. 안틸로코스와 메넬라오스에게 각각 2등상과 3등상이 돌아갔다. 상품은 혈통이 좋은 암말 한 필과 1등상보다는 조금 작은 황금 솥이었는데 두 사람이 상의해서 서로 좋은 것을 갖도록 했다. 이어서 메니오네스가 들어왔고 한참 있다가 에우멜로스가 들어왔다. 마차가 부서지는 바람에 손수 말을 몰면서 전차를 끌고 왔기 때문에 늦었다는 것이다. 아킬레우스는 그들에게도 상을 내렸다. 이어서 권투 경기가 베풀어졌다. 거인이자 권투 잘 하기로 유명한 에페이오스와 아르고스 군의 대장 에우뤼알로스가 맞붙었다. 두 사람은 아랫도리를 벗고 넓적한 가죽 허리띠를 매었다. 두 사람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서로 치고 빠지고 했다. 격렬한 싸움인데도 꽤 오래 계속되었다. 결국 에페이오스가 에우뤼알로스의 턱에 일격을 명중시키고는 노새 한 마리를 상으로 받았다. 에우뤼알로스는 선 채로 땅바닥에다 피를 토했다. 다음에는 씨름 경기가 열렸다. 아이아스와 다친 상처가 이제 갓 나은 오뒤세우스가 짝짓기 계절을 맞은 두 마리의 뿔사슴처럼 맞붙었다. 그러나 실력이 엇비슷해서 결판이 나지 않았다. 아킬레우스는 두 사람의 경기를 중단시키고 상을 반씩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이어서 벌어진 달리기 경주에서는 오뒤세우스를 당할 상대가 없었다. 그는 이 경기에서 포도주를 섞는 은사발을 따냈다. 마지막으로 아킬레우스는 전사한 사르페돈의 갑옷을 가져오게 한 뒤, 구경꾼 사이에다 창을 하나 꽂아 그 위에 걸고는 창시합할 사람은 나오라고 했다. 갑옷은 먼저 상대에게 피를 흘리게 하는 사람이 차지하게 된다고 했다. 디오메데스와 아이아스가 갑옷을 입고 구경꾼 한가운데 만들어진 공터로 나섰다. 두 사람은 세 차례나 맞붙었다. 피가 서서히 달아오르자 아이아스가 창으로 디오메데스를 찔렀다. 창끝은 디오메데스의 방패를 뚫고 가슴 가리개에 꽂혔다. 이번엔 디오메데스가 아이아스의 목을 겨누고 방패로 숨기고 있던 창을 내질렀다. 구경꾼들은 둘 중 하나가 다치는 것을 염려해 경기를 중단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래서 경기는 중단되었다. 두 장군은 사르페돈의 갑옷을 나누어 가졌다. 해가 질 즈음 경기에 참가했던 선수들은 마무리 잔치를 벌이기 위해 아킬레우스의 막사로 몰려갔다. 마무리 잔치가 끝나고 장수들은 잠자리로 돌아갔지만 아킬레우스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그는 파트로클로스의 죽음과, 다시는 누릴 수 없는 함께 사귀고 나누었던 세월을 슬퍼하면서 혼자 울었다. 그러다 자리를 박차고 해변으로 달려간 아킬레우스는, 날이 희붐해질 때까지 해변 모래톱을 미친듯이 걸었다. 하지만 새 아침이 밝아와도 아킬레우스의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는 슬픔 때문에 맑은 정신을 잃어 버린 사람처럼 마굿간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말을 끌어내 멍에를 채워 전차에 맨뒤, 헥토르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갔다. 헥토르의 시체는 여전히 땅바닥 위에 엎어져 있었다. 아킬레우스는 다시 헥토르의 시체를 전차에다 비끄러매고 방어벽을 나가, 파트로클로스의 뼈무덤을 세 바퀴나 돌았다. 그 동안 헥토르의 시체는 물론 흙먼지 위를 계속해서 끌려 다녔다. 그는 열이틀 동안이나 밤으로 낮으로 똑같은 짓을 했다. 그러나 그 동안 아폴론 신이 헥토르의 시체를 가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거칠게 다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시체는 더 이상 상하지 않았다. 신들은 결국 아킬레우스가 광기 때문에 스스로 제 명예와 친구의 명예와 땅의 명예를 더럽히고 있다는 쪽으로 뜻을 모았다. 신들은 어떻게든 아킬레우스를 저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