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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 (In the Ravlne) 1. - 안톤 체홉

Joyfule 2010. 4. 16. 09:57

 골짜기 (In the Ravlne) 2. -  안톤 체홉    
 
어느 날 귀머거리 스테판은 
그녀가 차를 4분의 1파운드나 가게에서 집어내는 것을 보고 기가 콱 막혔다. 
  "어머니가요, 차를 4분의 1파운드나 가게에서 가져갔는데요..."  
그는 나중에 아버지한테 고자질했다. 
" 어느 장부에다 적어놓을까요?"  
노인은 한 마디 대꾸도 없이 눈썹을 씰룩거리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윽고 2층에 있는 아내의 방으로 올라갔다. 
  "여보, 바르바르슈카(바르바라의 애칭), 
가게 물건 중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뭐든지 가져다 써요, 얼마든지 써도 괜찮아."
이튿날, 귀머거리 스테판은 안뜰을 뛰어가면서 그녀에게 외쳤다. 
  "어머니, 뭐든지 필요한 게 있으면 가져가세요!" 
  그녀의 자선행위 속에는 마치 등불이나 빨간 꽃에서 느껴지는 것 같은, 
뭔가 새롭고 상쾌하고 밝은 마음이 배어 있었다.
금육일의 전날이나. 사흘 동안 계속되는 수호 성자의 기념일 같은 때 
이 가게에서는, 도저히 통 옆에서 있을 수도 없을 만큼 
냄새가 지독한 소금에 절인 고기를 농부들에게 팔아먹었다. 
주정뱅이들에게 큰 낫이나 모자나 프라토크
( 러시아 여자들이 머리에 쓰는 두건처럼 생긴 스카프: 역주) 
같은 것을 담보로 잡고 외상 거래도 했다. 
질이 나쁜 보드카에 곯아떨어진 공장 직공들은 진흙탕 속에서 뒹굴었다. 
이렇게 해서 겹겹으로 죄업이 쌓여 주위에 안개가 낀 것처럼 
자욱한 느낌이 들 때라도, 문득 그런 소금에절인 고기나 
보드카와는 조금도 상관없는, 성품이 온화하고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여자가 
이 집의 안방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누구나  마음이 가벼워지고 안심이 되는 것이었다. 
그녀의 자선은 이 괴롭고 암담한 나날 속에서 기계의 안전판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리의 집에서는 이것저것 항상 바빴다. 
악시냐는 해도 뜨기전에 일어나 문간방에서 킁킁 콧소리를 내며 세수를 했고, 
부엌에서는 어쩐지 불길한 소리를 내며 사모바르에서 물이 펄펄 끓고 있었다. 
작달막한 키에 용모가 깨끗한 그리고리 노인은 기다란 검은 프록 코트를 입고 
면직물 바지에 번쩍번쩍 빛나는 긴 장화를 신은 채, 
유명한 가극 속에 나오는 시아버지같이 뚜벅뚜벅 구두 소리를 내면서 이 방 저 방 거닐었다. 
이윽고 가게의 덧문이 열렸다. 
날이 샐 무렵 경주용의 사륜 마차가 현관의 출입구에 도착하면, 
노인은 커다랗고 차양이 없는 모자를 귀 언저리까지 눌러 쓰고 
젊은 사람처럼 날쌔게 마차에 올라탔다. 
이럴 때의 모습을 보았다면, 
그가 쉰여섯 살 된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었다. 
아내와 며느리가 그를  배웅해주었다. 
이처럼 산뜻한 프록  코트를 입고, 
3백 루블짜리의 크고 검은 종마가 끄는 마차에 올라 앉으면, 
노인은 여러 가지 청탁이나 하소연을 하러 오는 농부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원래 그는 농부들을 싫어했기 때문에, 어떤 농부가 문 앞에 서서 
그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기라고 하면 화를 내며 소리치는 것이었다.
  "왜 그런 데 멀거니 서 있는 거야? 저리 가!"
  또 거지라도 서 있으면 이렇게 소리쳤다. 
  "하느님한테나 받으러 가게!"
그가 장사일로 나가고 나면, 그의 아내는 검정 옷에 검정 앞치마를 두르고 
방을 치우기도 하고 부엌일을 거들기도 했다. 
악시냐는 가게를 보았다. 
병들이 부딪치는 소리와 돈이 짤랑거리는 소리에 섞여 
악시냐의 웃음소리와 외침소리가 안뜰에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어보면, 가게에서는 이미  보드카의 밀매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귀머거리 스테판 역시 가게에 나가 있는 것이 예사였고, 
그렇지 않을 때는 모자도 쓰지 않은 채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한길을 서성거리며, 
멍하니 그 근처의 농가를 바라보기도 하고 하늘을 쳐다보기도 했다. 
이 집에서는 하루에 여섯 번쯤 차를 마셨고, 
네 번쯤 뭔가를 먹기 위해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그리고 밤이 되면 매상을 계산하여  장부에 기입하고 나서야 깊이 잠이 드는 것이었다. 
우클레예보에서는 면직물 공장 세군데와 그 공장의 소유주들, 
즉 플뤼민 형제의 집과 쿠스추코프네 집에 전화기 가설되어 있었다. 
그리고 군청에도 전화가 있었지만, 그 전화는 가설된 뒤 곧 불통이 되어버렸다. 
전화기 속에 빈대와 바퀴가 번식했기 때문이다. 
군수는 무식한 사나이로, 서류를 작성하는 데에도 단어 하나하나를 그리는 형편이었다.
 전화가 불통되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 이제부터 전화가 불통이니까 우리들도 여러 가지로 불편해지겠는데."  
플뤼민 형제간에는 송사가 그칠 새가 없었다. 
재판을 시작하면 화해가 성립되기까지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조업을 중단하는 것이었다. 
우클레에보 사람들에게는 이 재판이 일종의 기분전환 거리가 되어주었다. 
왜냐하면, 싸움이 일어날 때마다 여러 가지 이야기와  뒷소문이 온 마을에 퍼졌기 때문이다. 
축제일이면 쿠스추코프네와 플뤼민네는 서로 경쟁하듯 마차를 타고 멀리 돌아다녔다. 
그들은 온 우클레예보를 달려다니며 송아지를 치어 죽이기도 했다. 
악시냐는 화장을 하고 풀을 잔뜩 먹인 스커트 자락을 와삭와삭 소리내면서 
가게  주위의 한길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면 플뤼민 아우네 집 사람이 마차를 몰고 나타나 
마치 우격다짐하듯 그녀를 끌고 어디론지 데려가는 것이었다. 
그런 때면 그리고리 노인도 자기 말을 자랑하려고 마차를 타고 외출했다. 
언제나 바르바라가 동행했다. 
마차 멀리 타기 경쟁도 끝나고 날이 저물어 사람들이 슬슬  잠자리에 들 시간이면, 
플뤼민 아우네 집 안뜰에서는 누군가 값비싼 아코디언을 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달밤 같은 때에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저절로 가슴이 울렁거려서, 
어쩐지 마음이 들뜨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이 우클레예보도 초라한 골짜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