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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 (In the Ravlne) 5. - 안톤 체홉

Joyfule 2010. 4. 20. 07:30

 골짜기 (In the Ravlne) 5. -  안톤 체홉    
 
집 안에는 벌써 여러 개의 테이블 위에 가느다란 물고기와 햄, 
내장을 빼내고 대신 양념을 넣어 올리브 기름을 사용하여 요리한 새고기와 
만든 엄청나게 많은 보드카와 포도주 병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고, 
훈제 소시지와 쉬지근한 대하 냄새가 풍겼다.
그리고리 노인은 테이블 둘레를 돌아다니면서 칼을 갈아주고 이었다. 
모두들 계속 바르바라를 불러대며 온갖 일들을 부탁했으므로, 
바라바라는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숨을 할딱이면서 부엌으로 달려가곤 했다. 
부엌에서는 리사가 새벽부터 일을 하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한 악시냐가, 삐걱삐걱 소리나는 새 편상화를 신고 
드러난 무릎과 가슴패기를 언뜻언뜻 내보이면서 
회오리 바람같이 안뜰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주위가 온통 와글와글  들끓었고, 
욕을 하는 소리도 들리고 무언가를 다짐하는 소리도 계속 들려왔다. 
활짝 열어놓은 문 앞에는 길 가던 사람들이 멈추어 섰다. 
이 모든 것을 통하여 무슨 경사가 있음을 느끼게 했다. 
  "색시를 데리러 간대!"
 한동안 방울 소리가 철렁철렁 울려오더니 
그 소리도 멀리 마을 밖으로 사라져 갔다. 
2시가 지나자, 마을 사람들이 뛰어나갔다. 
다시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신부가 도착했던 것이다. 
교회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가지가 달린 촛대에 불이 밝혀졌고, 
성가대는 그리고리 노인의 희망대로 악보에 따라 노래하고 있었다. 
리파는 등불빛과 화려한 의상 때문에 눈이 부셔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성가대의 높은 노랫소리를 듣고 있자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난생 초음으로 몸에 댄 코르셋과 편상화가 몸을 잔뜩 죄어, 
마치 기절했던 자가 겨우 숨을 돌렸을 때와 같은 얼굴을 하고서 
놀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검은 프락 코트를 입고 넥타이 대신 빨간 끈을 맨 아니심은 
한 곳을 응시하면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노랫소리가 한층 높아질 적마다 황급히 성호를 긋는 것이었다. 
그는 너무 감동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죽은 어머니와 성찬을 받으러 왔던 곳도 이곳이었고, 
다른 소년들과 함께 성가대석에서 노래를 부른 것도 이곳이었다. 
그는 이 교회의 구석구석을 성상 하나하나를 낱낱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바로 이곳에서 그는 결혼식을 올리려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법도 때문에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이 결혼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눈물이 앞을 가려 성상을 볼 수도 없었고, 가슴을 꼭 졸라 매는 것만 같았다. 
그는 기도를 하면서, 머지않아 틀림없이 그의 머리 위에 덮쳐올 불행이, 
마치 비 한 방울 떨어뜨리지 않고 마을을 비켜 가는 가뭄 때의 비구름처럼 
무사히 자기 위를 그냥 지나가 주십사 하고 하느님께 빌었다. 
그가 여태까지 지은 죄업은 그 수가 너무 많아 헤아릴 수가 없었고, 
더욱이 용서를 빈다든가 도망친다든가 
돌이킨다든가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그런 것들쁜이었다.
그래도 그는 하느님께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소리를 내어 흐느껴  울기조차 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가 과음한 탓이라고 생각했고 
아무도 그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갑자기 겁이 난 듯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엄마, 밖으로 나가, 빨리!'
  "조용히!" 신부가 소리쳤다.
그들이 교회에서 나오자 사람들이 뒤에서 졸졸 따라왔다. 
가게 주위나 문 앞에나 안뜰에나 창 밑에나 어디고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여자들이 축가를 부르러 왔다. 
신랑 신부가 문턱을 막 넘으려 할 때, 
악보를 손에 들고 미리 문간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합창대가 
일제히 소리 높여 노래를 불렀고, 
특별히 시내에서 불러온 악대도 반주를 시작했다. 
미리 준비했던 돈 산의 샴페인이 길쭉한 술자에 담겨 나왔다. 
그때 눈이 덮일 정도로 눈썹이 길고 짙은, 
키가 크고 여윈 엘리자로프라는 목수 영감이 신랑신부에게 말했다.
  "아니심과 너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서로 정답게 살아야 한다. 
알겠지? 그러면 하느님께서도 너희를 지켜주실 것이니." 
그리고 그는 그리고리 영감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리, 자, 함께 우세. 기쁨의 눈물을 흘리잔 말이야!" 
그는 큰소리로 그렇게 말하고는 갑자기 껄걸 웃다가, 
이번에는 굵은 저음으로 말을 계속 했다.
 "하하하! 이번  며느리도 틀림없이 좋은 며느리라구! 
모든 것이 흠잡을 데가 없어. 
모든 것이 다 술술 풀려서 막히는 데가 없을 거란 말이야. 
말하자면, 기계가 완벽하고 나사못도 제대로 다 있다는 말씀이야."  
그는 예고리예프 군 출신이었는데,  
젊어서부터 우클레예보 마을과 근처의 공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 
그만 원래 이 마을 사람이었던 것처럼 이곳에 정착해 버렸던 것이다. 
그 옛날, 바로 이 고장에 왔을 때에도 이미 늙은이였고, 
게다가 바싹 마른 것도 그때와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옛날부터 '목발'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40년 이상을 공장에서 기계수리만 한 탓인지, 그는 사람이거나 물건이거나간에 
그것이 견고한지 수리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를 우선적으로 따지게 되었다. 
테이블에 앉을 때에도 으레 의자가 튼튼한가 어떠한가를 살펴보고 나서 앉았고, 
음식 같은 것도 미리 슬쩍 만져보는 것이었다.
 샴페인을 마시고 나서 모두들 자리에 앉았다. 
손님들은 의자를 움직이기도 하며 서로 지껄였다. 
문간방에서는 합창대가 노래를 부르고 악대가 연주를 하고 있었다.
한편 안뜰에서는 여자들이 장단에 맞추어 축가를 부르고 있었다. 
이런 모든 소리들이 함께 뒤섞여 괴상하고도 엄청나게 큰소리가 되었다. 
이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목발'영감은 의자에 앉은 채  좌우로 몸을 비틀면서 
옆 사람을 팔꿈치로 집적거리기도 하고, 
이야기를 훼방놓기도 하고, 울다가 웃기도 했다.
  "자, 아가, 아가, 아가들아!" 
그는 애칭을 사용하여 악시냐와  바르바라을 부르면서 빠른 말투로 중얼거렸다.  
"얘, 악시뉴슈카하고 바르바르슈카야, 
우리 모두 평화롭고 사이좋게 살아 보자꾸나. 우리 귀여운 아가들아." 
그는 평소에도 술이 약한 편이었으며 지금도 영국산 화주를 마시자, 
모두들 두들겨 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하고 혀가 꼬부라드는 것이었다.