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세계문학

골짜기 (In the Ravlne) 12. - 안톤 체홉

Joyfule 2010. 4. 28. 16:42

 골짜기 (In the Ravlne) 12. -  안톤 체홉    

악시냐는 거의 매일같이 마차를 타고 그곳으로 갔다. 
그녀는 몸소 고삐를 쥐고,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호밀밭에서 밖을 엿보는 뱀같이 목을 빼고는 
수수께끼 같은 앳된 미소를 던지곤 했다. 
리파는 언제나 사순절전에 낳은 아기를 데리고 놀았다. 
가엾은 생각이 우러날 만큼 조그맣고 여위어빠진 아기였다. 
이 아기가 울기도 하고, 주위를 둘러보기도 하고, 
하나의 인간으로 취급받아 니키폴이라는 
이름까지 가지고 있는 것이 이상할 지경이었다. 
아기는 요람 속에서 자고 있었다. 
리파는 문 앞까지 걸어가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
  "안녕하세요, 니키폴님!"
  그러고는 허둥지둥 아기한테로 달려가서 키스했다. 
그리고 또 문 앞으로 가서 인사를 하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니키폴님!"
  그러면 갓난아기는 조그만 빨간 발을 동당거리면서, 
목수 에리자로프처럼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는 묘한 소리를 질렀다. 
마침내 재판날이 결정되었다. 
노인은 그 닷새쯤 전에  도시로 떠났다. 
그 뒤 증인으로 소환된 농부들이 마을에서 불려 갔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집에서 고용하고 있던 늙은이도 역시 소환되었다. 
재판은 목요일에 있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일요일이 자나도 노인은 돌아오지않았고 아무 소식도 없었다. 
화요일 저녁 때에 바르바라는 열어놓은 창가에 앉아서
어쩌면 영감님이 돌아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옆방에서는 리파가 아기와 놀고 있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아기를 어르며 정신없이 지껄이고 있었다. 
  "너는 금방 자랄 거야, 아주 크게 자라구말구! 
자라서 넌 농부가 될 거야. 
그러면 나랑 날품팔이 가자! 날품팔이 가자, 응!"
  "얘야," 바르바라는 기분이 언짢아 말했다. "
날품팔이를 가다니, 해괴한 소리도 다 하는구나. 
바보 같으니라구. 그애는 상인이 될 거라구..." 
 리파는 조그만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잠시 뒤에는 언제 그런 말을 들었는가 싶게 
또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너는 곧 자랄 거야. 아주 크게 자라구말구. 
너는 농부가 될 거야. 그러면 나랑 날품팔이 가자, 응!"
  "저런! 또 저런 소리를 하다니!"
  리파는 니키폴을 안고 문 앞에 서서 물었다.
  "어머님, 저는 어째서 이렇게도 애가 귀여울까요? 
어째서 이렇게도 가엾지?"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빛났다.
 "이 아이는 누구일까요? 어떤 인간일까요? 
마치 새털이나 빵부스러기 같이 가볍지만, 
저는 이 얘가 진짜 귀여워서 죽겠어요. 
이 애는 아직 아무것도 못하고 입도 떼지 못하지만, 
저는 이 애가 무엇을 원하는지 눈빛으로 척 알 수 있어요."  
바르바라는 문득 귀를 기울였다.
 저녁 기차가 정거장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영감님은 돌아왔을까? 
그녀는 이미 리파가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 의미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공포라기보다는 강한 호기심에서 시간 가는 것도 잊고 
그저 부들 부들 몸을 떨고 있었다. 
농부들을 가득 실은 짐마차가 덜커덩 소리를 내면서 바삐 지나가는 것이었다. 
도시로 갔던 증인들이 정거장에서 돌아온 것이었다. 
마차가 가게 앞을 지나칠 때, 이 집의 늙은 고용인이 뛰어내려서 안뜰로 들어왔다. 
그가 여러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묻는 말에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모든 재산과 권리를 박살내구요..." 그는 큰소리로 지껄였다. 
"시베리아로 보낸대요. 6년 유형이래요." 
가게 뒷문으로 악시냐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조금  전까지 석유를 팔고 있었던 모양으로 한쪽 손에 병을 들고 
한 쪽 손에는 깔때기를 든 채 입에는 은화 몇 닢을 물고 있었다.
  "아버님은요?" 그녀는 입을 오믈오믈하면서 물었다.
  "정거장에 계십니다."고용인이 대답하였다.
"이제 좀 있으면 어두워지니까, 어두워지면 돌아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아니심이 유형의 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이 온 집안에 퍼졌다. 
그러자 부엌에 있던 식모가 마치 초상이나 난 것처럼 
목을 놓아 울면서 넋두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런 때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니심님, 독수리처럼 훌륭하신 젊은 서방님. 
이제부터는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하나요, 
서방님이 버리고 가신 우리들은 말이에요, 아니심님..." 
개들이 깜짝 놀라서 짖어댔다. 
바르바라는 창가로 달려가서, 어쩔줄을 몰라하면서 
목청껏 소리를 질러 식모를 꾸짖었다.
  "그만 해. 스테파니다.그만 해! 우리를 괴롭히지 마라, 제발!" 
모두들 사모바르를 내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 모양이었다. 
라파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여전히 아기에게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다.
노인이 정거장에서 돌아왓을 때, 
식구들은 그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그는 귀가 인사를 마치고는 온 집안의 방이란 방은 죄다 돌아다녔다. 
저녁도 먹지 않았다.
  "힘써주는 사람이 없었군요..." 
바르바라는 두 사람만 남게 되자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누구 높은 살함에게 부탁해야 한다고 제가 말했잖아요... 
그때 제 말을 귀담아 듣지 않더니만... 하다 못해 탄원서라도 보냈더라면..."  
"여러 모로 힘썼어!" 노인은 말하면서 한 손을 저었다. 
"아니심이 판결을 받은 뒤에 나는 그 애를 변호해준 나으리네 집에 갔었지. 
그랬더니 '이제는 어쩔 수 없어요, 늦었어요'라고 말하더군. 
아니심 녀석도 역시 '늦었어요'하고 말했어. 
그래도 나는 재판소에서 나오는 길로 어느  변호사에게 줄을 대서 손을 써뒀어... 
앞으로 일주일후에 다시 나가봐야지. 어떻게 될 지도 모르니까." 
노인은 또 다시 입을 다문 채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녔다. 
그리고는 바르바라의 방으로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