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세계문학

골짜기 (In the Ravlne) 8. - 안톤 체홉

Joyfule 2010. 4. 23. 02:44

 골짜기 (In the Ravlne) 8. -  안톤 체홉    
 
그녀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어쩐지 애매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러다가 이내 얼굴을 떨기 시작했다. 
모두들 그녀가 가엾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아니심도 마차에 뛰어올라 허리에 손을 대고 의젓한 태도를 취했다. 
자기가 미남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차가 골자기를 빠져나가는 동안 
아니심은 계속 마을 쪽을 돌아다 보고 있었다. 
맑게 갠  따뜻한 날이었다. 
가축들은 이 해 들어 처음으로 들에 나와 있었고, 
그 가축들 주위에는 나들이 옷으로 곱게 단장한 
처녀들과 부인들이 거닐고 있었다. 
들에 나온 것이 기쁜지 누런 황소가 음매음매 울면서 
앞발로 땅을 파헤치고 있었다. 
위아래 곳곳에서 종다리의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심은 아름답게 흰 칠을 한 교회 - 그 교회는 최근에 하얗게 칠을 했다.-  
쪽을 자꾸 돌아다 보고, 
닷새 전에 자기가 거기서 하느님께 기도까지 했던 것을 생각해냈다. 
그는 또 초록색 지붕의 학교를 바라보거나 
그 옛날에 멱을 감고 낚시질하던 작은 시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즐거운 생각이 문득 가슴 밑바닥에서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는 바로 그 순간에,땅 위에 갑자기 벽이 솟아올라와 
자기가 가는 길을 막고, 자기를 과거 속에서만 사는 인간이 되게 해 준다면 
얼마나 졸을까 생각하는 것이었다.
정거장에 도착한 두 사람은 식당으로 들어가서 셰리 주를 한 잔씩 마셨다. 
노인이 돈을 치르려고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
  "제가 낼께요!" 아니심이 말했다.
  노인은 감동해서 그의  어깨를 툭 치고,
 '애가 바로 내 아들이오!' 하는 듯이 식당 주인 영감에게 눈짓을 했다.
 "아니심, 너는 집에서 장사일을  돌봐주었으면 좋겠다만..." 노인이 말했다.
 "넌 워낙 장사 솜씨가 좋으니까! 
그러면 내가 너를 머리에서 발끝까지 돈으로 싸줄 텐데."
  "그렇지만 아버지, 아무래도 그건 곤란해요."
  세리 주는 시큼하고 봉랍 냄새가 났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한 잔씩 더 마셨다.
  정거장에서 돌아왔을 때, 
노인은 처음에 자기 집 새 며느리를 전혀 몰라보았다. 
리파는 남편이 집에서 떠나자마자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갑자기 명랑해졌던 것이다. 
그녀는 낡은 스커트를 입고 소매를 어깨까지 걷어올리고, 
맨발로 현관의 계단을 닦으면서 
은방울을 굴리는 것 같은 높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걸레를 빤 물통을 들고 밖으로 나가서, 
그녀가 곧잘 짓는 어린애 같은 웃음을 띠고 태양을 우러러볼 때에는, 
그녀 역시 종다리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현관의 계단 앞을 지나가던 늙은 고용인이 머리를 끄덕이며 만족해 했다.
"정말이지, 당신네 며느리들은 하나같이 하느님께서 내려주셨나 봐. 
그리고리! 정말 색시들이 모두 보물 덩어리야!"
7월 8일 금요일, 
'목발'이란 별명이 붙은 엘리자로프와 
리파는 카잔스코예 마을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들은 카잔의 성모를 예배하기 위해 교회 미사에 참례하러 갔던 것이었다. 
그들의 훨씬 뒤에서는 리파의 어머니 플라스커비야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몸이 아픈데다 숨이 가빠서 자꾸만 뒤처지는 것이었다. 
바야흐로 해가 지려 하고 있었다.
  "그래!..." '목발' 노인은 리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놀랐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 ...그래서?"
  "저는요, 아저씨, 잼을 무척 좋아해요." 리파가 말했다. 
"혼자 방구석에 앉아 잼을 섞어서 차를 마셔요. 
그렇지 않으면 시어머니하고 마셔요. 
그러면 어머니는 뭔가 뜻 있는 이야기를 해주시지요. 
우리집에는 잼이 엄청나게 많이 ... 네 항아리나 있어요. '
자, 먹어요, 리파, 얼마든지'라고 말한다구요.
  "그래? .... 네 항아리씩이나!"
  "굉장한 살림이에요. 
휜빵과 함께 차를 마시고 쇠고기도 먹고 싶은 대로 양껏 먹을 수 있어요. 
잘 살긴 하지만, 전 어쩐지 무서워요, 
아저씨, 무서워서,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뭐가 그렇게 무섭지?"  
목발노인이 묻고는 플라스코비야가 얼마나 뒤처졌나 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맨 처음에는요, 결혼식 뒤에 아니심이 무서웠어요. 
뭐 야단치거나 하지 않는데도, 그저 그이가 옆에 오기만 하면 
전 온몸이 오싹해져서 뼛속까지 얼어붙는 것 같았어요. 
그래 저는 밤새도록 자지 않고 벌벌 떨면서 하느님께 기도했어요. 
그리고 요즈음에는 악시냐가 무서워요, 
아저씨. 그 사람도 특별히 어떻게 하는 건 아니예요. 
악시냐는 줄곧 웃고 있지만 때때로 창문 쪽을 바라볼 때가 있는데 
그럴 때 그 눈매가 얼마나 무서운지, 
마치 외양간에 있는 양처럼 초록색으로 번쩍번쩍 빛이 나요, 
플뤼민 아우네 사람들은 그분에게 이상한 짓을 권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당신 시아버지는 부초키노에 40헥타르의 땅이 있지'하고 말하지 않겠어요. 
'그곳에는 모래도 있고 물도 있으니까, 악슷시(악시냐의 애칭), 
거기에다 당신 돈으로 벽돌공장을 세워요. 
우리가 한몫 낄 테니까' 이렇게 말한단 말이에요. 
벽돌은 지금 1천 개에 20루블이나 하니까 이익이 많은 사업일테죠, 
어제 점심 때도 악시냐가 시아버님께 이렇게 말하지 않겠어요. 
'저는 부초키노에 벽돌 공장을 세워서 제 사업을 한 번 해보고 싶어요'라구요. 
그리고 방글 방글 웃는 거예요. 
그러자 시아버님은 싫은 얼굴을 하셨어요. 
틀림없이 악시냐의 말이 마음에 안 드신 것예요. '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뿔뿔이 헤어지면 안돼. 
모두 함께 살아야지'라고 시아버님이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그분은 눈을 부릅뜨면서 이를 갈지 않겠어요... 
튀김을 내왔는데 먹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말예요, 전 아무래도 알 수 없는 일인데, 
그분은 도대체 언제 자는지 몰라요!" 리파는 말을 계속했다. 
"그분은 30분쯤 잤나 싶으면 갑자기 발딱 일어나서 
그 근방 일대를 돌아다니며 살펴보는 거예요. 
농부들이 어디에 불이라도 지르지 않나, 
뭘 훔치러 오지나 않나 걱정스러운 거지요. 
전 그분과 함께 있는 것이 무서워요, 아저씨! 
그리고 플뤼민 아우네 집안 사람들은 
결혼식이 끝난 다음부터 밤잠도 자지 않고 재판하러 도시로 쏘다니고 있어요. 
그게 모두 악시냐 때문이라고 온 마을에 소문이 자자해요. 
세 형제 중에서 두 형제는 악시냐에게 
공장은 세워주마고 약속했는데. 막내가 성을 냈다나 봐요. 
이래저래  공장은 한 달이나 쉬어버렸어요. 
그 바람에 우리 프로홀 아저씨는 일자리를 잃고 
이 집 저 집으로 빵부스러기를 얻으러 돌아 다니는 형편이예요.
'아저씨, 들일을 나가시든지 산판에라도 가서 일하시면 어때요? 
그러고 다니시는 게 수치스럽지 않으세요?' 
라고 제가 말씀 드렸어요. 그랬더니 아저씨는 
'하지만 리퓌니카, 나는 농사일에서 손을 뗀 지가 오래되어서
 이젠 아무 일도 못해!...' 라고 말씀하시지 않겠어요."
두 사람은 싱싱한 당버들숲 앞에 멈추어 한숨을 돌리면서 
플라스코비야가 다라오기를 기다렸다. 
엘리자로프는 수년 동안 도급을 맡아 목수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때까지 말 한 필 장만하지 못해서 언제나 
빵과 양파를 담은 작은 자루를 짊어지고 이곳저곳을 걸어서 다녔다. 
그는 두 팔을 흔들며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걷기 때문에 
함께 나란히 걷기가 매우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