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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 (In the Ravlne) 9. - 안톤 체홉

Joyfule 2010. 4. 24. 09:23

 골짜기 (In the Ravlne) 9. -  안톤 체홉    
 
숲으로 들어가는 어귀에 경계표가 하나 서 있었다. 
예리자로프는 그것이 든든한가 
어떤가 보려고 손으로 만져보았다. 
플라스커비야가 숨을 헐떡거리면서 다가왔다. 
주름살투성이에 항상 두려운 표정을 하고 있는 
그녀의 얼굴도 오늘만은 행복하게 빛났다. 
오늘은 세상의 다른 사람들처럼 교회에도 나갔고, 
교회에서 오는 길에는 장터에 들러서 
배를 넣은 크바스까지 마시지 않았던가! 
그녀에게 있어서 이런 것은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난생 처음으로 즐겁고 보람있게 산 듯한 생각이 들었다. 
잠시 쉰 다음에 세 사람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해가 막 지려는 참이어서, 
그 지는 햇빛이 숲 속에 비껴들어 나뭇가지들을 붉게 물들였다. 
수풀 앞쪽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계속 울려왔다. 
그들보다 훨씬 앞서서 걸어가고 있던 
우클레예보 마을 처녀들이 숲 속에서 쉬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버섯이라도 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야. 이 처녀들아!" 예리자도프가 소리쳤다. 
"야, 이쁜이들아!"  곧 이어 웃음소리가 그 말에 응수했다.
  "'목발'이 왔다.'목발'할아범!" 
그러자 메아리도 거기 따라서 웃었다. 
이윽고 수풀을 지나왔다. 
공장의 굴뚝 꼭대기가 보이기 시작하고, 종루의  십자가가 반짝 빛나 보였다.  
거기가 '장례식 때에 교회 집사가 케비어를 몽땅 먹어치운' 바로 그마을이었다. 
여기까지 오면 벌써 집에 다 온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머지는 다만 이 넓은 골짜기로 내려가기만 하면 되었다. 
맨발로 걷고 있던 리파와 플라스코비야는 신발을 신으려고 풀 위에 주저앉았다. 
도급 목수도 나란히 앉았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갯버들숲과흰 칠을 한 교회와 작은 시내가 있는 우클레예보는 
아름답고 평화롭운 마을로 보였다.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다면 돈을 아끼기 위해서 
마구 새까만 색으로 칠해놓은, 공장의 지붕  정도였다. 
건너편의 바탈진 곳에는 호밀밭이 보였다 
- 노적가리로 쌓아 올린 것과 다발로 묶어 놓은 것은 
마치 폭풍에 불려 흩어진 것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금방 베어 놓은 것은 가지런히 줄을 지어 누워 있었다. 
귀리도 완전히 여물어서 진주조개같이 햇빛에 반짝거리고 있었다. 
추수는 이제  한창이었다. 오늘은 축제 일이지만, 
내일 토요일에는 호밀을 거두어들이고 건초를 운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다음 날은 또 휴일이다. 
매일같이 먼 곳에서 우뢰가 우르릉 우르릉 울렸다. 
무더워서 금방이라도 비가 한바탕 쏟아질 것 같았다. 
모두들 들판을 바라보며 어떻게 해서든지 
시기를 놓치지 않고 추수를 마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즐겁고 들뜬 기분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어쩐지 불안한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요새는 보리 베는  인부들 품삯이 비싸지요." 
플라스코비야가 말했다.
" 하루 1루블 40코페이카나 한데요!'
  카잔스코에의 장터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이 계속 줄을 이었다. 
부인네들, 차양 없는 새 모자를 쓴 직공들, 거지들, 아이들... 
짐마차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간 다음에 
장에서 팔리지 않고 돌아오는 말이 달려왔다. 
마치 자기가 팔리지 않은 것을 기뻐하는 것 같았다. 
그런가 하면 심술이 난 암소가 뿔을 잡힌 채로 끌려왔다. 
그뒤를 또 짐마차가 따랐다. 
술취한 농부들이 그 위에 앉아 다리를 흔들거리고 있었다. 
어떤 노파가 커다란 모자를 쓰고 긴 장화를 신은 
사내아이를 데리고 터덜터덜 걸어왔다. 
아이는 더위와 무릎을 급힐 수 없는 무거운 장화 때문에 지쳐 보였는데, 
그래도 장난감 나팔을 입에서 떼지 않고 열심히 그것을 불고 있었다. 
노파와 아이가 언덕길을 다 내려가서 
한길 쪽으로 돌아가 버린 뒤에도 나팔 소리는 여전히 들려오고 있었다.
  "이곳 공장 주인들은 모두 나쁜 녀석들뿐이어서 말이야..."  
예리자로프가 말했다. 
"한심한 일이라구! 요전에도 코스추코프 녀석이
 '차양을 다는 데에 송판을 너무 많이 썼어'하고 
성을 내고 야단이어서 내가 이렇게 말해주었지. 
'천만의 말씀! 필요한 만큼만 썼을 뿐입니다. 
코스추코프씨. 그럼 송판으로 죽이라도 끓여 먹은 줄 아시오? 
그랬더니 그 친구가 이러잖아. 
'나한테 그따위 소리를 할 수 있어? 멍청이! 얼간이! 
주제를 알아야지! 자네를 청부업자로 만들어준 게 바로 나란 말이야!' 
이렇게 악을 쓰더란 말이야. 
그래서 내가 '이거, 생색 좀 작작 내시라구요. 
청부업자가 되기 전에도 지금처럼 차 한 잔쯤은 마셨단 말이에여'하며 대들었더니
 '자네들은 모두 사기꾼들이야'어쩌고 하면서 주둥이를 놀리잖아... 
나는 잠자코 있었지만 속으로 '
흥 이 세상에서는 우리들이 사기꾼으로 몰릴지라도, 
저 세상에 가보면 바로 너희들이 사기꾼들이야, 하하! 하고 웃어주었지.
 그러나 그 이튿날이 되니 녀석이 얌전해져서 말이야, 
이따위 소리를 하지 않겠어. '
에리자포르, 내가 그런 소리를 했다고 너무 회내지 말게. 
설사 내가 좀 심한 소리를 했다 해도 그건 당연한 거야.  
원래 난 일 상인이고 자네보다는 신분이 위니까 말이야... 
그러니 자넨 내게 말대꾸하면 안되는 거야' 어쩌고  하면 말이야. 
그래서 나는 '그야 당신은 일등상인이고 나는 목수지요. 
그건 틀림없어요. 그러나 말이오. 요셉 성자님도 목수였다고요. 
우리들은 하느님의 가르침에 따라 진실한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당신이 꼭 위라고 생각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해도 좋아요, 
코스추고프씨'라고 말해주었지.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나는 바로 생각해보았어. 
일등 상인하고 목수하고 도대체 누가 더 높을까를 말이야. 
그러나 물론 목수가 위였지. 그렇지 않다면 이야기가 이상해지지 않겠어. 
그렇지, 애들아!" 목발은 잠시 생각해본 뒤에 덧붙였다.
 "그렇지 얘들아. 일하는 사람이나 고통을 참는 사람 쪽이 언제나 위에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