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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 (In the Ravlne) 10. - 안톤 체홉

Joyfule 2010. 4. 26. 10:07

 골짜기 (In the Ravlne) 10. -  안톤 체홉    
 
해는 이미 저물었고, 작은 시냇물 위에도 교회의 구내에도 
공장 주변의 공지에도 짙은 우유빛 안개가 뿌옇게 덮이기 시작했다. 
어둠이 왈칵 몰려와서 골짜기에 묻힌 마을에는 등불이 반짝이기 시작했고, 
안개 속에는 마치 바닥 모를 심연이 감추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순간적으로,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두려움에 떠는 
상냥한 영혼만 제외하고는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남에게 주면서, 
평생 이대로 살아가리라 하고 생각하고 있는 
리파와 그녀의 어머니에게도 이런 생각 - 
이 광대무변하고 신비로운 세계에서 영위되고 있는 
수 없는 생활 속에서 자기들도 무언가 의미를 가진 존재라는, 
이 세상에는 자기들보다 못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을 스쳐갔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들은 높은 언덕에 앉아 있는 것이 더없이 유쾌했다. 
그들은  행복한 미소를 띠면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마침내 그들은 집으로 돌아왔다. 
대문 옆과 가게 앞에는 밀을 베는 일꾼들이 땅바닥에 앉아 있었다. 
우클레예보 마을에 사는 농부로서 
그리고리네 집에 일하러 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므로 
일꾼들은 다른 마을에서 데려와야만 했다. 
그때 저녁 어스름 속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길고 검은 수염을 기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게는 열려 있었고 구머거리 스테판이 
어떤 아이를 상대로 바둑을 두고 있는 것이 문 밖에서 보였다. 
일꾼들은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가 하면, 
큰소리로 전날치 품삯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리고리네 집에서는 그날 밤에 돌아가 버리면 
다음 날의 일이 곤란해지므로 그들에게 품삯을 지불하지 않았다. 
프록의 저고리를 벗고 조끼만 입은 그리고리 노인은 
악시냐와 함께 계단 옆의 자작나무 아래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램프가 밝혀져 있었다. 
  "할베요!" 밀 베는 일꾼 하나가 빈정대는 투로 문 밖에서 소리쳤다. 
  "절반만이라도 좋으니 품삯을 주이소! 할배요!"
  이어서 곧 와 하는 함성이 들렸으나, 
한참 있으니까 또 다시 겨우 들릴 정도의 낮은 소리만 들렸다.
 목발은 차를 마시려고 자리에 앉았다.
  "뭐, 그래, 우리들은 장터에 갔다 왔지."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기분좋게 놀다 왔지. 아이들도 무척 기분 좋아했지. 
이게 모두 하느님 덕택이야. 한데 말이야. 
딱 한 가지 좋지 않은 일이 있었어. 
대장간의 사슈카가 담배를 사고는 말이야, 
가게 주인한테 50코카이카 은화를 내주지 않았겠나. 
그런데 그50코카페이카짜리가 사전이었단 말이야." 
목발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낮은 소리로 말한다는 게 마치 목이 졸려 죽어가는 것 같은 
쉰 목소리가 되어버렸으므로, 모든 사람들에게 잘 들렸다. 
"그 50코페이카짜리가 말이야, 사전이라는 것이 발각된 거야. 
모두가 어디서 났느냐고 물으니까 말이야, 
사슈카 녀석이 말하기를 아니심 그리고리한테 받았다, 
요전에 결혼식에 갔을 때 받았다, 이렇게 말하는 거야... 
그래 경찰을 불러서 녀석을 넘겨버린 거야.. 
그러니 그리고리, 당신도 관련되지 않게 조심하는 것이 좋아. 
이상한 소문이라도 나면 곤란할 테니 말이야..."
  "할배요!"아까처럼 빈정대는 목소리가 문 밖에서 들려왓다
. "할배를 부르잖소!"  모두들 조용해졌다.
  "야아, 얘들아, 얘들아..." 
목발이 재빨리 중얼거리며 일어섰다. 
참을 수 없게 졸랐던 것이다. 
  "차랑 설탕이랑 고마워요. 이제 슬슬 잘 시간이군. 
내 몸은 이미 낡았어. 온몸의 사개가 모두 어긋나버렸으니. 하, 하, 하 !"
  그리고 돌아가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아무래도 나는 이제 슬슬 저 세상으로 떠날 때가 온 것 같아!"
그러고는 갑자기 흐느껴 울었다. 
  그리고리 노인은 마시던 차를 그대로 놓고 앉아서 갚은 생각에 잠겼다. 
그의표정으로 보아 집에서 이미 멀리 떨어진 거리를 걷고 있을 
목발의 발소리에 귀를 귀울이고 있는 것 같았다.
  "틀림없이 대장간의 사슈카가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인 거예요" 
악시냐가 그의 마음 속을 헤아리고 말했다. 
  그는 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작은 꾸러미를 들고 다시 나왔다. 
그가 꾸러미를 펴자 번쩍번쩍 빛나는 1루블짜리 새 은화가 여러 개 나왔다. 
그는 그 중의 하나를 집어들어 이빨로 깨물기도 하고 쟁반 위에 굴려보기도 했다. 
그리고 또 다른 것을 집어서 굴려보았다.  
  "역시 이 루블 은화도 모두 사전이야..." 
그는 악시냐의 얼굴을  보면서 아무리 해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 이 은화는 그.... 아니심이 그때 가지고 온 선물이야. 
얘, 아가, 너 이것을 가지고 가서 말이다..."  
그는 귓속말을 하면 그녀의 손에 은화 꾸러미를 들려주었다.
 "이걸 가지고 가서 말이야, 우물 속에 던져버려라... 
이런 돈은 보고 싶지도 않아! 조심해서, 이상한 소문이 나지 않게 해야한다.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주전자도 치우고 등불도 꺼라..."  
리파와 플라스코비야는 창고 안에 앉아서 
집 안의 등불이 하나씩 하나씩 꺼져가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다만 2층 바르바라의 방에만 파란색과 빨간색의 등불이 켜져 있었고, 
그곳만이 무척 평화롭고 여유 있는 청정하나 분위기에 싸여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플라스코비야는 자기 딸이 부잣집으로 시집온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아, 
이 집에  오면 매우 황송한 듯한 미소를 띠고 
언제나 문간에서 주저주저하고 있었다. 
그러면 그곳으로 차와 설탕 같은 것들을 내오는 것이었다. 
리파도 이 집에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남편이 도시로 돌아간 뒤부터는 침대에서 자지 않고 
부엌이나 창고 같은 데에서 자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