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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 (In the Ravlne) 16. - 안톤 체홉

Joyfule 2010. 5. 4. 01:25

 골짜기 (In the Ravlne) 16. -  안톤 체홉    
 
  "할아버지." 리파가 물었다.  
"사람이 죽으면 그 혼백이 며칠쯤이나 이 하계에서 방황하나요?"
  "그런 걸 누가 알겠어! 
어디 바빌라에게 물어볼까... 녀석은 학교를 다녔지. 
요즈음엔 학교에서 뭐든지 가르치니까. 여봐. 바빌라!" 노인이 말했다.
  "왜요!"
  "바빌라, 사람이 죽으면 혼백이 며칠이나 이 하계에서 있게 되나?" 
 바빌라는 잠시 말을 세우고 나더니 대답했다.
  "9일 동안이지요. 
우리 카릴라 아저씨가 죽었을 때에는 
혼백이 13일 동안이나 집안에서 살았었지요."
  "어떻게 자네는 그걸 알았지?"
  "어떻게라니요, 13일 동안 난로 안에서 똑딱똑딱 소리가 났는데요." 
"그래, 좋아 좋아, 자, 가자." 하고 노인은 말했지만 
그가 한 말을 조금도 믿지 않는 기색이었다.
크지멘키 근처에서 마차는 큰길 쪽으로 꺾어들었다. 
리파는 거기서부터 걸어서 갔다. 
벌써 동틀 무렵이었다. 
그녀가 골짜기로 내려가니 우클레예보의 집들과 교회는 안개에 싸여 있었다. 
공기는 차갑고 아까 울던 뻐꾸기가 아직도 울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리파가 집에 도착했을 때 가축들은 아직 밖에 나와 있지 않았다. 
모두들 자고 있었다. 
그녀는 현관 앞 계단 위에 앉아서 그대로 기다렸다. 
맨 처음에 나온 것은 노인이었다. 
그는 리파를 힐끗 쳐다보고 나서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금방 알아차렸다. 
그리고 한참 동안 말한 마디 없이 입맛만 쩝쩝 다셨다. 
  "아아, 리파."그가 말했다.
"너는 내 손자를 끝내 지키지 못했구나..." 
이윽고 사람들이 바르바라를 깨웠다. 
그녀는 두 손을 깍지끼어 쥐어짜면서 울었다. 
그리고 곧바로 죽은 아기의 뒤치다꺼리에 들어갔다.  
  "정말 착한 애였는데..."  그녀가 말했다. 
"외동아들을, 이걸 말이야, 끝내 지키지 못하다니, 바보야..."
그날은 아침 저녁으로 신공을 올렸다. 
장례는 이튿날 거행되었다. 
장례식이 끝 난 뒤, 조객들과 성직자들은 마치 
오랫동안 굶었던 것처럼 배불리 음식을 먹었다. 
리파는 음식 시중을 들었다. 
한 신부가 소금에 절인 버섯을 포크에 찔러 높이 쳐들면서 그녀에게 말을 했다. 
"아이의 일로 너무 슬퍼하지 마시오. 
그런 애는 모두 천국에 간답니다." 
손님들이 모두 돌아가 버리자, 리파는 니키폴이 이미 이 세상에 없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비로소 절실히 가슴에 울려와 서 소리내어 울었다. 
그녀 는 어느 방으로 가서 울어야 할지 몰랐다. 
왜냐하면 아 이가 죽은 마당에 이 집안에는 자기가 설자리가 없다는 것, 
자기는 이 집에서 이제 필요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역시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어머, 그런 데서 뭘 짖어대고 있지?"  
악시냐가 문 앞에 얼굴을 내밀고 소리쳤다. 
장례식이라는데 새 옷을 입고, 얼굴에는 분을 바르고 있었다. 
"뚝 그치지 못 해?" 
리파는 울음을 그치려 했지만 암만 해도 그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큰소리로 흐느껴 울었다. 
  "내 말 안 들리니?"  악시냐가 소리쳤다. 
그리고 성이 나서 발을 탕탕 굴렀다.  
  "누구한데 말하고 있는 줄 알아? 
자, 나가, 두 번 다시 여기 오지 마라. 
유형수의 여편네야! 안 나갈래?"
  "얘야, 얘야,  얘야...." 노인이 당황해서 말했다. 
"악시냐, 그렇게 소리치는 게 아니다, 
얘야... 우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아이를 잃었잖아..." 
"무리가 아니지...'라..." 
악시냐는 노인의 흉내를 냈다. 
"오늘 밤만은  집에서 재 워도 좋지만, 
내일이면 저 여자를 싹 쫓아낼 거예요! 
'무리가 아니지'라니!..." 
그녀는 다시 한 번 흉내를 내고는 깔깔 웃으며 가게 쪽으로 가버렸다. 
가게의 지붕과 문에 새로 칠을 하고 나니 마치 새 집처럼 산뜻했다. 
창가에는 예전과 같이 제라늄이 즐거운 듯이 피어 있었다. 
그리고 3년전 그리고리네 집안과 
안 뜰에서 일어났던 사건은 이제 거의 잊혀져 가고 있었다.
그때나 마찬가지로 아직도 그리고리 노인이 이 집의 주인이기는 했지만, 
사실상 실권은 모조리 악시냐의 손으로 넘어가 있었다. 
물건을 사고 파는 것도 그녀 가 도맡아 했으며, 
그녀의 동의가 없이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다. 
벽돌공장도 잘 되어가고 있었다. 
철도 공사 때문에 벽돌의 수요가 늘어나 1천 개에 24루블 까지 뛰었다. 
부인네들과 처녀들이 정거장까지 벽돌을 운반해서 
그것을 화차에 실어주고 일당 25코페이카씩 받고 있었다.
악시냐는 풀뤼민 집안과 동업을 했다. 
그들의 공장은 이제 '플뤼민아우 회사' 라 불리고 있었다. 
그들은 정거장 근처에 술집을 차렸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그 값비싼 아코디언을 타는 소리가 
공장 쪽에서가 아니라 술집에서 흘러나왔다. 
이 술집에는 최근에 무슨 거래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우체국장과 역장도 자주 드나들었다. 
귀머거리 스테판은 플뤼민 아우 집안 사람에게서 금시계를 선물로 받았다. 
그는 연방 그 시계를 주머니에서 꺼내서는 귀에 갖다대고는 했다. 
  마을에서는 악시냐가 대단한 권력을 손에 쥐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로 그녀가 아침마다 그 앳된 미소를 띠고 
아름답게 빛나는 행복한 얼굴로 마차를 타고 자기 공장으로 나가는 모습이나 
공장에서 이것저것 지시를 하고 있는 모습 을 보면, 
그녀가 정말 대단한 권력을 갖게 된 것이라고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집과 공장과 마을 그 어디에서나 모두  그녀를 무서워하고 있었다. 
그녀가 우체 국에 들르면 국장이 벌떡 일어나서 말했다. 
  "자, 앉으시죠, 악시냐 부인."
  나이가 지긋한데도 엷은 나사로 지은 소매없는 외투를 걸치고, 
니스 칠을 한 긴 장화를 신고 다니는 
한 멋쟁이 지주가 그녀에게 말을 판 적이 있었는데, 
그 지주는 그녀의 화술에 매혹되어 그녀가 값을 깎아 달라는 대로 깍아 주었다. 
그는 언제까지나 그녀의 손을 잡은 채, 
명랑하면서도 교활한 빛이 흐르는 그녀의 눈 을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악시냐 부인, 부인 같은 분의 마음에 드는 일이라면, 
저는 어떤 일이라도 하겠습니다. 제발 말씀해주십시오, 
언제 당신과 조용히 만날 수 있을까요?" 
"네, 언제라도 당신이 편리하실 때면 좋아요!"
  그후부터 이 나이 지긋한 사나이는 
거의 매일같이 맥주를 마시러 가게에 들렀다 
이 맥주란 게 형편없는 것으로 제비쑥같이 쓴 맛이 났으나. 
지주는 자꾸만 머리를 저으면서도 그것을 마셨다.
그리고리 노인은 이미 장사에서 손을 떼고 전혀 간섭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수중에 모아놓은 돈도 없었다. 
그 사건 이후로 그는  진짜 돈과  가짜 돈을 분간 할 수 없어 
돈을 모아둘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입을 다물고, 자기의 이런 약점에 대하여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식구들은 이제 식사시간에 그가 안 보이더라도 신경을 쓰지 않을 정도로 되었다. 
그래서 바르바라는 곧잘 이런 말을 했다.
  "우리집 양반은 어제도 아무 것도 안 들고 주무셨어." 
이미 그런 데는 익숙해져 버려서 예사롭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