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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 (In the Ravlne) 4. - 안톤 체홉

Joyfule 2010. 4. 19. 01:02

 골짜기 (In the Ravlne) 4. -  안톤 체홉    
 
부활제가 지나고 곧 그 다음 주가 되면 
결혼하기로 정해져 있건만 조금도 기뻐하지를 않았으며, 
새색시를 만나고 싶어하는 기색도 없이 
그저 무작정 휘파람만 불고 있었다. 
그가 장가를 드는 것은 다만 아버지와 계모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인 것이 분명해 보였다. 
또 마을에는 그런 법도, 즉 집안일을 돕기 위하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한다는 법도가 있었기 때문에 
이에 따르는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는 근무지로 돌아가면서도 조금도 서두르는 기색이라곤 없었다. 
대체로 예전에 집에 왔다가 돌아갈 때와는 거동이 달랐다. 
어쩐지 매우 자포자기한 듯한 태도를 취하기도 하고 
쓸데없는 말을 수없이 지껄이기도 하는 것이었다.
시칼로보 마을에는 플레절런트 종파(13-14세기경 주세 유럽에서 시작된 
광신적 종파의 하나로, 이 종파의 신도들은 자신에게 채찍을 가하는 등 
가혹한 고행을 일삼음: 역주)를 믿는 자매가 양잠점을 경영하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결혼 의상을 주문받아서 
그 가봉을 하러 왔다가 오래도록 차를 마시고는 돌아갔다. 
바르바라는 검은 레이스와 유리 구슬 장식이 달린 갈색 옷을 맞추었고, 
악시냐는 가슴에 노란 천을 대고 치맛자락에 무늬를 한 초록색 옷을 맞추었다. 
두 자매가 옷을 다 만들었을 때, 
그리고리 노인은 현찰 대신 자기 가게의 물건으로 옷 값을 지불했다. 
자매는 바라지도 않던 양초와 정어리 통조림 꾸러미를 
두 손으로 그러안고 실망한 얼굴로 돌아갔다. 
그리고 마을을 나서서 들판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언덕에 앉아서 엉엉 목놓아 울었다. 
아니심은 결혼식 사흘 전에 집으로 돌아왔는데, 온통 새것으로만 치장하고 있었다. 
번쩍번쩍한 윤이 나는 고무 덧신을 신고, 넥타이 대신에 구슬 장식이 달린 빨간 끈을 매고, 
외투 역시 새로 맞춘 것으로 소매를 꿰지 않고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기도를 올린 다음, 그는 아버지에게 돌아왔다고 인사를 하며 
1루블짜리 은화 10개와 50코페이카짜리 은화10개를 드렸다. 
그리고 바르바라에게도 같은 액수의 돈을 내놓았고, 
악시냐에게는 25코페이키짜리 은화 20개를 주었다. 
이 선물의 가장 큰 매력은 은화가 모두 새것이라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었다. 
아니심은 근엄하고 교만한 태도를 취하려는 듯, 
짐짓 얼굴표정을 딱딱하게 하고 두 볼을 부루퉁하게 내밀고  있었다. 
입에서는 술 냄새가 풍겼다. 
아마도 기차가 역에 도착할 때마다 식당으로 쫓아갔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 그이 태도에는 어쩐지 자포자기한 듯한 어색한 구석이 있었다. 
이윽고 아니심은 노인과 함께 차를 마시고 자쿠스카를 들었다. 
바르바라는 새은화를 손에얹어 뒤집어 보기도 하고, 
이 마을에서 도시로 이사간 사람들의 소식을 묻기도 했다. 
  "덕택에 별탈은 없어요. 모두들 무사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니심이 말했다.
"다만 이반 예고로프네 집에 조그만 불행이 있었습니다. 
뭐,  소피아 니키포로브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뿐이에요. 
폐병이었지요. 포도주도 나왔더군요. 
농부들... 결국 이 마을에서 도시로 이사간 사람들인데... 
그들도 2루블  반씩 냈어요. 하기야 그들은 아무것도 못 먹었거든요. 
농부들이 소스가 곁들여진 요리를 어떻게 먹겠어요."
  "2루블 반이라!" 노인이 말하고는 머리를 저었다. 
  "물론이지요. 도시는 이런 시골과는 달라요. 
뭘 좀 먹으려고 요리  집에 가도 한 접시 두 접시 주문하는 동안에 
친구들이 모여들고, 그래서 술판이 벌어지고...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새벽녘이고, 계산서를 받아보면 
한 사람 앞에 3, 4 루블씩 계산이 돌아가는 게 보통이랍니다. 
거게에 만약 사모르도프가 자리를 함깨 하게 되면 문제가 달라져요. 
그 녀석은 먹은 다음에는 반드시 코냑이 든 커피를 마시고 싶어하는데, 
그 코냑이라는 것이 한 잔에 60코페이카 하는 형편이니까요..."
  "흥, 바보 같으니!" 노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허풍만 치고 있군!"   
"저는 요즈음엔 언재나 사모로도프와 어울려 다닙니다. 
사모로도프가 바로, 집으로 보내는 제 편지를 대신 써주는 바로 그 사람이에요. 
아주 글씨를 잘 쓰는 친구입니다. 그렇죠. 어머니?"  
아니심은 바르바라를 보며 즐거운 듯이 말했다. 
"사모르도프가 어떤 사나이인지 이야기를 해봤자 어머니는 곧이듣지도 않으실 거예요. 
우리들은 모두 녀석을 므후탈인라고 부릅니다. 
워낙 온몸이 아르메니아 사람들처럼 새까맣거든요. 
저는 녀석을 뱃속까지 꿰뚫어볼 수 있으니까 
녀석이 하는 짓이라면 뭐든지 손에 잡은 듯 훤해요. 
그것을 녀석도 눈치채고 있어서 제 뒤만 쫓아다니며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끊으려 해도 끊지 못하는 사이가 되었어요. 
녀석도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 눈치지만, 
저와 인연을 끊으면 살아갈 수 없으니까 
제가 가는 곳이면 녀석도 반드시 따라다니지요. 
제 눈은요, 어머니, 일단 이렇다 싶으면 절대로 실수가 없어요. 
이를테면요, 헌옷 시장에서 농부가 셔츠를 팔고 있습니다. 
그 농부를 한 번 보고는 '잠깐만,  그 셔츠를 장물이지!'라고 합니다. 
뒤에 조사해보면 틀림없이 장물이거든요!"  
"어떻게 그런 것을 알아내지?' 바르바라가 물었다. 
  "어떻게고 뭐고 없어요. 어쨌든 제 눈은 그렇게 알아보게 되어 있답니다. 
무슨 곡절이 있는 셔츠인가 하는 것까지는 할 수 없지만. 
그저 어쩐지, 이유없이, 머리에 딱 떠올라서 이건 장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그뿐이에요. 그래서 우리 수사과에는 모두들 이렇게 말한답니다.
 '하하, 아니심 녀석. 또 사기꾼을 잡으러 갔군'이라구요. 
곧 장물을 찾아내러 갔다는 뜻이지요. 
이거야 정말... 훔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숨기기는 아주 어렵거든요! 
세상은 넓지만, 장물은 숨길 장소가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우리 마을에서는 지난 주, 군트레프네 집에서 
숫양 한 마리와 암양 두 마리를 잃어버렸는데..." 
바르바라가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아무도 찾아줄 사람이 없어서..."
  "그러면 제가 찾아줄까요?  찾는 것이라면 문제없어요" 
  결혼식 날이 되었다. 
쌀쌀하면서도 마음 들뜨게 하는 화창한 4월의 어느 날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멍에와  말갈기에 울긋불긋한 리본을 단 쌍두 마차와 3두 마차가,
 절렁절렁 방울 소리를 내면서 온 우클레예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찌르레기도 마치 그리고리네 집에 결혼식이 있는 것을 기뻐하는 것처럼 
잠시도 쉬지 않고 울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