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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 (In the Ravlne) 13. - 안톤 체홉

Joyfule 2010. 4. 30. 09:36

 골짜기 (In the Ravlne) 13. -  안톤 체홉    
 
"아마 내가 무슨 병에 걸린 것 같아. 
머리 속이 이렇게 ... 안개가 낀 것 같단 말이야. 
도무지 생각을 정리할 수 없으니."
그는 리파에게 들리지 않도록 문을 꼭 닫고는
 조그만 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 나 말이야, 실은 그 돈 일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구. 
당신도 생각나지? 아니심이 결혼식 전에 
새 루블짜리 은화와 50코페이카짜리 은화를 가져온 적이 있었지. 
나는 그때 한 꾸러미는 치워두었지만., 
나머지는 내 돈하고 막 섞어버렸지... 
이건 옛날 이야긴데, 
우리 드리트리 피라티치 숙부님이 아직 살아 계실 때 
숙부님은 항상 모스크바나 크림 등지로 물건을 사러 다니셨지. 
숙부님한테 아내가 있었는데, 이 아내라는 게 
영감님이 물건을 사러 떠나서 집을 비울 때면 딴 사내와 놀아났다구. 
아이가 여섯이나 되었지. 그런데  말이야, 
숙부님은 한 잔 들어 가기만 하면 으레
'난 도무지 분간이 안 돼, 
어느 게 내 자식이고 어느 게 남의 자식인지 말이야." 
어쩌고 하면서 웃으셨지. 느긋한 성질이었으니까. 
결국 지금의  나도 그때의 그 숙부님처럼 내 돈 주에 어느 게 진짜고 
어느 게 가짠지 분간하 수 없게 되었단 말이야. 
이것이나 저것이나 모두 가짜로만 보여." 
 "어머, 당찮은 말씀. 하느님이 살펴주실 거에요!"
  "정거장에서 차표를 사면서 3루블을 치렀는데. 
그게 아무거나 가짜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슴이 울렁울렁했어. 정말 병인가 봐."
  "그야 그렇겠지만 만사를 하느님께 맡기세요... 저어, 저...."
그녀는 말하면서 머리를 저었다.
 "하지만 이 점만은 염두에 두셔야 해요, 네, 여보...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당신도 이제 나이가 나이니까요,
 만일 당신이 돌아가신다면 모두들 저 손자에게 지독한 짓을 할지 몰라요. 
모두들 저 니키폴에게 얼마나 가혹하게 대할 것이나 생각하면,
 나는 걱정이 되어 죽겠어요! 
저 애는 아비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고, 
어미 역시 나이가 어린데다 우둔하고 보니... 
당신은 저거을 위해서, 저 애를 위해 하다 못해 토지라도, 
저 부추키노라도 물려주면 어때요, 
네, 여보! 정말 착한 앤데, 가없어요! 
내일이라도 나가서 서류를 꾸며달라고 하세요. 빠를수록 좋아요."
  "내가 손자 녀석 일을 잊고  있었군.." 그리고리가 말했다.
 "잠깐  얼굴을 보고 와야지. 그럼 뭐냐. 그 애는 잘 있단 말이지. 
좋아, 좋아, 훌륭히 키워주마. 하느님이 도와 주실 테니까 말이야!"
  그는 문을 열고 손가락을 까딱거려서 리파를 불렀다. 
리파는 갓난아기를 안고 곁으로 다가왔다. 
  " 리퓌니카, 너 뭐든지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말래라, 
뭐든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어. 우리는 아무것도 아끼지 않을 테니까. 
네가 잘 있어주기만 하면 되니까... " 
그렇게 말하고 그는 갓난아기를 보면서 성호를 그었다. 
"그리고 내 손자 녀석을 소중히 돌봐줘야 한다. 
자식은 없어지고 손자만 남았으니." 
눈물이 노인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흐느껴 울면서 그 자리를 떠났다. 
이내 그는 깊이 잠들었다. 
그때까지 1주일 동안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던 것이다.
노인은 얼마 동안 도시로 나갔다가 돌아왔다. 
악시냐는 그가 유언장을 작성하려고 공증인하테 갔었다는 것, 
그녀가 벽돌공장을 세우고 있는 저 부초키노가 
손자 니키폴의 것이 되었다는 것을 누구한테 선지 들었다. 
그녀가 이 말을 들은 것은 아침이었는데. 
그때 노인과 바르바라는 바깥 계단 옆의 
자작나무 아래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악시냐는 한길과 안뜰로 난 가게문을 닫아 건 다음, 
자기가 맡아 가지고 있던 열쇠를 전부 챙겨서 
노인의 발 앞에다 철커덕 집어던졌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당신들을 위해서 일하지 않을 테니까!" 
그녀는 큰소리로 외치고는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이건 뭐, 나는 이 집  며느리가 아니라 하녀나 마찬가지 아녜요? 
마을 사람들이 다 비웃고 있어요. 
'봐라 그리고리네 집에는 좋은 하녀를 두지 않았냐?'하고  말예요. 
나는 이 집에 종살이 하러 온 게 아녜요! 거지도 하녀도  아니예요. 
내게는 아버지도 있고 어머니도 있어요." 
그녀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눈물에 젖은  채, 
분하고 원망스런 눈을 치뜨고 노인을 정면에서 노려보았다. 
목청껏 악을 써서 얼굴과 목에는 벌겋게 핏대가 올라 있었다.
  "난 이 이상 여기서 혹사당하는 것은 사양하겠다구요!" 
그녀는 말을 이었다. 
"이제 난 완전히 지쳐버렸어! 악착스럽게 일하고, 
하루종일 가게를 지키고, 밤에는 밤대로 보드카를 사러뛰어 다니고... 
그런 걸 모두 나한테 시켜놓고서 토지는 
저 유형수의 여편네와 그 새끼한테 줘버리다니! 
저년은 이 집 안주인이고 마님이고, 나는 그럼 저년의 종이군! 
흥 뭐든지 저년에게, 저 유형수의 여편네에게 줘버리라고, 
난 우리집으로 돌아갈 테니까! 나 대신 다른 바보년을 고용하면 되겠지. 
이, 인간 같지 않은 것들 같으니!"
노인은 지금까지 한 번도 아이들에게 욕을 하거나  벌을 준 적이 없었다. 
또 식구들도 자기한테 폭언을 하거나 
무례한 태도를 취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너무 놀라고 기가 질려서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장롱 뒤에 숨어버렸다. 
한편 바르바라는 너무 놀라서 일어서지도 못하고, 
벌이라도 쫓듯 두 손을 휘휘 내저을 뿐이었다.
  "세상에, 이게 무슨 짓이야?" 
그녀는 공포에 질려서 중얼거렸다. 
"애가 왜 이리 악을 쓰나? 그만, 그만... 남이 듣지 않니! 
좀 조용히 ... 저런, 좀 조용히 하라니까!"
  "부초키노의 땅을 유형수 여편네에게 줘버리다니..." 
악시냐는 계속 악을 썼다. 
"이왕에 이렇게 되었으니 뭐든지 저년에게 다 주지 그래. 
나는 아무 것도 필요없다구, 다들 꺼져버리란 말이야! 
당신네들은 모두 한 구멍 속의 너구리들이야! 
난 이제 꼴도 보기 싫다구. 이젠 딱 질색이야. 
당신네들은 통행인과 여행객들의 돈을 알겨먹지 않았어! 
이건 강도나 다를 바 없어. 
늙은이건 젊은이건 할 것 없이 모조리 훔쳐먹었잖아... 
허가도 없이 보드카를 판 건 누구야? 가짜 돈을 쓴 건 누구야? 
궤짝 속에 가짜 돈을 가득 쌓아 놓고서 말이지.. 
그러고는 이제 와서 나를 내쫓아내려고 한단 말이지!"
열어젖혀 놓은 현관문 주위에 벌써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모두 안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본다고 대순가!" 악시냐는 악을 썼다.
"나는 당신네들을 망신 좀 시켜야겠어! 
오래지 않아 부끄러워서 낯을 못 들고 다니게 될 거야! 
내 발 앞에 엎드려서 용서를 빌게 될 거야! 이봐요, 
스테판!" 그녀는 귀머거리 남편에게 소리쳤다. 
"빨리 집으로 갑시다. 나랑 우리 부모님한테로 가요. 
이런 죄인들과는 같이 살 수 없으니까요! 자, 채비를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