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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 (In the Ravlne) 14. - 안톤 체홉

Joyfule 2010. 5. 1. 10:31

 골짜기 (In the Ravlne) 14. -  안톤 체홉    
 
안뜰에는 빨랫줄이 있고 거기에 빨래가 널려 있었다. 
그녀는 채 마르지도 않은 자기의 스커트와 블라우스를 
줄에서 잡아채어 귀머거리 남편의 팔에 획획 던졌다. 
화가 치밀 대로 치민 그녀는 안뜰에 쳐진 빨랫줄마다 
뛰어다니면서 옷가지를 한쪽에서부터 잡아채어 
자기 것이 아닌 것은 땅바닥에 내팽개치고 발로 짓밟았다. 
  "아아, 저 애를 말려 주세요!' 바르바라는 신음하듯 말했다.
" 도대체 어찌 된 일이야. 저 애에게 부초키노를 줘버리세요. 
제발 부탁이니 줘버려요!"  
"야아, 별 여자 다 보겠네!" 문간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저게 여자냐, 저 행패 좀 봐 .... 대단하군!"
악시냐는 부엌으로 달려갔다. 
마침 리파 혼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식모는 빨래를 헹구러 냇가로 나가고 없었다. 
조리용  난로 옆에 있는 빨래통과 가마솥에서는 
무럭무럭 김이 오르고 있어서 부엌 안은 자욱한 게 숨이 콱콱 막혔다. 
마룻바닥 위에는 아직 빨지 않은 빨랫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리고 니키폴은 굴러 떨어져도 다치지 않도록 그 바로 옆 의자에 뉘어진 채, 
조그만 빨간 발을 버둥거리고 있었다. 
악시냐가 들어갔을 때. 
리파는 마침 악시냐의 속옷을 빨랫감 더미에서 집어내어 통 속에 담고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끓는 물이 든 커다란 바가지로 손을 뻗치려던 참이었다. 
  "이리 줘!" 미워 죽겠다는 눈초리로 리파를 노려보면서  
악시냐는 통 속에서 자기의 속옷을 끄집어냈다. 
"내 속옷에 손을 대다니, 주제넘은 짓은 그만둬! 
너는 유형수의 아내잖아. 조금쯤은 제 주제를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리파는 말도 못할 만큼 놀랐다. 
무슨 영문인지는 몰랐으나, 문득 악시냐가 갓난아기를 보는 눈빛을 깨닫자. 
갑자기 그 뜻을 알아차리고 온몸이 저려오는 것이었다. 
  "내 땅을 빼앗은 별로 이렇게 해주마!"
이렇게 말하며, 악사냐는 끊는 물이 담긴 바가지를 들어서 니키폴에게 끼얹어버렸다. 
이어서 우클레에보 사람들이 여태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무서운 비명이 들렸다. 
리파같이 몸집이 자고 가냘픈 여자가 
그런 비명을 지를 수 있으리라고는 쉽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안뜰이 온통 조용해졌다. 
악시냐는 여느 때와 같은 앳된 미소를 띠고서 말없이 집안으로 들어갔다... 
귀머거리 스테판은 빨래를 두 팔에 안은 채 안뜰을 서성거리다가 
이윽고 말없이 그것을 다시 줄에 느릿느릿 널기 시작했다. 
식모가 냇가에서 돌아올 때까지. 
부엌으로 들어가서 그안의 형편을 살펴보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니키폴은 자치회에서 경영하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그날 저녁 때 쯤 해서 결국 죽고 말았다. 
리파는 마차라 데리러 오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죽은 갓난 아기를 조그만 담요에 싸안고 집으로 향했다.  
최근에 세운, 큰 창문이 나 있는 병원은 언덕 위에 우뚝 솟아 있었다. 
건물 전체가 저녁놀에 붉게 물들어서 마치 그 내부에서 불타오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언덕 아래에는 자그마한 마을이 있었다. 
리파는 비탈길을 내려와서 마을 입구에 있는 작은 연못가에 앉았다. 
어떤 여자가 말에게 물을 먹이려는데. 말은 물 을 먹으려들지 않았다. 
 "뭐가 더 필요해서 그래?" 
여자가 망설이듯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가 필요해서 그래?"
  빨간 셔츠를 입은 사내아이가 물가에 앉아서 아버지의 장화를 씻고 있었다. 
그밖에는 언덕 위에도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먹고 싶지 않은 게로구나..." 
리파가 말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윽고 그 여자도 가고 장화를 든 아이도 가버렸다. 
주위에는 인기척이라고는 없었다. 
태양은 잠 자리에 들어가서 붉은 보라빛 비단 잠옷을 입고 있었다. 
하늘에서 비껴 흐르고 있는 붉은빛 혹은 보랏빛의 가느다란 구름은 
태양이 자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아주 먼데서 알락해오라기가 마치 
외양간에 갇힌 암소처럼 애련하고 공허한 소리로 울고 있었다. 
이 신비로운 새의 울음소리는 해마다 봄이면 들려왔으나, 
그것이 어떤 새이며 어디 살고 잇는지는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언덕 위의 병원에서도 연못가의 숲에서도  마을 편에서도 주위의 들판에서도 
나이팅게일의 울음소리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뻐꾸기는 누구의 나이를 세다가 자꾸만 틀려서 처음부터 다 시 셈을 시작하고 있었다. 
연못 속에서는 개구리들이 성난 목소리로 죽어라고 서로 소리지르며 울어대고 있었다. 
그 소리는 마치 '네놈도 그렇지! 네 놈도 그렇지!'라고 지껄이는 것 같았다. 
지독히 시끄러 운 밤이었다. 
이들 온갖 생물들은 이 봄밤에 사람 들을, 
성난 소리로 울어대는 개구리들까지도, 
삶이란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것이니 
그 1분 1초라도 아껴서 소중히 여기고 즐기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늘에는 은빛 반달이  빛나고 수많은 별들이 총총이 떠 있었다. 
리파는 얼마 나 오래 연못가에 앉아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일어나서 걷기 시작했을 때에는 
마을은 이미 잠이 들어 불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집까지의 거리는 12킬로미터쯤 되었는데, 
걸을 힘도 없고 어떻게 걸어갈까 생각해볼 기력조차 없었다. 
달은 앞 쪽에서 비추다 점점 오른쪽으로 기울어졌다. 
아까 울던 그 뻐꾸기가 아주 쉰 소리로, 조롱이라도 하듯이
 '저런 힘을 내라니까, 길을 잃는다 구!'하고 외쳤다. 
리파는 걸음 을 재촉했다. 
언제 그랬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 의 머리에서 프라토크가 벗겨져 버리고 없었다. 
그녀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자기 아이의 영혼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자기 뒤에서 따라오는 것일까, 
아니면 저 높은 별 근처를 날아다니면서 
이미 엄마 생 각 따위는 하지도 않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이런 밤에 들판 한가운데서 자기가 노래조차 부를 수 없이 우울할 때 
새들의 노랫 소리를 듣거나, 자기가 즐겁지 못할 때 즐거운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아아, 이 얼마나 서글픈 일이란 말인가! 
이거나 겨울이건, 사람이 살아있거나 죽었거나, 
그런 것들하고는 아무 상관없이, 
혼자서 쓸쓸히 하늘에서 하계를 내려다보고 있는 달과 단 둘이 있다니, 
아아, 이 얼마나 서글픈 일이란 말인가... 
마음에 슬픔을 안고 혼자 외토리로 떨어져 있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일이랴. 
이럴 때, 하다 못해 어머니 플라스 코비야라도 함께 있어주었으면! 
목발할아버지라도, 식모라도, 농부라도, 
아니 그 누구라도 좋으니 함께 있어주었으면!
 '부우'하고 알락해오라기가 울었다. 
'부우' 갑자기 사람의 말소리가 뚜렷이 들려왔다.
  "짐마차에 말을 매게, 바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