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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 (In the Ravlne) 11. - 안톤 체홉

Joyfule 2010. 4. 27. 01:20

 골짜기 (In the Ravlne) 11. -  안톤 체홉    
 
그리고 날마다 마룻바닥을 닦거나 빨래를 하면서, 
날품팔이 일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지냈다. 
오늘도 교회 미사에 참례하고 돌아온 두 사람은 
부엌에서 식모와 함께 차를  마신 다음 창고로 가서  
썰매와 벽 사이의 흙바닥에 드러누웠다. 
창고 안은 깜깜하고 마구의 냄새가 났다. 
집 주위의 등불이 꺼지고, 
이윽고 귀머거리 스테판이 가게를 닫는 소리가 들렸다. 
밀 베는 일꾼들이 안뜰로 가 각자 아무데나 
자리를 잡고 드러눕는 기척이 났다. 
저 건너 멀리 떨어져 있는 플뤼민 아우네 집에서는 
값비싼 아코디언을 타는 소리가 들려왔다. 
프라스코비아와 라파는 곧 잠들어버렸다.
두 사람이 무슨 발소리에 잠을 깨고 보니  밖은 이미 밝은 달밤이었다. 
창고문 앞에 악사냐가 두 팔에 침구를 안고 서 있었다. 
"여기가 서늘할지도 몰라..."그녀는 혼자말을 했다. 
그리고 창고 안으로 들어와  달빛을 온몸에 받으면서 문턱 바로옆에 누웠다.
그녀는 잠이 잘 안 오는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 
더위를 못이겨 입은 것을 거의 전부 벗어던진 채 괴로운 듯 한숨을 쉬었다. 
매혹적인 달빛 속에서 그녀는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자랑스럽고 생동감이 있어 보였는지! 
조금 있으니까 또 발소리가 들렸다. 
온몸이 새하얗게 보이는 그리고리 노인이 문 앞에 나타났다.
  "악시냐!" 그가 말했다.
 "너 여기 있니?"
  "왜요?" 그녀는 부아가 난 듯이 말했다.
  "아까 너한테 돈을 우물 속에 던져버리라고 일렀는데, 버렸니?"  
 "아니, 보물을 우물 속에 버리다니! 
그건 밀 베는 일꾼들에게 주었어요..." 
 "뭐,  뭐라구!" 노인은 기겁을 해서  말했다.
 "넌 정말 형편없이 닳아빠진 계집이구나...아아, 이거 큰일을 저질렀구나!"
그는 부지중에 손뼉을 딱 지고 나서 그대로 나가버렸다. 
걸어가면서도 뭐라고 자꾸만 중얼중얼하고 있었다. 
잠시 후에 악시냐는  일어나 앉아서 
부아가 끓어오르는 듯이 휴유 한숨을 쉬었다. 
그런 다음 침구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
  "어머니! 어머니는 어쩌자고 이런 집에 시집 보냈어요!"리파가 말했다. 
  "하지만 얘야, 여자는 시집을 가야만 되지 않니. 
우리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두 사람은 위안받을 길 없는 슬픈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그들은 저 높은 하늘에서 별이 빛나고 있는 
저 푸른 세계에서 누군가가 하계를 내려다보고 있으며, 
우쿨레에보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 세계에아무리 큰 죄악이 범람하고 있어도, 밤은 역시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하느님이 다스리시는 세상 역시 이 밤과 같이 고요하고 
아름다운 진리가 여전히 존재하며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이 지상에 살고 있는 모든 것들은 달빛이 밤과 융합되듯이, 
스스로 정의와 진리에 융합되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두 모녀는 다시 편안한 심정이 되어서 서로 몸을 기댄 채 깊은 잠 속에 빠져들었다. 
아니심이 사전을 만들어 사용한 죄로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은 벌써 오래 전의 일이었다. 
그뒤로 몇 달이 지나고 어느새 반년이 넘는 세월이 흘렸다. 
기나긴 겨울도 지나고 봄이 돌아왔다. 
그 무렵에는 집안 사람들이나 마을 사람들이
아니심이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에 익숙해져 있었다. 
밤중에 이 집 옆이나 가게 앞을 지나게 되면 
문득 아니심이 감옥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낼 정도였다. 
그리고 교회에서 종이 울리면 아무 까닭도 없이 아니심이 감옥 속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떠오르는게 고작이었다.
그리고리네 저택에는 그 어떤 그림자가 뒤덮고 있는 듯했다. 
집안은 어두워지고, 지붕은 녹이 슬고, 
초록색 칠을 한 가게의 육중한 철문은 빛이 바래고- 
귀머거리 스테판의  말투를 빌리면,  '바삭바삭해져'버렸다. 
그리고리 노인도  어쩐지 어두운 사람이 되어버린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는 오래 전부터 머리와 수염에 
가위를 대는 일을 그만 두고 자라는 대로 그냥 놓아두고 있었다. 
율동적인 동작으로 마차에 뛰어오르거나, 
거지에게 '하느님한테 받아라!'하고 호통치는 일도 없어졌다. 
모든 일에 근력이 쇠약해진 것이 역력히 드러났다. 
이젠 사람들도 예전같이 그를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고, 
마을의 순경은 그전처럼  뇌물을 받아먹으면서도 가게에 와서는 조서를 작성했다. 
노인은 주류밀매 혐의로 조사를 받기 위해서 세 번이나 시내로 소환되었다. 
증인이 출두하지 않아서 사건은 미적미적 연기되어 노인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노인은 이따금 아들을 면회하러 가기도 한고, 변호사를 사기도 하고, 
누구에겐가 탄원서를 내기도 하고, 교회에 성기를 기증하기도 했다. 
아니심이 갇혀 있는 교도소의 소장에게는
 '영혼은 절도를 안다'라는 금언을 
에나멜로 새긴 은제 컵받침에 긴 숟가락을 곁들여 선물했다.
  "내 일처럼 힘써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군요." 라고 바르바라는 말했다.
 "저어... 누구든 똑똑한 사람에게 부탁해서, 
세도 있는 장관님께 편지라도 내보면 어떨까요... 
하다 못해 보석이라도 해 주십사 하고 말예요! 
그 아이를 그렇게 고생시키서 어떻게 하나!"
그녀는 슬퍼하기 했으나, 
그래도 요즈음에는 약간 살이 찌고 피부새도 희어졌다. 
그리고 옛날과 다름없이 자기 방에 등불을 켜놓기도 하고, 
방 안 구석구석을 청결하게 치우기도 하고, 
손님에게 잼과 사과과자를 대접하기도 했다. 
귀머거리 스테판과 악시냐는 가게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새로운 사업-부초키노의 벽돌공장 사업을 계획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