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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 : 일리아드 (liad)★ 필록테테스의 독화살

Joyfule 2006. 3. 17. 13:40
호메로스 : 일리아드 (liad)★ 필록테테스의 독화살 


아이아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알게 된 그리스 병사들은 통곡했다.
온 해변이 다 시끄러울 정도였다. 오뒤세우스는 이런 말을 했다.

“트로이아 포로들이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나에게 주지 않았더라면,
만약 내가 지고  아이아스가 이겨 그 갑옷을 차지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일이 일어났을 것인가?
그랬어도  우리 그리스 군이 이렇게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되었을 것인가?”
그리스 군은 아이아스를 화장한 뒤 땅에 묻고
아킬레우스의 죽음을 슬퍼했듯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리스 군사들은 비록 그들이 헥토르를 죽이고 아마조네스와
멤논의 검은 군대를  물리쳤으며 <트로이아의 보물>을 손에 넣었다고는 하나,
너무 많은 장군들을 잃었기에 가까운 장래에 트로이아 성과
헬레네를 장악할 가능성은 십 년 전보다도 훨씬 적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절망에 빠진 그리스 장군들은 점쟁이 칼카스를 찾아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 보았다.
칼카스는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정신을 집중시키고
거기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그들에게 말했다.

“렘노스 섬으로 가서 필록테테스를 불러 오십시오.
신들의 말씀에 따르면 필록테테스 없이는 트로이아 성을 장악할 수 없습니다.”

필록테테스가 그리스의 렘노스 섬에 남게 되었던 경위는 이렇다.
십 년 전 트로이아를 향해 가던 그리스 선단은 물을 싣기 위해 렘노스 섬에 상륙했다.
그런데 그리스 군에 속해 있던 필록테테스는 그 섬의 산중에 살고 있던
독을 뿜는 용과 싸우게 됐다. 그 독 있는 용은 그의 발을 물어 버렸다.
필록테테스가 결국 용을 쳐죽이기는 했지만 상처는 낫지 않았다.
독물이 뚝뚝  듣는 상처는 그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안겨 주었다.
그가 어찌나 비명을 질러댔던지 다른 병사들이 잠을 설칠 정도였다.

그리스 군사들은 필록테테스를 불쌍하게 여기기는 했지만
꽉 막힌 공간이나 다름 없는 배에다 그를 실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 한적한 섬에다 두고 트로이아로 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십 년 세월이 흐르고 난 뒤에야, 신들은 칼카스를 통하여
필록테테스 없이는 트로이아 성을 장악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디오메데스와 오뒤세우스는 그를 데리러 갔다.
적막한 무인도에 상륙한 그들의 귀에 고통과 절망을 이기지 못하고 질러대는
필록테테스의 비명소리가 들려 왔다.
두 장군은 그 소리나는 곳을 따라가다가 해변 바위 틈에 있는 동굴을 찾아 냈다.

필록테테스는 비참한 모습을 하고 거기에 있었다.
몸은 뼈만 남아 앙상했고 수염과 머리카락은 길게 자라 있었으며
눈은 머리 깊숙이 쑥 들어가 있었다.
그는 활과 화살을 든 채 바닷가 깃털 더미 위에 누워서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동굴 바닥도 그가 잡아먹은 무수한 새들의 뼈와 깃털투성이였다.
그의 상처난 발에서는 여전히 독물이 뚝뚝 듣고 있었다.

오뒤세우스와 디오메데스가 다가오는 것을 본 그는, 활을 들고 화살에다
자기 상처에서 솟는 독을 묻혀 시위에 걸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손을 흔들어 적의가 없다는 뜻을 전하자
그제서야 활과 화살을 바닥에 놓고 두 사람을 맞았다.

두 사람은 바위에 앉아 그 섬으로 온 까닭을 얘기했다.
그리고는 함께 가기만 하면 어떻게든 상처를 낫게 해주고,
섬에다 버려 두고 왔던 일도 보상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들의 말을 들고 난 필록테테스는 함께 트로이아로 가겠다고 했다.

노잡이들이 필록테테스를 들것에다 실어 배로 옮겼다.
오뒤세우스는 바다에 떠다니는 나무를 주워 불을 피우고, 거기에다 데운 물로
필록테테스의 상처를 씻어 주었다. 그런 다음 기름을 바르고   
부드러운 천으로 감싸 주기까지 했다.
그가 십 년 동안이나 막보지 못한 음식과 포도주를 대접 하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 그들을 트로이아를 향해 뱃길에 올랐다.

바람이 좋아서 검은 선단이 정박해 잇는 바다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뒤세우스와 디오메데스는 필로테테스를 아가멤논의 막사로 데려갔다.
그는 대왕으로부터는 환영을, 마카온으로부터는 정성이 지극히 담긴 치료를 받았다.
아가멤논은 그에게 시중들 여자종 여럿과 스무필의 혈통 좋은말,
그리고 청동 그릇들을 내렸다.
뿐만 아니라 여종들을 시켜 그의 머리를 감기고 손질하고 빗기게 했다.
이렇게 해서 힘을 되찾은 필록테테스는 한시 바삐 활을 들고 싸움터로 나가
트로이아 군을 향해 독화살을 쏘고 싶어했다.

그리스 장군들은 촉에 독을 묻히는 것은 의롭지 못한 짓으로 여겼다.
그러나 필로테테스의 생각은 달랐다.

"내가 십 년이라는 긴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익힌 것은 죽이는 일뿐이오.
나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다면 모르지만, 만일 받고 싶다면
내 방식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시오."

그리스 군이 트로이아 성벽 밑에서 싸우고 있을 때였다.
파리스는 성벽 위에 서서 아래쪽을 향해 활울 쏘아대고 있었다.
필록테테스가 파리스를 보고는 이렇게 놀렸다.

"보아하니 활솜씨도 있고 아킬레우스 장군을 죽였을 정도의 화살도 있는 모양인데,
너만 있는줄 아느냐? 나에게도 활솜씨가 있고
헤라클레스로부터 대물림받은 활도 갖고 있다."




그리고는 재빠른 손질로 화살 하나를 시위에 걸어 쏘아 보냈다.
시위가 부르르 떨고 있을 동안 화살은 제 갈 길로 날아갔다.
화살은 파리스의 손등을 살짝 긁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심장이 세 번 뛸 동안 독은 그의 몸에 퍼졌다.
견줄 데 없는 고통이 불길처럼 파리스의 몸 속으로 퍼져갔다.
파리스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는 성벽 아래로 떨어졌다.
트로이아 군이 파리스를 성 안으로 들쳐 업고 들어 갔다.
의사들은 밤새도록 그를 치료했다.
그러나 그의 고통을 줄 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새벽이 되자 파리스가 소리쳤다.

"이제 내게 남은 희망은 단 하나뿐이다.
나를 이다 산 기슭에 사는 요정 오이노네에게 데려다다오."

트로이아 병사들이 그를 들것에다 싣고 가파른 숲길을 올랐다.
파리스 자신이 애인을 만나러 자주 오가던 길.
그러나 십 년 세월이 흐르도록 한 번도 다시 오가지 못했던 길이었다.
파리스를 들것에 실은 병사들은 마침내 오이노네의 동굴 앞에 이르었다.
안에서는 삼나무가 불에 타면서 내는 달콤한 냄새가 풍겨 나왔다.
오이노네가 나짓하게 부르는 슬픈 노랫소리도 들려 왔다.

파리스가 오이노네의 이름을 불렀다.
오이노네는 그 소리를 듣고 동굴 입구로 나왔다.
모닥불이 지펴져 있기는 했지만 밖에서 보면 여전히
어두운 동굴을 배경으로 서 있는 오이노네 마치 달처럼 창백했다.

병사들이 들것을 내리자 파리스가 손을 내밀었다.
그는 오이노네의 무릎에다 손을 대고는 도와 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오이노네는 치막자락을 걷어 쥐고 몸을 사렸다.

파리스가 사정했다.

"오이네노, 나를 미워하지 마시오. 나를 모르는 척하지 말아 주오,
이 고통은 내가 견딜 수 있을 만한 고통이 아니오.
그대를 혼자 버려 두고 간 것은 나의 본뜻이 아니었소.,
운명의 여신 모이라이가 나를 헬레네에게로 이끈 것이라오.
헬레네의 얼굴을 보기 전에 그대  품안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나를 불쌍하게 여겨 주오. 한때 우리가 나누던 사랑을 생각해서라도 
여기 그대의 발치에서, 고통 속에 죽게 버려 두지는 말아 주오."

그러나 오이노네는 나지막하면서도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이 헬레네에게 반해 나를 떠난 뒤로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헬레네는 나보다 아름다울터이니 분명히 나보다 더 잘 당신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헬레네에게 가서 고통을 없애 달라고 하세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는 동굴로 들어가 모닥불 가에 앉아 울었다.
한동안 그렇게 울고 나니 화가 풀렸다. 그래서 다시 일어나 동굴 입구로 나갔다.
그녀는 파리스가 당연히 거기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없었다.
파리스는 마지막 희망이 사라지자 들것 든 병사들에게
어두운 숲 속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죽어가는 짐승이 그런 곳을 찾아들어간다고 했던가.
오이노네가 여전히 동굴 입구에 서서 눈으로 그의 행방을 가늠하는 그 시각에
파리스의 숨은 이미 끊어지고 말았다.



들것 든 병사들은 서둘러 그의 시신을 떡갈나무 숲을 지나 성 안으로 옮겨 놓았다.
그의 어머니가 통곡하자 다른 여자들도 곡을 하기 시작했다.
헬레네는 헥토르가 죽었을 때 그랬듯이 둘 사이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서 만가를 불렀다.
사람들은 화장단을 높게 쌓고 그의 시신을 그 위에 올린 다음 불을 붙였다.
불길은 어둠을 뚫고 하늘로 솟아올랐다.

오이노네는 그런 줄도 모르고 어두운 숲 속을 헤매면서
사냥꾼에게 새끼를 빼앗긴 암사자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다녔다.
그러다 멀리 성 안에서 오르는 화장단의 불길을 보게 되었다.
오이노네는 그 불길의 의미를 너무나도 달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제서야 파리스가 온전하게 자기의 것이 되었다는 생각에서 울었다.
살아 생전에는 다른 여자에게 빼앗겼지만 죽어서나마
서로 만나 헤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오이노네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가파른 떡갈나무 숲과 요정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숲 속을 내달아 평원에 다다랐다
평원에는 수많은 트로이아 백성들이 화장단의 불길 주위에 모여 있었다.

오이노네는 신부처럼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는 빠른 발길로 군중 사이를 지나,
높이 솟는 불길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녀는 불길의 혀가 별이라도 핥을 듯이 낼름거리는 속으로 뛰어들어
파리스의 시신 옆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는 두 팔로 그의 시신을 안았다.

불길은 그 둘을 함께 태웠다. 불길이 사그러지자 사람들은 뒤섞인 재를 모아
황금 술잔에 단고, 돌로 만든 조그만 방에 그 잔을 넣고는 그 위를 흙으로 덮었다.

그로부터 긴 세월이 플렀다. 숲의 요정들은 무덤 위에다
두 그루의 찔레장미를 심었다.
이 찔레장미는 자라면서 서로에게 몸을 기대고
서로의 가지를 상대 쪽으로 꼬아 나갔다.
그래서 두 개의 가지가 아닌, 마치 하나의 가지인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