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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 (In the Ravlne) 15. - 안톤 체홉

Joyfule 2010. 5. 3. 10:17

 골짜기 (In the Ravlne) 15. -  안톤 체홉    
 
바로 앞 길가에서 모닥불이 타고 있었다. 
말이 풀을 뜯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어둠 속에서 두 대의 짐마차가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대는 통을 싣고 있었고, 
또 한 대의 작은 마차는 무슨 자루를 싣고 있었다. 
그리고 두 남자 의 모습도 보였다. 
한 사람은 짐마차에 말을 매려고 말을 끌어오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두손을 뒷짐진 채 
모닥불 옆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짐마차 옆에서 개가 짖었다. 
그러자  말을 끌고 오던 남자가 멈춰 서면서 말했다. 
  "누가 이리로 걸어오는 것 같은데."
  "샤알리크, 조용히 해" 또 한 사람이 개에게 소리쳤다.
  그 목소리는 노인이 목소리였다. 
  리파는 멈춰 서서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노인이 리파에게로 다가왔다. 
  "안녕!"
  "할아버지, 그 개 물지 않아요?"
  "괜찮소. 지나가요, 물지 않을 테니까."
  "저, 병원에서 오는 길입니다." 
리파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말을 이었다.
 "아기가 병원에서 죽었어요. 
지금 이렇게 안고 집으로 가는 길이에요.' 
노인은 그 소리를 듣고 속이 좋지 않은 듯, 
가까스로 옆으로 비켜서면서 급히 말했다. 
  "너무 슬퍼하지 마시오. 새댁. 다 하느님의 뜻이니까. 
여보게, 뭘 꾸물거리고 있나!"하고 동행을 보고 소리쳤다
. "빨리 해!"
  "영감님, 말 멍에가 없어요." 젊은이가 말했다.
 "아무래도 안 보여요."  
" 이런 멍청이를 보았나!"
  노인은 불이 붙은 숯덩이 하나를 집어들고 후후 불었다. 
그의 눈과 코 언저리 가 환히 밝아졌다. 
이윽고 멍에를 찾아내자, 불을 들고 
리파 옆으로 다가와서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동정과 친절의 빛이 나타나 있었다. 
  "새댁이 애 엄마요? 
어느 엄마든지 모두 자식 때문에 슬픔을 겪게 마련이지."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한숨을 쉬고 머리를 저었다. 
바빌라가 불에다 무엇인가를 던져 넣고 짓밟았다. 
그러자 갑자기 주위가 캄캄해졌다. 
환영은 사라지고, 다시 아까처럼 
들판과 별과서로 잠을 방해하는 소란한 새소리만이 남았다. 
모닥불 이 타던 그 자리에서 휘눈썹뜸부기가 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1분쯤 지나자, 다시 짐마차와 노인과 
후리후리한 바빌라의 모습이 나타났다. 
짐마차가 삐걱삐걱 소리를 내면서 길 위로 나왔다. 
  "당신들은 성자님들이세요?" 리파가 노인에게 물었다.
  "아니, 우리는 필사노보 사람이야."
  "아까 할아버지가 저를 보셨을 때, 
전 어쩐지 가슴이 확 틔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젊은 분도 마음이 착하실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전 틀림없이 성자님들이라고 생각했어요."
  "먼데까지 가나?"
  "우클레예보까지요."
  "그럼 여기 타요, 크지멘키까지 태워다 줄 테니, 
거기서부터 새댁은 똑바로 가면 되고, 우리는 왼쪽으로 돌아서 가고."
바빌라는 통을 실은 마차에 타고, 노인과 리파는 다른 마차에 올랐다. 
바빌라가 탄 마차가 앞장 서서 느릿느릿 출발했다. 
  "이 애는 하루종일 고통을 겪었어요.:"리파가 말했다. 
"조그만 눈으로 저를 쳐 다보면서 아무 말도 안했어요.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거예요. 
아아, 예수님, 마리아님! 
저는 슬퍼서 내내 방바닥에 쓰러져 있기만  했어요. 
아무리 해도 이 애 머리맡에 서 있을 수가 없었어요. 네, 할아버지, 
이렇게 조그만 애가 죽기 전에 왜 그런 고통을 겪어야만 하나요? 
어른들이라면 남녀 불문하고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고통을 겪는다지만, 
이런 죄 없는 애는 무엇 때문에 그런 고통을 겪나요? 네, 왜 그럴까요?"
  "그걸 누가 아나!"  노인은 대답했다. 
그 뒤로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30분쯤 타고 갔다. 
"세상만사  그 이유를 다 알 수야 없지... 
왜라든가 어째서라든가 하는 그 이유를 말이야." 
노인이 갑자기 말문을 열었다.
 "새는 날개가 네 개 아니고 두 개만 붙어 있는데, 
이건 두 개만으로도 날 수 있으니까 그런 거지. 
마찬가지로 인간도 만사를 전부가 아니고 
절반이나 4분의 1정도밖에는 알 수 없게 되어 있는 거야. 
그래도 살아가는 데 꼭 알고 있어야 할 것들은 다들 잘 알고 있지." 
"할아버지, 전 역시 걸어가는 게 편하겠어요. 
이렇게 타고 있으니 어쩐지 가슴 이 두근두근해서." 
"괜찮아 걱정 말아요. 지금 새삼스럽게 내릴 건 없어요." 
노인은 하품을 하고 나서 가슴에다 성호를 그었다.
  "걱정 말아요.." 그는 되풀이했다.
 "새댁의 슬픔 같은 건 대단치 않아요. 
사람의 일생은 기니까...  앞으로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을 거야.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구. 
우리를 낳아준 러시아는 무척 큰 나라니까!" 
그는 이렇게 말하며 길 양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이 러시아 안에서 안 가본 데가 없이 다 돌아다녔지, 
그리고 여러 가지 일도 당해봤지. 
그러니 난 거짓말은 안한다구.
 새댁.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어. 
나는 옛날에 마을에서 공무로 시베리아에 간 적도 있어. 
또 아무르에도 갔고, 알타이에도 갔었지. 
시베리아에서는 농사를 짓고 살기 도 했었어. 한데 말이야, 
그러다가 어머니인 러시아가 그리워져서 고향으로 돌아오고 말았지. 
나는 러시아로 돌아올 때에도 걸어서 왔어. 
여윌 대로 여윈 나는 온 몸에 누더기를 걸친 채 
맨발로 추위에 떨면서 빵 껍질을 씹고 있었지. 
그때 그 나룻배에는 여행을 하고 있던 어떤 나리가 타고 있었는데...  
벌써 돌아가셨다면 부디 하느님의 가호가 있으시기를..  
그 나리가 가엾다는 듯이 나를 보더니 눈물을 흘리면서 말이야.
'자네의 빵은 검고, 자네의 세월도  검구나.....'라고 하셨지. 
마을에 도착했을 때에는 흔한 말로 빈털터리가 되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였지. 
옛날에는 여편네도 있었는데. 시베리아에 남아 있다가 그곳 흙이 되어버렸지. 
그래서 지금은 날품팔이 농군으로 살고 있지만, 
그뒤로 새댁, 나쁜 일도 있었고 좋은 일도 있었다구. 
그래선지 죽고 싶다는 생각은 안들어. 
앞으로도 20년쯤은 더 살 고 싶다고 생각하지. 
결국은 좋은 일 쪽이 더 많았다는거야. 
어머니인 러시아는 크니까  말이야!" 
이렇게 말하며 그는 또 길의 양옆을 둘러보거나 뒤를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