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에세이 2068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혼자 노는 능력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혼자 노는 능력 혼자 노는 능력이 탁월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치과의사인 한 친구는 의원 문을 닫았다. 그는 허름한 자신의 승용차에 낡은 텐트를 넣어 가지고 전국을 유랑하면서 살고 있다. 해질 무렵 그가 있다는 고성의 해변으로 가보았다. 일흔살이 넘은 그는 텐트 앞에서 어두워지는 바다를 보면서 기타를 치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노년에 여유가 있어 낭만을 즐기는 것이라고 착각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 이혼을 하면서 재산을 부인에게 다 준 후 그렇게 떠돌아 다니는 것이다. 금년 여름 폭우가 쏟아질 때였다.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안양천변에 텐트를 쳤는데 곧 물이 넘쳐날 것 같다는 것이었다. 독특한 삶이었다. 그는 어떤 환경에서도 혼자 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 같았다.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청춘은 인생소설의 후반부를 모른다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청춘은 인생소설의 후반부를 모른다 다큐 화면 속에서 청춘들의 아우성과 절규가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고시원에서 우리에 갇힌 가축 같이 들어앉아 공부를 하고 있다. 컵밥으로 끼니를 대충 때우면서도 손에는 영어단어장이 들려 있다. 오천원으로 라면만 먹고 사흘을 버텨야 한다면서 돈에 목말라 있다. 한 여성 수험생은 이십대가 가장 꽃같은 좋은 시절이라고 하는데 나는 왜 독서실에 묻혀 있어야 하느냐고 묻는다. 돈이 없어 고시원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화면이 바뀌면서 데뷰한지 삼 년이 된다는 여가수가 나왔다. 돈이 없어 앨범을 내지 못하고 노래할 무대도 없다고 했다. 그녀는 카트에 무거운 키보드와 스피커를 싣고 버스킹 공연을 위해 추운 거리로 나선다. 그녀는 벤치에 앉아있는 몇명의 남녀에게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가난의 옹졸함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가난의 옹졸함 아흔살의 노인의사는 평생 가슴에 맺혔던 얘기를 했다. 그가 수련의 시절은 보수가 없었다고 한다. 가난한 그가 교수댁에 인사를 가려는 데 차마 빈 손으로 갈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생각 끝에 그는 시외에 있는 과수원을 찾아가 바닥에 떨어진 사과를 아홉개 싸게 샀다. 그는 과수원의 구석에 있는 대나무가지로 광주리를 엮어 사과를 넣은 후 교수댁에 가지고 갔다. 며칠 후 그가 일 때문에 다시 그 교수댁에 갔다. 마루 끝에 그가 가지고 간 사과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교수의 부인이 누가 저런 선물을 가져왔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차더라는 것이다. 그의 가슴에 깊은 상처가 났다. 내면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그 상처가 평생 갔다고 고백했다. ​사람마..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노인들의 세 가지 공통된 후회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노인들의 세 가지 공통된 후회 밤바다로 나갔다. 하늘과 맞붙어 구별이 안되는 검은 공간 저쪽에서 오징어배 한 척의 노란 불빛이 반짝였다. 단조로운 파도 소리가 어둠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나는 모래사장에 앉아 밤의 고요와 침묵의 투명한 시간을 즐기고 있다. 내가 묵는 실버타운의 구십대의 노인은 황혼과 밤 사이에 있는 짧은 순간을 즐기는 게 지혜라고 내게 말해 주었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없이 살다가 바로 무(無)의 세계로 휩쓸려 가버린다고 했다. 팔구십대 노인들이 많은 실버타운에 이년 가까이 있어 보니까 노인들이 후회하는 몇 가지 공통적인 요소가 있다. 다 살고 보니까 인생이 별 게 아닌데 왜 그렇게 아둥 바둥 힘들게 살았을까 하고 후회한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지..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그의 할아버지는 노비였다.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그의 할아버지는 노비였다. 특이한 얘기를 들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노비였다고 했다. 할머니도 노비였고 아버지는 머슴이고 어머니는 하녀였다고 했다. 이천이십삼년인 지금도 그는 노비인 할아버지와 머슴인 아버지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사업에 성공했다고 한다. 많은 대학생들에게 등록금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왜 할아버지가 노비고 아버지가 머슴인걸 망각하지 않고 있을까.​내가 대학교 입학무렵 외가의 집성촌을 갔다가 우연히 예전의 노비문서를 본 적이 있다. 누렇게 쩌든 한지에 노비인 한가족의 이름이 먹으로 써 있었다. 그리고 노비들의 크고 작은 발바닥 모양이 검게 찍혀 있었다. 우리 세대까지 봉건신분제의 원형질이 잠재의식에 남아 있던 것 같다. 고등..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백합조개를 줏는 노인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백합조개를 줏는 노인 추적추적 내리던 가을비가 잠시 멈춘 오전에 해변으로 나갔다. 밀려오는 파도가 물러나는 파도에 부딪쳐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나는 맨발로 조수가 빠져나간 평평하고 고운 모래 위를 걷는다. 아침 바다가 파랑과 남색이 섞인 오묘한 빛을 띠고 있다. 한옥마을 앞까지 갔을 무렵이었다. 한 남자가 해변에 웅크리고 앉아 뭔가를 찾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고무장화에 긴 바지를 입고 있었다. 옆에는 물고기나 조개를 담는 어구가 놓여있었다. 이상했다. 조개를 채취하려면 투명한 바다 밑바닥의 모래를 뒤져야 했다. 그렇다고 그가 물고기를 잡는 것도 아니었다. 호기심이 일어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뭘 하고 계십니까?”​내 말에 그는 들고 있던 엄지 손톱만한 조개껍질을 보..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돈 잘 쓰는 법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돈 잘 쓰는 법 실버타운의 팔십대 부부가 밥을 먹으면서 내게 이런 말을 했다.​“은행에서 우리 돈을 컨설팅해주는 사람이 그러는데 이제 부터 돈을 쓰라고 하더라구요.”​그 부부는 개미같이 일생을 일만하고 살아온 사람들 같았다. 최소한의 생활비만 사용하고 검소하게 살면서 받은 월급을 저축해 왔던 것 같다. 그 부부는 자식도 없다. ​나의 경우도 비슷한 것 같다. 가난한 시절은 쓸 돈이 없었다. 변호사가 되어 약간의 여유가 생겼을 때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이따금씩 방송을 보면 굶어 죽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돈을 기부하라고 한다. 교회에 가면 라오스에 우물을 파주고 북한을 도와줄 헌금을 하라는 소리를 듣는다. 장학금을 내라는 권유도 노숙자를 도우라는 말도 들었다...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논다는 걸 잊어버린 사람들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논다는 걸 잊어버린 사람들 내가 사는 동해바닷가에는 서울에서 내려와 독특한 삶을 사는 젊은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띈다. 사진을 찍는 남편과 글을 쓰는 아내가 전 세계를 흐르다가 동해에 정착했다. 그들은 작은 서점을 하면서 살고 있다. 가게 안에서 남편은 향기로운 커피를 만들고 아내는 실로 책을 꿰매는 일을 하고 있다. 지나가다가 그들 부부의 책방을 보면 삶에 걱정이 없는 한적한 다른 세계인 것 같다. 가게 안의 고양이가 하품을 하며 조용히 바닥에 누워있다. 거기서 ‘미니멀라이프’라는 책을 샀었다. 복잡한 서울을 떠나 동해에서 원룸 하나를 얻어서 사는 젊은 부부의 소박한 삶을 담은 내용이었다. 욕심을 내지 않는 삶을 그들의 시각에서 풀어낸 글들이 들어 있었다.​내가 더러 들리는 파도..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긴급할 때 내 전화를 받아줄 사람은?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긴급할 때 내 전화를 받아줄 사람은? 판사와 법대 학장을 지낸 고교후배와 차를 나누면서 이런 질문을 던져봤다.​“아주 절실한 순간 전화를 걸면 급하게 달려와 줄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 것 같아?”​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한 명도 없을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나도 그와 똑같은 감정이었다. 변호사로 일하면서 오랜 감옥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봤다. 긴긴 세월 누군가 면회 한번 오지 않는 지독히 고독한 존재들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은 석방이 되도 혼자였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교도소 앞마당에서 어디로 갈지 정처가 없다. 그런 사람들이 공기마저 메마른 빈 방에서 목을 매고 죽는 걸 종종 봤다. 그들은 죽기 전에 한없이 울었다. 어떤 슬픔이었을까.​수십만명의 우상이었던 재벌 회장이 있다.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사백년전 선비가 보내온 메시지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사백년전 선비가 보내온 메시지 낡은 책 속에서 우연히 사백년전 한 선비의 수필을 보았다. ‘유쾌한 한때’라는 제목으로 서른세 가지의 즐거움을 나열했다. 고매한 선비답게 봄날 저녁 로맨틱한 친구들과 술잔을 나누는 것이라든가 서재 앞에 파초를 심고 비가 멎은 후 아름다운 햇빛이 쨍쨍 내려쬐고 나무들이 목욕을 한듯 싱싱한 걸 보고 좋아했다. 그는 겨울밤 고요한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땅위에 눈이 쌓이는 걸 즐겼다. ​그의 즐거움에는 선비다운 면도 있지만 의외로 관능적인 것도 있었다. 예를 들면 음부에 조그만 습진이 생겼다. 문을 단단히 닫아걸고 더운물에 담그니 유쾌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얘기하고 있었다. ​땀이 온몸을 폭포처럼 쏟아지는 여름날 소나기를 맞으면서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천사를 만났다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천사를 만났다 이십팔년전 여름.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의 장면이 갑자기 마음의 스크린에 펼쳐졌다. 적막한 산속의 무성한 나무 사이로 안개가 물같이 흐르고 있었다. 짙은 녹음으로 하늘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산책하기 위해 맹산으로 올라왔다가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다. 숲은 덩굴과 잡목으로 가득차 한 발을 내딛기 힘들었다. 계곡을 따라가면 마을이 있겠지 생각하고 내려갔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다시 다른 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도대체 방향을 가늠할 수 없었다. 몇 시간을 산속에서 헤맸다. 그날따라 나는 핸드폰도 물병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는 작은 바위에 앉아서 잠시 쉬면서 기도했다.​‘주님 길을 잃었습니다. 야산에서 죽기야 하겠습니까만 다리가 아프..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인생은 즐거워야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인생은 즐거워야 어제저녁 동해시의 외곽 기차길 옆 작은 중국음식점을 찾아갔다. 서울서 내려온 청년 셰프가 혼자 운영하는 작은 가게 같았다. 그 가게에서 추천하는 찹쌀탕수육과 짜장면을 주문했다. 하얀 찹쌀옷을 입고 잘 튀겨진 고기에 야채가 가득 섞여 있었다. 아삭거리면서 적당한 저항감이 있고 새콤달콤한 맛이었다. 짜장면도 기존의 틀을 벗어난 것 같았다. 양파와 야채를 볶지 않고 체를 썰고 칼금이 잘게 난 오징어 조각들이 섞여 있었다. 청년셰프가 내 옆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내 표정을 살폈다. 맛을 칭찬해 주자 아직 여드름 자국이 보이는 청년 셰프가 얼굴이 환해지면서 이렇게 말했다.​“저는 딤섬의 여왕이라는 유명한 셰프에게서 배우고 동해로 내려왔습니다. 지방 사람들의 입맛이 보수적이..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삶을 사랑하는 노인들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삶을 사랑하는 노인들 빨간 작은 등대와 항구 그리고 바닷가의 푸른 숲이 어우러진 곳에 나만의 수행처를 구했다. 앞으로는 그곳에서 기도하고 글 쓰고 공부를 할 예정이다. 며칠 동안 그곳에 가서 청소를 했다. 어제는 실버타운에서 알게 된 두 노인이 나의 작업을 돕겠다고 따라나섰다. 그 마음들이 고마웠다. 가는 차 안에서 내가 핸들을 잡은 노인에게 물었다.​“혼자 사는 노년이 어때요? 즐겁습니까?”​그는 강릉의 한적한 숲 근처 아파트를 얻어 혼자 몇 년 살다가 얼마 전에 내가 있는 동해의 실버타운으로 옮겼다. 그때그때 밥을 해 먹었는데 남은 걸 처리하기가 귀찮았다는 게 옮긴 이유였다. 그것도 혼자 사는 어려움의 하나인 것 같았다. 밥이나 반찬이 남으면 버릴 수도 없고 그게 없어질 때까..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중간 정도의 삶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중간 정도의 삶 동해의 바닷가로 내려와 살면서 자주 들리는 음식점이 있다. 막국수와 육계장을 잘하는 집이다. 도시에 살던 젊은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오전 열시반에 가게 문을 열고 오후 세 시경이면 문을 닫는다. 음식 맛이 소문이 나서 손님들이 몰려오는 데도 그 젊은 부부는 돈을 포기하고 자기들의 삶을 즐기는 것 같다. 그 부부만 그런게 아니다. 젊은 사람들이 하는 이름난 탕수육집도 그렇고 책방도 그랬다.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논다. 집세를 내지 못할 만큼 쪼들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여유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돈을 따라가지도 않고 거부하지도 않는다. 집은 너무 좋지도 않고 너무 초라하지도 않다. 입은 옷은 낡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유행을 따른 새것도 아니다. 그들 중..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어리석은 판사 고마운 판사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어리석은 판사 고마운 판사 요즈음 ‘동네 변호사’를 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 주변의 소소한 일들을 맡아 직접 처리한다. 사무실도 없다. 직원도 없다. 칠십 노인이 직접 모든 일을 한다. 그는 법원장이었다. 대형 로펌의 대표도 했었다. 그가 ‘동네 변호사’가 된 건 노년의 겸손과 봉사의 모습이었다. 서울에 올라간 길에 그를 만났더니 대뜸 이런 하소연을 했다. ​“어쩌다 법정에 나가 봤더니 젊은 판사의 태도가 가관인거야. 사람들에게 온통 호통을 치고 변호사들에게 모멸감을 주고 천방지축인 거야. 내 경력을 대충 눈치챘을텐데 나한테도 그러더라구.”​그도 임자를 만나 당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판사라는 목적을 성취하면 그런 식으로 뽐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런걸 견뎌 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