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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호프 - 골짜기 (In the Ravlne)1.

Joyfule 2010. 4. 15. 10:50

안톤 체호프 (1860-01-16 ....1904-07-15)

 

 

 

[편집] 생애

체호프는 1860년 흑해 위에 있는 아조프 해 연안의 항구 도시 타간록 (Taganrog)에서 식민지 수입 상품점을 하는 아버지 파벨 예고로비치 (Pavel Egorovič)와 어머니 예브게니야 야코브레브나 모로조바 (Evgenija Jakovlevna Morozova)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난다. 1867년 고향에서 고대 그리스어를 가르치는 예비학교를 다닌 후, 1869년 고전 교육을 목표로 하는 타간록 인문학교에 입학한다. 1872년 성적 불량으로 3학년 과정을 반복하며, 3년 뒤 고대 그리스어 시험에 낙제하여 다시 5학년 과정을 반복한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체호프 가족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며, 15세의 체호프는 큰 형 알렉산드르와 함께 문학 창작에 열중한다. 두 형 알렉산드르와 니콜라이 그리고 동생 이반이 5년 과정으로 타간록 학교를 졸업한 반면, 체호프은 1879년 8년 과정으로 학교를 졸업함으로써 대학 진학 자격을 얻는다. 같은 해 타간록 모교로 부터 장학금을 받아 모스크바로 올라가 그 곳에 이미 자리를 잡은 부모 형제들과 재회하며, 같은해 10월 모스크바 대학의 의학과에 입학한다. 그러나 이 때부터 체호프은 타간록에서 받는 장학금과 잡지의 기고료로 부모와 세 동생의 뒷바라지를 한다.

1887년 연극 이바노프의 첫 상연이 있기까지 체호프은 문학잡지 《귀뚜라미(Strekoza)》, 《파편(Oskolski)》, 《자명종(Budilnik)》, 《페테르부르크 신문》 등에 100줄에서 150줄로 한정된 짧은 단편과 수필을 일주일이 멀다하고 기고한다. 특히 1883년에는 《Oskolski》에 매 이주일마다 모스크바의 일상을 스케치하는 컬럼을 맡는다. 이처럼 글을 써 돈벌이를 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1883년 10월부터 의학 졸업시험 준비에 열중하여 다음해 9월 졸업을 했으며, 11월에 처음 결핵 증세로 요양을 한다. 1884년에는 또한 첫 단편집 《멜포네네의 우화》가 출판된다.

 

ㅡ 위키백과에서 ㅡ


 안톤 체홉 -  골짜기 (In the Ravlne)1.
 1
 우클레예보 마을은 골짜기에 묻혀 있어서 큰길이나 정거장 쪽에서 보면 
겨우 종루와 면직물 염색공장의 굴뚝이  보일 뿐이었다. 
근처를 지나는 사람들이 이 마을에 대해서 어떤 마을이냐고 묻기라도 하면, 
이 고장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했다.
 "이 마을은요, 장례식 때 교회 집사가 캐비어를 몽땅 먹어치운 바로 그 마을입니다."
언제든가, 공장주인 코스추코프네 집에서 장례식이 거행되었는데, 
그때 늙은 교회 집사가 자쿠스카(러시아 스낵의 일종: 역주)속에 
굵은 캐비어가 들어 있는 것을 보고 정신없이 먹어대기 시작했던 것이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쿡쿡 찌르기도 하고 
소매를 잡아당기기도 하면서 눈치를 주었지만 
그는 맛에 취해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무슨 짓을 당해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먹어대고만 있었다. 
결국 그는 항아리 속에 들어 잇던 4파운드의 캐비어를 깨끗이 먹치웠던 것이다. 
그 일이 있은 지도 이미 몇 년이 지나고 
당시의 교회 집사도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이 캐비어 이야기만은 아직도 잊혀지지 안고 있었던 것이다. 
이마을의 생활이 그 정도로 삭막했던가, 
아니면 마을 사람들에게는 10년 전에 일어난 
이 하잘 것 없는 사건 이외에는 기억할 만한 재주가 없었던가. 
하여간에 우클레에보 마을에 대하여는 달리 이야기할 거리가 없었다.
이 마을에는 열병이 그치지 않고 돌았으며, 여름철에도 곳곳이 진창투성이였다. 
늙은 갯버들이 가지를 드리워서 폭 넓은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는 
울타리 밑 같은 데는 더욱 질척질척했다. 
공장에서 나온는  쓰레기와 면직물 염색에 쓰이는 
초산 냄새가 항상 주위에서 풍겨나오고 있었다. 
공장은 면직물  염색공장이 셋, 그리고 피혁공장이 하나 있었는데, 
어느 것이나 마을 한가운데가 아니라 
마을에서 약간 벗어난 변두리에 자리잡고 있었다. 
모두 작은 공장들로 직공의 수는 전부 합해 겨우 4백명 정도 밖에 안되었다. 
피혁공장 때문에 개울물은 늘 악취를 풍겼고, 
쓰레기는 목초 지대를 오명시켜 농가의 가축들을 탄저병에 걸리게 했다. 
그래서 이들 공장에는 폐쇄령이 내려졌으나, 
실제로는 지서장과 군의의 묵인하에 모래 조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공장주는 매월 10루블씩 그들에게 뇌물을 바치고 있었다. 
마을 전체를 통하여 양철로 지붕을 이은 석조 건물은 겨우 두 채뿐이었다. 
한 채는 군청이었고, 다른 한 채는 교회 맞은편에 있는 2층 건물로 
에피판 출신의 그리고리 페트로비치 치부킨이라는 상인의 집이었다. 
 그리고리는 식품점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인 것일 뿐 뒤로는 보드카, 가축, 피혁, 곡물, 돼지, 
그밖에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다 취급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수출용 부인모에 장식으로 다는 까치 깃털 주무을 맡아 
한 쌍에 30코페이카씩 벌기도 하고, 
삼림을 사서 목재를 베어내어 팔기도 하고, 고리 대금에까지도 손을 댔다. 
어쨌든 빈틈없는 영감이었다. 
그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다. 
장남 아니심은 경찰서 수사과에 근무하고 있어서 
집에는 어쩌다 한 번씩밖에 들르지 않았다. 
차남 스테판은 그를 도와서 가게 일을 보고 있었는데, 
신병이 있는 데다가 귀까지 멀어서 
크게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스테판의 처 악시냐는 몸매가 날씬한 미인으로, 
명절 때가 되면 모자를 쓰고 양산을 바치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여자였다. 
그녀는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에는 늦게 잤다. 
스커트 자락을 살짝 치켜들고 열쇠를 짤랑거리면서, 
하루종일 창고에서 지하실로 지하실에서 가게로 뛰어다녔다. 
그리고리 노인은 그런 며느리를 볼 때마다 흐뭇한 표정으로 눈을 빛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녀가 장남의 아내가 아니라 
여자의 아름다움 같은 것은 통 모르는 
둘째의 아내라는 것을 애석하게 생가하는 것이었다. 
노인은 원래 가정적인 사람이어서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자기의 가족을 사람했다. 
가족 중에서도 각별히 사랑한 것은 형사 노릇을 하는 장남과 둘째 아들의 처였다. 
악시냐는 귀머거리 둘째 아들에게 시집온 그날부터 놀라운 장가 수완을 발휘해서, 
어느 손님에게는 외상으로 팔아도 되고 
어느 손님에게는 안 된다는 것까지 환히 알고 있었으며, 
온 집안의  열쇠를 맡아가지고 남편에게조차 건네주지 않았다. 
주판알을 튕기면서 계산을 맞추는 것을 보면 
농부가 말의 이빨을 들여다보듯 아주 정확했다. 
하루종일 그녀의 웃음소리와 외침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노인은 그녀의 말 한마디, 행동 거지 하나하나가 
다 신통해서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대단한 며느리야! 그래그래, 예쁜 아가..." 
그리고리는 홀아비였다. 
그러나 아들이 결혼식을 치르고 나서 1년쯤 지나자
더 참을 수가 없어서 자기도 재혼을 하였다. 
그른 우클레예보에서 30킬로미터쯤 떨어진 마을에 살고 있는 
바로바라 니콜라예브나라는 쳐녀를 중매를 통해 아내로 맞아들였다. 
나이는 꽤 들었으나 가문이 좋고, 상당한 미인으로 몸매도 고왔다. 
그녀가 2층에 기거하게 되자, 
온 집안이 마치 창유리를 몽땅 갈아 끼운 것같이 갑자기 훤히 밝아졌다. 
성상 앞에는 등불이 켜지고, 테이블에는 눈같이 흰 테이블 보가 쓰워졌으며, 
창가와 뜰에는 빨간 봉오리를 맺은 꽃들이 놓였다. 
식사 때에도 쭉 해오던 대로 한 그릇에 담아놓고 
모두들 다같이 떠먹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앞에 한 개씩, 각자  자기 몫의 접시가 나왔다. 
바르바라가 즐거운 듯 상냥하게 웃으면 
온 집안이 그녀와 함께  미소짓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것도 예전에는 일찍이 없었던 일로, 
거지나 순례자나 집시 차림의 여자들이 안뜰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우클레에보 여자들의 노래하는 듯한 애수 띤 목소리나, 
술주정으로 공장에서 쫓겨난 초라하고 
염치없는 사내들의 조심스러운 기침소리도 창가에서 들려왔다. 
바르바라는 처음에는 그들에게 돈과  빵과 헌옷 같은 것을 집어 주더니, 
이 집 살림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가게의 물건까지 들어내게 되었다. 
어느 날 귀머거리 스테판은 
그녀가 차를 4분의 1파운드나 가게에서 집어내는 것을 보고 기가 콱 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